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이란 말엔 서늘한 힘이 담겨있다. 웬만하면 한 번씩은 해본 일을 모두가 한 번씩은 해본 일로 보게끔 하는 착시효과다. 보통은 해봤을 것 같지만 세상에는 분명 뜨거운 물로 손수 내린 드립커피를 안 먹어본 사람도 있고 장염으로 고생해본 적이 없는 사람도 존재한다. 보통 그러하다는 말은 그러할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높다는 경향일 뿐 예외는 늘 있기에 “그거 보통 다들 한 번씩은 해보지 않나?”라는 말은 가벼이 뱉을 말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하고 오라며 깜짝 휴가와 용돈을 쥐여 줄 스윗한 상사가 못 된다면 말이다.
보통의 경계 밖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또래들과 건너온 세월이 비슷한 이가 남들 한 번씩 다 하는 걸 못 했다면 시간이 없었거나, 돈이 없었거나, 그도 아니라면 용기가 없었다는 뻔한 이유 아니겠는가.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어서 해놓은 일이 있는 것처럼, 할 이유가 없어서 안 해본 일도 있는 거라는 실없는 변명에도 보편의 껍질을 나만 두르지 못했나 하는 생각에 씁쓸함이 돈다.
보통의 울타리 안 안락함을 선호하는지와는 별개로 누구에게나 보통에서 벗어날 기회가, 한편으로는 보통의 궤도로 재진입할 기회가 찾아온다. 스물일곱 먹을 때까지 강원도를 가본 적 없던 나는 이 미지의 땅을 밟을 기회가 몇 차례 있긴 했다. 남쪽 바다 마을이 아닌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서울공화국의 중심에서 자랐다면 강원도 쪽으로 접근이 편했을 거라든가, 대도시 인근 부대가 대부분인 공군이 아니라 육군으로 입대를 했다면 어쩌면 최전방에서 은하수와 함께 영동지방의 정기를 받아먹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이 고향이라는 어머니 머리맡에서 「메밀꽃 필 무렵」은 골백번도 더 읽어봤지만 ‘산허리에 핀 메밀밭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달빛 아래 빛나는 모습’은 머릿속으로나 그려볼 뿐, 부산 사람에게 강원도는 마음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어쩐지 멀기만 했다. 스키 또한 타봤을 리가 만무했다. 산꼭대기는 고사하고, 부산엔 눈이 쌓일 일이 많지 않아 적설량이 1cm만 됐다 하면 휴교령이 내려지던 때였다.
보통이란 이름의 세례는 예고 없이 첫눈처럼 내렸다. 내가 이 나이에 스키장 알바를 하러 가도 될까. 힘이 풍선처럼 빠져가는 목소리에 같이 살던 친구는 삼십 대 중반에라도 시작하지 못하는 건 키즈모델 말고는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돌려주었다. 알다시피, 몇몇 직종과 업장에는 암묵적인 나이 상한이 존재했다. 스키장이나 놀이동산같이, 고단한 현실 바깥에서 달콤한 환상을 파는 곳이 대체로 그러했는데,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점에서 젊고 생기 있는 알바를 쓰는 게 낫다고 받아들여졌다. 부리는 사람 입장에도 나이 어린 사람 다루기가 덜 껄끄러울 일이다. 최소한의 성실함과 예의만 갖춰 보여준다면 아마 그럴 것이다.
대학원생의 휴학이 학부생의 휴학보다 무거울 이유는 없었다. 생업에 병행해서 수업을 들으며 논문을 쓰는 이들도 많을뿐더러 개인 사정에 따라 시기를 자유롭게 조정하며 졸업이라는 결승선을 넘기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도교수님과 진행 단계와 일정 계획표를 맞춰가야 차후에 서로 편해지므로 대학원에서 휴학은 진중한 상담을 거친 후에야 진행됐다. 둘째 학기를 끝내고 마주 앉은 자리에서 나는 지도교수님에게 학비를 버는 김에 인간을 배우고 오겠다 했다. 종합예술과학을 표방하는 조경학도에게 그럴듯한 명분이었다. 장소는 두 번 만들어진다. 설계가의 손에서 한 번, 이용하는 사람들의 손에서 한 번.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설계도는 존재의 목적을 잃어버린 종이 쪼가리, 물고기 하나 없는 텅 빈 바다라 생각한 바도 있었다. 휴학의 본래 속셈을 한참 후에 전해 들은 지도교수님은 당시 끙하는 숨소리와 함께 응원한다고, 다만 너무 늦게 돌아오지는 말아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첫 학기 끝내자마자 연구제안서를 들고 오더니 학술지 투고까지 잘 끌어냈다며 연구자로서 행보가 기대된다고 칭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인간을 알아보겠다는 나그넷길의 시작점으로 강원도 평창, 심지어 봉평에 있는 스키장에서 일을 시작하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일평생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미지의 땅이자 한편으론 어머니의 고향 땅과도 같은 곳에선 어떤 일들이 나를 반겨줄까. 새로움의 옷을 입고 찾아올 보통의 나날들에 가슴이 두근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임인년과 계묘년의 겨울 틈에서 인생이 이상하게 흐를지도 모른다는 정체 모를 쾌감이, 기묘한 불안감이 나를 감싸왔다. 월동준비, 그 끝에 맞이할 건 새봄이었다.
