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결산 - (02) 빅이벤트와 밸런싱

인생 리셋 후 1년

by Bien

적응이라는 이름의 양날의 검

영업일을 할 때나 프리랜서 일을 할 때나 창업을 했을 때에는 늘 선택의 연속이었다. 모든 것을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따른 댓가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출퇴근과 평일주말이나 밤낮의 개념이 모호했다. 오로지 미션을 설정하고 다다르기까지 집중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나름의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때면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쉬고 싶었다. 정작 쉰다고 하는 순간에도 머릿속은 일에 대한 생각과 고민들로 가득차 있었다. 생각해보니 주변사람들께 죄송한 마음 뿐이다. 함께 순간을 즐기지 못했으니 말이다. 결국 많은 일들은 금전적 실패들로 마무리 되었고 그나마 남은건 경험과 교훈들이지만 가장 힘들었던건 균형이 깨진 상태들이었다. 연애는 물론 건강, 가족관계, 대인관계, 금전 등 많은 것들이 삶에서 붕괴된 상태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업무에 적응한답시고 회사자료들을 뒤지다보니 밤 10~11시는 기본이었다. 업무에 어느정도 적응했을 때에는 다른 욕심이 생겨 문서양식을 바꾼다던가 엑셀 매크로를 짠다던가 하다보니 또 10~11시였다. 작은 원룸에 가면 옷만 훌렁 던지고 얼굴에 물만 묻히고 자고 일어나서 새벽에 개인시간 갖고 씻고 출근하는 진짜 쳇바퀴 일상이 시작되었다. 나름대로 업무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적응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마음에 쓰였다. 잠시라도 여유가 생기면 술을 마시는게 일상이 되어감을 감지했을 때에는 업무는 적응하되 업무에 적응된 삶을 보내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리셋이라는 의미에 맞춰 그동안 소홀히 했던 일들에 조금이라도 신경쓰면서 균형을 맞추고 싶었고, 새벽과 주말시간을 이용하여 좀 더 풍요로운 직장인의 삶을 보내고 싶었다. 여기서 말하는 풍요로움이란 사실 NEXT STEP을 준비하는 의미가 크다. 어느정도 창업에 관련된 사회생활을 하나보니 나도 모르게 '세상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는 몸에 베인 한가지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를 원동력으로 나태해지는 것에 대한 불감증을 줄이는 식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가끔 먹는 외식이 맛있다

한주에 80시간 이상 일을 하다보면 (다행히 일요일은 있긴 했지만) 개인 생활이 거의 없다. 하지만 좋은 점을 굳이 뽑자면 시간의 가치가 커져서 그 소중함을 알게 되고, 잠깐이라도 생기는 여유에 감사함을 느끼고, 의미있게 쓰고 싶어지는 욕구가 생긴다는 것이다. 쳇바퀴 일상으로 1년을 보내고 나서도 업무 외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고 나면 겉으로는 한 해가 의미 없이 지나간 것 같아보여도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올 해도 여러모로 감사하고 의미있는 한 해가 되었다. 업무와 작은 루틴 외의 시간에서 의미있었던 일들을 더듬어 본다.


