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먹다] 14. 숨기려 하지 않는 솔직한 표정②

by 빅아이즈

좋아하는 마음은 참 못 숨긴다. 아무리 무심한 척해도, 얼굴은 항상 제멋대로다.


결혼하기 전, 지금 생각해도 웃음 나는 짝사랑이 있었다. 평소엔 담담하게 지내다가도 복도 끝에서 그녀가 걸어오는 걸 보면 몸이 먼저 반응했다.


괜히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척하거나, 자판기 버튼을 누르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마음은 보이기 마련이고, 얼굴은 이미 들떠 있었을 거다.


그녀는 나를 보면 종종 웃었다. 별 뜻 없는 인사처럼 툭 던진 "안녕하세요" 한 마디에 나는 쓸데없이 귀까지 빨개지곤 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을 핑계로 그녀를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판기에 돈을 넣고 그 앞을 서성거렸다.(부끄러움에 도망가기 위한 수단이랄까..)


바로 그 때 복도를 지나가던 그녀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당황한 나는 급히 음료수 선택 버튼을 눌렀고, 하필 탄산수가 떨어졌다.


나는 탄산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어색함에 캔을 바로 따서 마셨다. 첫 모금에 기침이 터졌고, 그 타이밍에 딱 마주친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탄산 좋아하세요?"

그녀는 웃으며 물었고, 나는 얼떨결에 말했다.

"아, 네. 가끔요."

사실 가끔도 아니었다. 톡 쏘는 탄산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억지로 웃었다. 그녀가 웃음을 참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서, 나는 괜히 들킨 기분에 더 머쓱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습관처럼 자판기에서 탄산수만 뽑았다. 사실 탄산은 여전히 별로였지만, 괜스레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작은 암호 같았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칠 때, 그녀는 나를 보며 웃었다. 아무 말도 없이,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도 모르게 같이 웃게 되던 순간들. 그때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은 결국 숨길 수 없다. 억지로 감춰도 눈빛 하나, 어색한 손짓 하나에 다 묻어난다. 부끄럽고 어색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서툰 순간들이 진심이였다.


어디까지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던 밤도 있었다. 괜히 마음을 들켰다가 멀어지면 어떡하나 싶어 주저했던 시간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다. 설렘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진다는 걸.


그때의 나는 많이 서툴렀다. 좋아하는 마음을 숨긴다고 숨겼지만, 사실은 하루 종일 티가 났을 것이다. 복도에서 마주치고, 커피를 뽑고, 회의실 앞에서 서성이는 내 모습까지.


그리고 어느 평범한 오후, 퇴근길 엘리베이터 안. 둘만 남은 좁은 공간에서, 나는 애써 평온한 척했지만, 얼굴은 이미 솔직했다. 그녀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 표정 좋은데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웃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갔지만, 그 짧은 순간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좋아하는 마음은 결국 들킨다. 하지만 그게 나쁜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솔직한 순간들이 마음 한편에 따뜻하게 남는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그때의 서툴고 두근거렸던 마음들은 이제 편안한 웃음으로 남아 있다. 가끔 탄산수를 집어 들 때면 괜히 그 시절의 내 어설픈 표정이 떠오르고, 그게 또 싫지 않다.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던 그날들. 부끄럽고 서툴렀지만, 그래서 더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