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억만장자, 마에자와 유사쿠
최근 일본의 한 억만장자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민간인 최초로 단체 우주여행을 떠나는 프로젝트를 벌인, '마에자와 유사쿠'죠. 마에자와는 1인당 수십억 원인 우주선 탑승권을 전부 구매해, 전 세계 예술가 10명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2023년에 함께 달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죠. 프로젝트명은 디어문 dearMoon.
마에자와는 이미 작년 12월, 천억 원을 들여 국제 우주정거장에 방문했습니다. 민간인으로서는 일본 최초였죠. 그리고 그곳에서 12일간 머물렀습니다. 이후 마에자와는 '예술가들을 데리고 달로 가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억만장자의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올해 3월 우주선에 탑승할 지원자 공개모집도 진행했습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백만 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렸고, 서류전형과 인터뷰, 건강검진을 거쳐 최종 크루가 선정되었죠.
선정된 이들은 예술가부터 운동선수까지 다양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도 있죠. 일랜드 출신 사진작가 리아논 아담 Rhiannon Adam, 미국 음악 프로듀서 스티브 아오키 Steve Aoki, 체코 사회혁신가 예미 A.D Yemi A.D, 미국 사진작가이자 영상 제작자 팀 도드 Tim Dodd, 미국 다큐멘터리 제작자 브렌던 홀 Brendan Hall, 영국 영상 제작자 카림 일리야 Karim Iliya, 인도 배우 데브 조시 Dev D. Joshi, 한국 뮤지션 최승현 TOP입니다. 예비 크루는 미국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케이틀린 패링턴 Kaitlyn Farrington, 일본 행위예술가 미유 Miyu가 선정되었고요.
마에자와는 디어문 프로젝트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길 바라며, 더 나아가 지구와 인류에 기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지구와 인류의 더 나은 삶, 더 새로운 예술을 위해 예술가를 데리고 달로 가는 독특한 열정을 가진 마에자와 유사쿠. 그는 광적인 현대미술 컬렉터로서도 독특한 열정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2017년 5월 18일, 뉴욕 소더비 이브닝 경매에서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자화상 <무제 Untitled>가 등장했습니다. 추정가는 6천만 달러(한화 약 774억 원)이었죠.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스키아는 500만 달러(한화 약 64억 5천만 원)를 넘기는 일이 드물어 소더비가 추정가를 높게 매겼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접전이 벌어졌습니다. 끝까지 승부에 참여해 승리를 거머쥔 인물은 전화 응찰자였습니다. 최종 낙찰가는 1억 1,050만 달러(한화 약 1,248억 원 -당시 환율 기준). 전화 응찰자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 사이, 여러 반응이 터져 나왔습니다.
1억 달러가 넘는 금액은 미술시장에서 매우 기념비적입니다. 앤디 워홀, 피카소 정도는 돼야 1억 달러가 넘는 금액에 작품이 거래되기 때문이죠. 이 금액에 거래된다는 건, 미술시장에서 최고급 작가로 대우받는다는 걸 암시합니다. 이 금액은 바스키아의 작품 최고가를 경신했고, 역대 미술품 고액 낙찰 기록도 바꾸었습니다. 경매에서 고가 기록이 경신되면, 하루아침에 작품 가격이 수백만 달러는 비싸질 수 있습니다. 경매장에 자리 잡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바스키아를 가지고 있는 컬렉터와 그렇지 않은 컬렉터 간 상반된 반응을 보였죠. 언론은 바스키아를 초고가 작품으로 만든 컬렉터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이후 마에자와 유사쿠는 문제의 그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립니다. '걸작을 손에 넣어 행복하다'는 코멘트와 함께요. 바스키아의 최고가 작품을 사들인 사람이 본인임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이죠. 소더비 경매에 나온 바스키아의 이 작품은 지나치게 높은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어진 응찰로 가격은 계속 올랐고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응찰을 멈추지 않는 컬렉터는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장기적인 투자 목적에서 구매하려는 딜러, 다른 부류는 그냥 그 작품이 좋아 미치겠는 컬렉터. 마에자와 유사쿠는 후자의 전형적 사례입니다.
