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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un 11. 2020

흡입기 복약상담 일기

서로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얘기할 수 있을까.

지난 주에 병동 흡입기 복약상담 한번 참관하고 오늘부터는 직접 복약상담을 해야한다. 매일 들어오는 건수에 따라 상담일정이 바뀌는데 오늘 오후에 동기랑 확인해보니 한건이 들어와 있었다.


동기가 먼저 복약상담을 진행하고, 나는 오늘은 아무도 없겠거니 마음을 놓고 있던 중 급하게 4시즘 (퇴근 1시간전) 에 복약상담 의뢰가 들어왔다.


50세 여 환자 자궁내막암 1기, 천식


환자기록을 보니 FEV 수치가 낮게 나와서 수술 일자를 2주 딜레이 시킨 경우였다.

2주 동안 심비코트 라피헬러 2puff bid 처방이 나왔다.


기관지를 확장시키고 염증을 완화시켜 천식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물이다. 흡입기는 처음 사용할때 사용방법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약을 썼을때 효과가 좋다. 따라서 약사는 환자에게 흡입기 사용법을 정확히 안내하고 있다.  


원래 내가 해아할 차례인데, 처음이고 급하게 들어와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윗년차 약사님이 대신 상담하고

나는 한번더 참관하기로 했다.



7층 병동으로 올라갔다. 7층에 도착하니 신생아 중환자실이 딱 보였다. 공기부터 무거웠다. 신생아 중환자실을 지나 우리가 만날 환자 병실에 도착했다.


환자를 만났다. 환자는 통화중이였는데 우리가 도착한것을 알고 이내 전화를 끊었다.


환자에게 앞으로 사용해야 할 약을 보여줬다. 환자는 이미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고 우리의 상담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 약 꼭 써야하는 거에요? 그동안 일상생활하는데 불편함은 없었어요"


환자는 약때문에 수술날이 2주 미뤄진데 불만이 있었다. 수술날짜를 잡는데 3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온갖 검사를 다하고, 이제야 겨우 수술날짜를 잡았는데 호흡 검사 수치가 낮게 나와서 다시 또 2주나 미뤄졌다고.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암이 전이 되면 그건 누가 책임을 져줄꺼냐며. 주치의한테 가졌떤 불만을 우리에게 쏟아냈다.


"아무도 책임지려하지 않잖아요. 그냥 다 환자몫이야.."


환자는 본인이 자궁내막암에 걸린 것도 폐경 후 호르몬제를 4년간 복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유방암 진단을 수술을 했기 때문에 가족력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때문에 세달에 한번씩은 꼭 부인과 정기검진을 받았다고 했다. 5년전 폐경과 동시에 호르몬제 복용을 시작했고, 작년초 부터 조금씩 하혈이 있었지만 주치의는 한번 지켜보자는 말만 했다고 했다. 그렇게 8월즘 하혈이 심해지자 본인이 검사를 원했고, 그렇게 하게 된 검사에서 자궁내막암 판정이 나왔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의사를 믿어서 그래, 착하면 안되는 거였어."


사실 환자의 입장에서만 듣다보니 정확한 상황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냥 듣기만 했다. 그렇게 흡입기 상담하러 왔다가 환자의 이야기만 듣느라 20분이 지체되었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시간을 견디기가 점점 힘들었다.


상담하는 윗년차 쌤도 이미 혼이 나간것 같고, 우리가 해결해줄 수 있는게 없다. 의사랑 상의해보셔야 할 것 같다고 해도. 환자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자궁내막암 1기인데 난소, 자궁, 나팔관 다 들어내야 한대요.. 이렇게 심각한데 2주를 딜레이 해야한다고요?

다른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해야한다고 했는데, 내가 천식 증상이 약간 있어서 혹시나해서 말했더니, 여기 주치의 쌤이 호흡기 내과에 컨설팅을 하더라구. 그랬더니 수치가 낮게 나왔다고 수술을 미룬거야. 말이라도 잘 해주면 얼마나 좋아. 교과서에 이렇게 나와있으니 수술 미뤄야 한다. 그냥 이런식으로 말한다니까."


환자를 만난지 30분이 지났고, 점점 퇴근시간은 가까워졌고, 이 대화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환자의 마음도, 해당 주치의의 상황도 그냥 이해가 갔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그냥 멍하니 그 상황만 지켜봤다.


환자는 이미 마음과 몸이 상해있던 터, 우리는 환자의 말을 들어주다가 그렇게 복약상담 의뢰시간을 채웠다.


"나도 알아요. 선생님들이 할수 있는게 없는거, 그냥 병원이 이래도 되는지 모르겟어.

선생님들한테 말해야 내가 입만 아프지.."


환자는 본인의 이야기가 끝날때 즘, 우리에게 흡입기를 설명할 시간을 주었다.

한바탕 폭풍같은 감정이 지나고 순순히 우리의 설명을 듣고 잘 따라해 주셨다. 쌤이랑 나는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다시 병동약국으로 내려갔다.


앞으로 내가 어떤 환자를 마주하게 될지 두렵다.  내가 답해줄 수 있는 상황이면 좋은데 대부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들어줄 수도 없고.

모두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어떻게 잘 대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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