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 대학교 3학년 여름.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핸들을 쥐고 땀을 뻘뻘 흘리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회 나가면 면허는 필수야.” 아빠의 말에 떠밀려 두 번의 낙방 끝에 간신히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저 지갑 속에 끼워둔 플라스틱 카드일 뿐이었다.
운전? 상상도 못 했다. 내가 도로 위에서 차를 몰고 다닌다고? 그건 영화 속 주인공이나 하는 일이었다. 면허를 따놓고도 12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서울의 지하철과 버스가 나를 어디든 데려다줬고, 굳이 내가 핸들을 잡을 이유가 없었다.
가끔 친구 차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운전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생각은 늘 뒷전이었다. 차선 변경, 끼어드는 차들, 복잡한 교차로.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운전면허는 그냥 ‘비상 시에 있으면 좋은’ 자격증 정도로 먼지만 쌓였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삶이 달라졌다. 주말마다 장인어른 댁에 갈 때, 아내가 “차 있으면 훨씬 편할 텐데”라고 툭툭 던지는 말이 점점 마음에 박혔다. 마트에서 장 본 짐을 들고 버스 정류장까지 터덜터덜 걸어가다 보면, 아내의 한숨이 내 귀를 때렸다.
결정타는 최근, 아내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 이야기를 나누면서였다. “아기 낳으면 차 없이는 너무 힘들 거야.” 아내의 말이 머리를 쳤다. 그녀는 나보다 운전을 제법 잘했다. 가끔 렌트를 해서 차를 몰 때 그녀의 여유로운 손놀림을 볼 때마다, 나는 살짝 부러우면서도 겁이 났다.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이제 저 질문에 대한 답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차를 보러 다녔다.
새 차를 뽑고, 그 반짝이는 새 차 냄새를 맡으며 결심했다. 내가 이걸 몰아야지.
첫 운전 연습은 동네 주차장에서 시작했다. 새 차 운전석에 앉았을 때,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내는 조수석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천천히 밟아. 급하게 엑셀 밟지 마.”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내 손은 핸들 위에서 덜덜 떨렸다. 엑셀을 살짝 밟았다가 브레이크를 꽉 밟았다. 덜컹. 차가 앞으로 살짝 나갔다가 멈췄다. “뭐야, 이게 롤러코스터야?” 아내가 웃으며 타박했다. 나도 따라 웃었지만, 속으론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직진, 후진, 좌회전, 우회전. 기본기부터 다져갔다. 아내는 “핸들 더 꺾어”라거나 “브레이크 좀 부드럽게”라고 코치해줬다. 그녀의 잔소리가 귀엽게 들릴 때도 있었지만, 솔직히 살짝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그 조언 덕에 조금씩 감이 잡혔다. 주차장은 곧 좁게 느껴졌고, 용기를 내 동네 골목길로 나갔다.
차선 하나 바꾸는 것도 큰 결심이 필요했다. 사이드미러 보고, 깜빡이 켜고, 고개 돌려 사각지대 확인하고. 머릿속으론 침착해, 침착해를 반복했다. 몇 주 뒤, 큰 도로에 도전했다. 첫날은 신호등 앞에서 브레이크를 너무 세게 밟아 차가 덜컹거렸다. 뒤차에서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내가 옆에서 “괜찮아, 천천히 다시 밟아”라고 다독였다. 그녀의 침착함이 부러웠다. 나는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걸까?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조금씩 연습했고, 점점 도로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차선 변경은 여전히 긴장됐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핸들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업무차 출장가는길에 혼자 차를 몰고 가고있는 나를 발견했다. 오디오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렀고, 나는 무심코 따라 흥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이걸 하고 있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뿌듯함이 밀려왔다.
운전은 단순히 차를 움직이는 기술이 아니었다. 내게는 두려움을 마주하고, 한 발짝 내딛는 법을 가르쳐준 선생님이었다. 12년 전, 면허증을 손에 쥐고도 “나는 절대 운전 안 할 거야”라고 장담하던 내가, 지금은 주말마다 아내와 마트에 가고, 부모님 댁에 들르고, 가끔은 바람 쐬러 바다까지 달리고 있다.
아직 주차는 서툴고, 고속도로에서 트럭이 옆을 지나가면 손에 땀이 찬다. 아내는 가끔 “좀 더 부드럽게 엑셀 밟아”라고 놀리지만, 나는 웃으며 대꾸한다. “베스트 드라이버 되는 중이야. 지켜봐!”
이 모든 게 도전에서 시작됐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깨달은 건, 세상에 못할 일은 없다는 거였다.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때, 곧 아빠가 될 준비를 하면서 느끼는 막막함, 그리고 낯선 도로에서 핸들을 잡을 때. 모든 게 처음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마음먹고 한 걸음 내딛으면, 두 걸음, 세 걸음이 따라왔다.
서툴러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거, 그리고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거다. 언젠가 나는 주차도 칼같이 하고, 고속도로에서도 긴장없이 신나는 락음악을 틀며 운전할 날이 올 거다.
곧 태어날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어디든 갈 날을 꿈꾸며, 나는 계속 달릴 거다. 두려움은 잠시지만, 도전은 나를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세상에 못할 일은 없다. 마음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