마에자와는 20대 초부터 괴짜 수집가 면모를 보였습니다. 당시에 그가 꽂힌 건 음악이었죠. 음악과 관련된 모든 걸 사모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에는 캘리포니아로 가 일본에서 구할 수 없는 희귀 음반과 CD를 수집했죠. 그의 매니악한 수집은 곧 사업으로 이어집니다. 3년 만에 일본에 돌아온 마에자와는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해 구매한 CD를 판매했습니다. 이후 재즈 마니아가 좋아하는 펑키 스타일의 옷을 판매하고, 2000년에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스타트 투데이'라는 회사도 차립니다. 이후 2004년, 오늘날 마에자와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준 '조조타운'을 설립하죠. 온라인 패션 쇼핑몰 조조타운은 일본 소셜 커머스 1위 업체로 성장했습니다. 그 전신인 스타트 투데이는 2012년 도쿄 증시에 상장했고요. 마에자와는 4조 원 대 재산을 축적하며 일본 부자 순위 14위에 오릅니다.
충분한 재산이 생기자, 마에자와의 수집가적 면모는 예술작품으로 향합니다. 마에자와는 2007년, 첫 작품을 구매합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형상 Figures>이었죠. 작품의 가격은 200만 달러(한화 약 25억 8천만 원). 당시 수중에 그만큼의 현금이 없던 마에자와는 고민했지만, 길지는 않았습니다. 기어이 돈을 만들어 작품을 사들였죠. 마음을 뺏긴 작품 앞에 고민하는 경험을 했던 마에자와는, 이후 축적한 부를 활용해 더 빠르고, 더 직관적으로 작품을 구매합니다. 미국의 한 갤러리스트는 마에자와가 일본인 답지 않게 빠르고 과감하게 결정을 내린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마에자와는 주로 유명 작가의 작품을 컬렉팅 합니다. 피카소, 자코메티, 쿠사마 야요이, 제프 쿤스, 리처드 프린스, 윌렘 드 쿠닝, 알렉산더 칼더, 크리스토퍼 울 등 다양하죠. 이들은 이미 미술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작가들입니다. 일본 최대 규모의 쇼핑몰을 운영하며 마에자와는 '명품', '브랜드'를 지향해 왔는데요. 아트 컬렉팅도 같은 방향으로 브랜드 가치를 획득한 작가들을 주로 수집하는 모습입니다.
마에자와는 미술시장에서 유명한 바스키아 마니아입니다. 2017년 <무제>로 바스키아를 1억 달러 클럽에 입성시키기 바로 전 해, 2016년에도 마에자와는 바스키아 작품을 샀습니다. 당시 바스키아의 뿔 달린 악마 자화상 <무제>를 5,930만 달러(한화 약 765억 원)에 낙찰받아 바스키아의 경매 기록을 경신했었죠. 이후 1년 만에 같은 작가의 작품 값을 두 배로 치솟게 한 겁니다.
마에자와는 바스키아와 본인 사이, '공통점이 많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재능과 행운, 타이밍이 결합해 극적으로 주류에 진입한 사연이 나와 비슷하다"라고 말했죠. 이 외에도 둘은 10대 때 밴드를 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패션에 죽고 못 사는 것 또한 같고요. 또 바스키아가 마돈나와 염문설을 뿌렸다면, 마에자와는 일본 여배우 사에코와 염문을 뿌렸습니다. 관심사부터 취미, 커리어 패스와 사생활까지 비슷합니다.
"바스키아의 작품은 물론이고 그의 정체성과 라이프 스타일, 패션, 어록까지 모두 매력적이다." 바스키아에 대해 마에자와가 남긴 말입니다. 가지고 싶은 건 다 갖던 선천적 수집광 마에자와는 오늘날 가장 비싼 바스키아의 작품을 소장한 컬렉터가 되었습니다. 흔히 컬렉팅의 끝은 미술관 설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마에자와는 2012년 현대미술 진흥재단 Contemporary Art Foundation을 설립했습니다. 미술관을 지어 소장품을 대중과 나누고,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서였죠. 천억 원대 바스키아 작품부터 예술가를 위한 우주여행, 미술관 설립까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억만장자 컬렉터의 행보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현대미술 씬의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마에자와 유사쿠를 우리가 계속 주목해야 할 이유입니다.
참고문헌
세라 손튼, <걸작의 뒷모습>, 세미콜론, 2008.
이영란, <Super Collector>, 학고재, 2019.
세기의 컬렉터로 꼽히는 마에자와 유사쿠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면, 1세대 컬렉터들의 이야기도 만나보세요. 바스키아와 관련된 글도 있습니다. 올해 미술계를 뜨겁게 달궜던 바스키아 위작 이야기도 함께 감상하길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