바라는 게 제각각인 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 보통이라 이름한 기준은 이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자 일종의 안전망이다. 그 합의하지 않은 합의를 이미 주어진 것처럼 받아들이며 보통의 사람들은 보통의 기준에 눌리어 자기만의 리듬을 잃어간다. 어디 사회만 탓할 일인가. 보통의 인간상을 설정해놓고 암묵적으로 유도하는 건 공동체가 영속하는 데 필수적이며, 남들 하는 대로만 살아도 손해 볼 것 없다는 어머니의 말은 내게는 딱 맞지 않을지언정 틀린 말도 아니었다. 훗날 탐탁지 않은 결과에 마주하고서 내가 원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는 변명을 하지 않으려면 마음이 얼마만큼 단단해져야 할까. 세계가 내놓는, 보통 그렇게 한다는 것들을 뜨개실 풀듯 마구 해체해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로 겉뜨기 안뜨기 짜내고 싶었다. 순전히 내가 원해서 그런 것들로 하루하루를 예쁜 바구니에 잘 담아내어 언젠가 날 잡고 꺼내 보아 아껴주고 싶었다.
세계를 해체해서 내 방식대로 조립한다는 거창한 소리를 해댔지만, 이런 내가 발 딛고 사는 기반이 바로 이 세계며, 사회고, 공동체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시스템의 한 부분인 인간이 저 좋은 것만 취하겠다고 외치려면 제 잇속만 챙기는 암세포와는 무언가 다르다는 걸 내보여야 했고, 이를 내 평생 숙제로 기꺼이 안고 가기로 했다.
보통의 인간상, 대학원생에게도 그런 게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논문을 쓰고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가해 경험을 쌓아 교수든 연구원이든 다음 단계를 차근히 밟는 것 정도가 아니었을까.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해야지 자꾸 맴돌기만 한다는 쓴소리는 나를 미워하는 이가 아닌 가장 아끼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생채기와 연고가 동시에 얹히는 느낌이었다. 도전은 좋은데 해놓은 게 아깝지 않냐는 염려의 말, 보통 안 그러는 데는 이유가 다 있어서라는 재단의 말을 열쇠고리처럼 달고 걷는 게 어느 때부턴가 거슬리지 않았다. 그들 마음의 온기와 걱정함이 피부에 닿았음에 그랬다. 나라고 대가리가 꽃밭으로 가득 차서, 인생 따위야 되는 대로 사는 사람이겠는가. 인간은 관성에 무력한 존재라 오르던 사람은 계속 올라야만 마음이 편하다. 파병을 위해 스스로 중장 계급장을 떼고 대대장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몽클라르 장군의 선택은 보통 사람들로선 결단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달콤한 과즙만 흐를 것 같은 지위의 맛은 인생의 선택폭을 좁히며 가능성의 세계를 잠식해버린다. 일출한 능력과 스펙이 자기 미래의 시야를 좁히고 나를 나로서 걷게 하는 힘을 쇠약하게 할 수도 있음을 이제는 안다. 진정한 자유는 황금 같은 과거에도 눈을 머무르게 하지 않고 앞을 보게 하는 힘임을.
제 삶의 방식을 감히 소망할 수 있다면 과거를 발판 삼아 앞으로 뛰쳐나가는, 그것도 좌우로 소소하게 갈리는 골목길이 아니라 고속도로처럼 한 방향으로 쭉 뚫려 있는, 그런 직선의 방식으로 삶을 담아내고 싶지 않다. 내가 배운 조경에서 자연은 대체로 매끈한 곡선이었다. 나뭇잎도, 새의 날개도, 지구의 모양도. 이따금 돌고래의 모양과 같이 유선형으로 생의 샛길로 빠지고 싶고 가끔은 꼭대기를 목표로 산을 오르다가도 이어질 하산의 과업을 묵묵히 받아 내고 싶다. 막막한 마음에 한숨 한 번쯤이야 크게 쉬겠지만 곧바로 띠를 허리에 동여매며, 퍽 의연하게.
판타 레이(Panta rhei). 그리스의 옛말처럼, 만물은 흐른다. 나의 시간도 돌고 돌아 어딘가 머무르기야 하겠지만 머지않아 자리를 털고 일어날 요량이다. 쌓아온 시간의 가치는 찬란한 추억이 될지언정 보장된 미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앞이든 뒤든, 위아래를 막론하고 함께 춤을 출 사람만 있다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