01) 영어

서른 초반까지는 영어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고 지금 하는 업무도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영어라는 것은 하나의 언어로 자전거타기 혹은 젓가락질 처럼 내 몸에 익히고 싶었다. 영어는 아직도 많이 못하지만 조금씩 하면 할 수록 삶이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저 멀리 놔둔 채 잊어가면서 살아가는게 싫었고, 아주 얇은 끈이라도 연결 해 놓고 싶었다. 영어공부는 그렇게 의욕넘치게 해도 꾸준하지 않으면 다 잊혀졌고, 단기간에 습득하기도 어려웠다. 특히 나에겐. 그러던 와중에 영어교육에 관심있는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마루타(?)를 자청했다. 그리고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주말에만 간단한 피드백과 영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역시 이런 것들만으로는 겉 핥기에 불과했다. 지인도 나도 무언가 다른 방법에 대한 생각을 할 때쯤 그가 영어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제안(강요)했다. 처음에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백만가지 핑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한 수 위였다. 여러 영어모임에 직접 다녀와서 이런저런 경험을 공유했다.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서 말 한마디 못해도 좋으니 일단 가보자라는 생각에 세군데의 영어 관련 모임에 참석했다. 예상대로 처음에는 역시 이런건 나에겐 안맞는다는 합리화를 하면서 딱 한마디만 하고 남이 하는 이야기만 듣다가 왔다. 하지만 두세번째 다른 모임에서는 이상하게 다른 경험을 했고, 외국인 친구도 만들 수 있었다. 정말 운좋게 그 때 만난 친구는 자신감과 다양한 시각과 깨달음을 선물해주는 품격 높은 사람이었고, 지금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목표까지 만들게 되었다. 기존에는 주말에 맛만 살짝 보는 식의 영어에 대한 노력들이 언젠가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말은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으로 가벼웠던 루틴 프로세스에 자연스럽게 추가되었고 나중에는 꿈을 영어로 처음 꾼 날에는 정말이지 느낌이 이상했다. 지인과 함께 했던 공부는 발음에 대한 공부였고, 많은 양을 했다기 보단 작고 중요한 것들을 잊을만 할 때쯤 다시 보고 평소에 조금씩 체크하는 것 뿐 이었는데도 나의 영어실력에 있어 전방위적으로 도움이 크게 되었다. 일년동안 영어에 관련된 노력들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 (물론 노력의 수준도 낮다) 하지만 2019년 이전과 이후의 영어는 나에게 있어 막막하고 어렵다는 두려움이 먼저 떠오르는 존재에서 궁금하고 친해지고 싶은 친구처럼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 예전같았으면 외국인에게 길을 알려줄 때에도 어설프게 레프트 라이트...만 하고 헤어졌겠지만 최근에는 길을 알려주고나서 한국에는 처음 왔는지, 왜 왔는지, 언제까지 있는지, 서울에서 출퇴근길에 지하철이나 택시는 가급적 피해라 같은 이런저런 대화도 했다. 나중에는 추천 해 줄만한 곳이 있느냐는 외국인의 질문에도 그냥 몇군데 짚어주는게 아니라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고 그에 맞춰 추천해주기도 했다. 아직도 영어수준은 초등학교 수준이지만 무언가 긴장감이 사라졌다는 것 만으로도 큰 발전을 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더닝-크루거 효과처럼 자신감은 곧 다시 떨어질 것이다. 그 때를 위해 하나의 약속을 해본다.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하자. 뒷걸음질 치는 순간에도 조금씩이라도 그냥 나아가자.' 이렇게 2019년의 영어경험은 삶에 있어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02) 자격증

나는 이상한 오만(?) 같은게 있었다. 바로 자격증이다. 어려서부터 일을 하다보니 자격증은 쓸데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 에너지를 실무에 더 쏟자는 주의였다. 진짜실력이 좋아지면 큰 노력이 아니어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고, 자격증이 주가 되어 실무에 소홀해지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사실은 둘다 중요한데 말이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자격증이라는 시스템을 거부한답시고 그 뒤로 낮은 자신감을 숨기고 있었다. 건축전공을 했지만 건축관련 자격증도 없고, 재무설계를 한다고 하면서 재무설계 자격증도 없었다. 관광관련 일을 할 때에도 가이드 자격증에 실패했다. 그리고 지금 일하는 전기관련 회사에서도 2018년에는 접수만하고 깔짝거리기만 하고 공부는 하지 않고 응시도 하러 가지 않았다. 2019년이 되면서 리셋이라는 의미를 생각 할 때 자격증에 대한 기존의 경험과 생각또한 바꾸고자 시도했다. 시험을 위한 공부(기출문제 풀이위주의 시간투입)와 진짜 능력을 위한 공부 두마리를 잡기위해 노력했지만 사실 실패했다. 결과적으로는 자격증은 취득하긴 했으나 전기 이론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하기에는 내 능력으로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한마리 하고 뒷다리 정도?)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해도 2019년에 의미 있었던 경험으로 자격증을 뽑은 것은 위에 얘기한 반성과 실행, 그리고 바뀐 관점들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관련분야의 이해도 중요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는 신혼이고 누군가는 아이가 있고, 누군가는 은퇴를 앞두고 있는 상황들에서 자격증 취득을 위해 보이지 않는 꾸준한 노력이 이제야 와 닿고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크게 어렵지 않은 난이도에서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올 해에는 산업기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작년보다 더 쉽지 않은 환경과 시험 난이도 이지만 올 해가 자격증 공부하기 가장 좋은 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루틴과 함께 접목시키는 여러 시도중에 있다.


