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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에디터 Nov 22. 2022

기안84와 사치갤러리 전시회

기안84 © 미스틱스토리

기안 84가 영국 런던의 사치갤러리 Saatchi Gallery에서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사치갤러리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막강한 권위를 가진 메이저 갤러리인데요. 기안 84는 이 전시에 총 10점의 작품을 내놓으며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짧은 영어로 컬렉터들에게 작품을 소개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죠.

사치갤러리는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갤러리입니다. 이전에도 연예인 출신 작가들의 작품이 사치갤러리 전시된 적이 있고, 이 모습이 종종 매체에 등장하기도 했죠. 이날 방송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던 송민호(Ohnim) 작가뿐만 아니라, 강승윤(Yoo Yeon) 작가, 헨리 등이 2021년에 사치갤러리에서 전시를 진행했었습니다.

작가는 활동시기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진작가, 어느 정도 작품과 전시 이력이 쌓인 중견작가, 시장과 대중에게 모두 인정받은 원로작가. 사치갤러리에서 전시를 진행했던 송민호, 강승윤, 헨리는 모두 신진작가에 속합니다. 기안 84도 웹툰 작가로는 오랜 활동을 해왔지만, 순수예술 분야에서는 신진작가이고요.

그렇다면 작품활동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진작가들이, 어떻게 사치갤러리라는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를 할 수 있었던 걸까요? 단순 유명인 출신 작가여서 그런 걸까요? 우선, 사치갤러리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01 신진작가의 프린세스 메이커, 사치갤러리

사치갤러리 전경 © Saatchi Gallery
Charles Saatchi  © European CEO

사치갤러리는 1985년 개인 갤러리로 시작했습니다. 그 주인은 세계적인 컬렉터로 꼽히는 ‘찰스 사치’였죠. 찰스 사치는 광고회사인 사치&사치로 부를 쌓은 뒤 컬렉터의 길로 접어들었는데요. 당시 젊은 영국 신진작가 위주로 컬렉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광고회사를 운영하며 쌓은 마케팅 능력을 활용해, 수집한 작가를 전폭적으로 띄웠죠.


찰스 사치의 마케팅에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건, 데미안 허스트입니다. 당시 찰스는 허스트의 작품을 7천만 원에 구매해 160억 원에 되팔았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세 가지로 좁혀집니다. 첫째로, ❶ 찰스 사치는 미술시장 3대 권력 중 하나인 유명 컬렉터였습니다. 유명 컬렉터가 소장한 작품은 그 이력만으로 엄청난 금액에 팔리는 것이 보장되어 있죠. 최근 화제가 된 이건희 컬렉션, 맥클로 컬렉션, 그리고 록펠러 컬렉션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둘째로 ❷ 찰스 사치는 광고회사를 운영하며 쌓은 마케팅 능력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처음 찰스가 데미안 허스트를 세상에 선보인 건, 개인 컬렉션 전시회였습니다. 당시 사치는 초대장을 만들어 배포했죠. 초대장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자극적인 초대 문구는 미술계에서 ‘격이 떨어진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요. 사치는 이를 예상하고, 진작에 유명 국립 미술관을 대여했습니다. 명성 있는 미술관에서 전시를 진행하면, 작품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이었죠. 특히나 사치가 대여한 곳은 영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로열 아카데미 갤러리였는데요. 이 정도의 권위 있는 갤러리는, 2배까지 작품 가격이 오를 수 있었습니다.


사치가 구매하고 전시한 허스트의 작품 © Lslington Gazette

하지만 작품은 20배 넘는 가격에 팔립니다. ❸ 사치가 언론을 잘 활용한 덕분이었죠. 전시장에 선보여진 작품은 허스트의 대표작, 박제상어였습니다. 작품의 풀네임은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시각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주는 이 작품에 언론은 혹평을 내놓습니다. '충격적인 전시', '아무 느낌도 느낄 수 없는 전시', '어린 남학생들 수준의 음담패설에 불과하며 사치를 세상에 더 알리려는 말도 안되는 책략' 등 다양했죠.