03) 가족여행

밸런스가 깨졌다는 느낌이 가장 큰 건 '가족' 부분이다. 얘기하긴 너무 길고 창피한 일들이 많다. 스무살 이후로 집에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명절에도 가지 않았다. 어느샌가 나를 포함한 다섯가족은 각자도생의 시기를 지내는 중이었고, 가족 구성원의 역할로는 사실 내가 가장 무관심했다. 올 해는 아버지 칠순맞이 행사로 누나와 여동생의 주도로 베트남 다낭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지금까지 가족행사에는 누나와 매형(사랑해요)이 비용과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나는 숟가락만 얹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 앞으로도 잘 못하겠지만 이번 만큼은 내가 나서서 비용과 에너지를 쏟고 싶었다. 2018년 3월 직장생활 시작 후 빌린 건보료와 지인들로부터 자잘하게 남아있던 빚을 갚고 아주 작게나마 모아오던 자금을 전부 쓰려고 마음먹었다. 이번이 마지막 온가족행사가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웃기게도 아버지는 일 때문에 가시지 않았는데(못 가신 게 아니라 안 가신 게 맞다.),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이해되었다(부전자전?). 멀리 떨어져 20년 가까지 지내왔어도 왜 그러셨는지 알 것 같았고 나는 존중하며 피의 진함을 느꼈다. 그리고 급작스런 아버지의 빈자리에 다른 새로운 가족(동생의 시어머니)이 참여했는데 결과적으로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좀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나는 모두에게 윈윈이었다고 생각한다(다른 사람은 다를수도 있겠지만..;). 화목했던 가정이 흩어졌다가 각자의 자리에서 어느정도 안정이 되면서 다시 모인 느낌이었다. 결국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었나. 또 한번 기분이 오묘했던 순간이었다. 뿐만아니라 이번 여행에서 의미있었던 건 독서와 휴식을 충분히 했다는 것이다. 루틴에서 가장 물올랐던 시기에 뜬금없는 분야의 책 아리랑(님 웨일스 저)을 들고갔다. 다행히도 일상생활에서 읽었다면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타지에서 여유를 갖고 틈틈이 읽다보니 대부분을 읽고왔다. 읽은 양에도 놀랐지만 무엇보다 완전히 빠져들어 읽었다는 것이 또 기분이 묘했다. 주인공 김산이 생각하는 연애관과 다른 고민들을 보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어딘가에서 만나 대화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같은시대 같은공간에 있었더라면 (내 주제에 감히) 많이 친해졌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많은 생각들과 내가 역사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을 일부 인지 할 수 있었다. 그토록 두려웠던 역사에 대해 한발짝 가까워진 경험이었다. 그리고 미천한 영어도 마음껏 해 볼 수 있었다는 것도 의미있는 경험이 되었다.


04) 종교활동

종교활동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진짜 종교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 것도 루틴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약 3년 전부터 주말마다 카페에서 영어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모임에 참석 해 왔다. 기존에 참여하던 스타트업 관련된 커뮤니티에서 파생된 소모임으로 주최자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영어도, 프로그래밍도 관련 없는 사람들이었다. 영어와 프로그래밍에 대해 심도있는 스터디를 한다기보다는 스스로 공부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옆에서 도와주거나 새로운 것들을 제안하는 식이었는데, 처음 1~2년은 미숙하기도 했고 게으르기도 해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주최자는 디지털 노마드답게 동남아로 가게 되었고, 남아있는 몇명과 모임을 지속하게 되었다. 당연히 영어와 프로그래밍은 아주 간단하게만 언급되었고 특정 이슈에 대해 토론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게 주를 이루게 되었다. 나중에는 메인 멤버가 나를 포함 두 명만 꾸준히 모임을 갖게 되었는데, 이 때 서로의 얘기를 길게 나누다보니 삶의 깊숙한 부분까지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그의 겹치는 관심사 중에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영어'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 위 1번에 쓴 영어의 경험을 함께 하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영어뿐만아니라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정보들을 공유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모임을 할 때마다 영어나 이타 토론 외에 지난 일주일 간의 정리와 반성,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불참 한 횟수가 연간 손에 꼽을정도로 주말에는 '무조건' 가게 되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서 편히 쉬는 것 보다 모임에 나가는 것이 복잡한 생각들 정리도 더 잘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도 더 잘 떠올랐다. 심지어 아무도 오지 않아도 혼자 가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새로운 작업들을 하거나 정리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보내고 나면 월요일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는데, 그 감정을 하나의 주말습관으로 만들었고, 생활에 활력을 주는 하나의 장치로 이용하다보니 마치 종교활동 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을 때에도 그냥 긴 말 하지 않고 종교활동 간다고 했다. 2019년의 나의 종교활동에서는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의미있었던건 영어이다. 2020년에는 어떻게 될 지 기대...까지는 하지 않는다. 그냥 하나의 의식처럼 같은 카페에 매주 앉아있을 것이고 그 곳에서 새로운 경험이 피어날 것이다.


05) 은퇴계획

나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은퇴의 기준은 최저생계비('19년 1인가구 기준 월 170만원) 수준으로 수면 포함 하루 20시간 이상의 자유시간 (=4시간 이하로 남을 위해 쓰는 시간)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2019년이 시작되면서 크게 느낀 감정 중에 하나가 서른 중반이 지나 후반을 향해 가고 있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빨리 간다는 걸 의식하는 약간의 조급함(?)이 더해졌다는 것이었다. 올 한해도 이렇게나 빠르게 지나갔는데 이런식이면 여차하는 동안 지금의 서른 후반에서 곧 마흔이고 금방 사오정의 시기를 지나 갱년기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셋이라고는 했으나 경제적인 부분은 리셋을 할 수가 없는 상태에서 지금 마이너스에서 출발해 어설프게 빚만 갚다 끝나는 인생이 되고 싶진 않았고, 경제적인 부분도 한번 정리할 겸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계획도 세워보았다. '18년도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초반에 돈이 안모이는 이유를 봤더니 이사비용 줄인다고 힘들게 이사해도 수 십 만원은 나가고, 밀려있던 건보료 2백여만원, 학자금 일부 갚고, 지인한테 빌린 돈 조금 갚고, 기존 월세 못냈던 것도 있었고, 장도 조금 보고 한다고 2019년 초에는 수중에 2백여만원 뿐이었다. 그리고 그 2백여만원에 두세달 더 모아서 가족여행에 쓸 계획이었으니 5월정도부터 그나마 돈을 모으기 시작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뭔가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우선 가지고 있는 부채부터 전부 모아보니 학자금대출, 지인, 보증금대출 등 약 5천만원이었다. 목표의 상한에는 제한을 두진 않았지만 어느 기준이라도 꼭 있어야 한다면 소소하게(?) 임종 직전까지 자산을 늘릴 수 있다는 가정하에 많은 청년들이 바라는 10억은 찍어봐야하지 않겠나. 이렇게 캔버스의 크기를 일단 결정하고 지금까지 그려온 나를 스케일에 맞춰 갖다 붙인다음, 현재 가진 재료들을 찾아봤다. 마침 루틴과 투자에 관심이 높은 상태일 때였고, 처음에는 심심할 때 단순한 호기심으로 엑셀과 계산기를 두둘기며 셈 놀이를 하다가 나중에는 삶의 질도 생각해서 버무려 보고 시간과 금액들을 잘게 쪼개다 보니 '못해도 이정도...'라는 식으로 진짜 내가 원하는 것만 남길 수 있었다.


은퇴PJ.JPG 창피하지만 시나리오 한번 그려봤어요


일이 잘 풀리면야 좋겠지만, 안되면 노년에 이런 식으로라도 살아야 겠다는 한가지 기준이 생겼다. 물론 만족하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막막해 보였으나 생각해보니 안될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마음의 흔들림을 붙잡기 위해 하나의 기준은 있어야 겠고, 조금의 욕심(투자수익 등을 더함)을 더해서 계산 해 보니 내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기까지는 36년이라는 시간(음? 72살?)이 필요했다. 이건 여러 조건에 대한 하나의 기준일 뿐이고, 앞으로 나의 노력과 운에 따라 내 인생보다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세상이 또 한번 다르게 보였다. 우선순위가 더 명확해지고,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여러 명분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나중에 현타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에게 써먹을 만한 정신적인 장치(트랩)도 조금 필요해서 만들었다. 이렇게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은퇴계획이 만들어졌다. 2019년의 빅 이벤트에 은퇴계획이 들어간 이유는 은퇴계획이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것들을 생각 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들과 앞으로 하고 싶은것들, 해야하는 것들, 버려야 할 것들, 죽어도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 스스로 재무설계도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과 결과를 정리해보니 옛날 심신이 매말랐던 시절, 마음속 깊은 곳에 뿌려놓은 씨앗들이 죽지 않고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생이 이렇게만 흘러가면 얼마나 좋아



나를 버리고 모든 것에 인내하며 웃는 얼굴로 악착같이 살아야 해

그래야만 끝내 평범하게 살 수 있다-고 세상 사람들은 외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누군가 말 했던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내가 살아온 길과 거리가 너무나도 먼 것 같아서. 다만 지난 한 해는 확실히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람답게 살았던 첫 해 인건 맞다. 잘 생각해보면 삶에서 큰 이벤트들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일상의 루틴과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는 모든 단어에 있어 '꾸준히'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우연히 찾았고 기대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이렇게 깨졌던 삶의 균형이 맞춰지는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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