이를 통해 사치는 큰 홍보효과를 얻게 됩니다. 일간지 <더 선 The Sun>은 ‘감자칩도 곁들이지 않은 생선이 5만 파운드!’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실어 사치가 구매한 이 작품을 비웃었죠. 그리고 작품이 많은 입소문을 타며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현대미술 시장을 고가로 끌어가는 인물 중 한 명인 스티븐 코헨이 이 작품을 한화 약 160억 원에 구매하며, 사치는 엄청난 이득을 얻었죠.


왼쪽부터 트레이시 에민, 앤서니 곰리, 제니 사빌

이처럼 사치는 다른 갤러리와 다르게 젊은 작가, 저평가된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하고, 마케팅하며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허스트의 사례는 극단적으로 작품 가격이 상승했다보니 사치의 마케팅적 능력이 부각되는데요. 사치는 동시에 뛰어난 안목을 가진 컬렉터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발굴한 작가만 해도 트레이시 에민, 앤서니 곰리, 제니 사빌 등 다양하죠. 사치는 이 작가들이 유명세를 얻고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작품 수집과 구매를 통해 후원했습니다.

이후 사치는 ‘오늘날의 예술'을 철학으로 삼고, 가장 빠르게, 가장 실력있는 작가들을 발굴해 세상에 선보였죠. 현대미술이 시작된 후 예술의 흐름은 미국으로 여겨졌는데요. 이 흐름을 다시 유럽으로 가져온 데 사치갤러리는 막강한 역할을 했다 평가받습니다.



02 사치갤러리의 시리즈 전시, 스타트 아트페어

스타트 아트페어 로고 ©Start Artfair
2022 스타트 아트페어 전경  ©Start Artfair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기안84를 비롯해 송민호, 강승윤, 헨리가 참여한 사치갤러리 전시. 사실은 사치갤러리가 아닌, 사치갤러리가 주최하는 ‘스타트 아트페어’라는 점입니다.


사치갤러리는 직접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를 열어주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후원이 아닌 간접적인 방식의 시리즈 전시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2009년에는 <Korean Eye>라는 전시를 후원했는데요. 각 나라마다 눈에 띄는 작가를 선정해, 국가 이름 + Eye를 붙여 진행하는 시리즈 전시입니다.


2022 스타트 아트페어 전시 준비 현장 (왼쪽 위부터 순서대로 기안84, 김선우, Ohnim, 기안84)   ©Start Artfair

<스타트 아트페어> 역시 사치갤러리가 시리즈로 진행하고 있는 아트페어 중 하나입니다. 아트페어인 만큼 컬렉터에게 작품을 판매하는 데 주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사치갤러리의 철학을 이어 ‘오늘날의 예술'을 선보이고 있고요. 덕분에 참여하는 작가들 역시 신진작가가 많습니다. 2021년에 진행한 스타트 아트페어에도 송민호, 강승윤, 헨리 외에도 7명의 국내외 신진작가가 참여했고요.

스타트 아트페어는 '교육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기존 아트페어처럼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초보 컬렉터에게 좋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을 알려주고자 하죠. 때문에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매우 자세하게 보도하고, 전시장에서도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프린트를 나눠줍니다. 컬렉터와 큐레이터 간,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고요.  

2021년 진행된 스타트 아트페어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송민호, 강승윤, 헨리를 소개할 때, ‘이들은 아이돌 출신 작가로서 참여했으며 어떤 활동을 했는지'가 보도자료에 상세히 적혀있었죠.  


03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있는 전시

2021 스타트 아트페어 전경  ©Start Artfair

어떤 이들은 ‘국내 신진작가들의 기회를 아이돌 출신 작가가 빼앗는 게 아니냐'는 비난도 합니다. 하지만 스타트 아트페어는 오히려 이들이 아이돌, 혹은 유명인 출신임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죠. 이들의 유명세가 새로운 관객을 유치하고, 더 많은 미술시장 소비자를 만들어 낼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멀리 보면, 미술시장에 긍정적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젊은 컬렉터가 시장에 진입하고 관심을 가지면, 이 자체만으로 미술시장에 새로운 소비 흐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전시를 관람하고, 작품을 구매하는 순환은 신진작가들이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계속 새로운 예술, 오늘날의 예술이 이어질 때 예술의 생태계가 선순환할 수 있고요.

‘오늘날의 예술'이라는 사치갤러리의 철학으로 운영되는 스타트 아트페어. 유명인의 유명세를 영리하게 이용해 미술시장을 이끌어가는 전시라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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