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함으로 세운 벽

by 이성진

세상 어딘가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선택한 또 다른 내가 있다고 상상해 보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사골처럼 우려져서 이젠 나올 골수조차 남지 않은 다중우주 이론이랄까, 물리학을 딱 교양 수준으로만 좋아하는 나는 깊이 있게 파고들기가 자신 없는 주제다. 허나 모로 봐도 흥미를 자극하는 맛은 부족하지 않다. 당장 오늘 아침 계란을 삶아 먹느라 지하철을 놓친 내가 만약 편의점에서 훈제 계란을 사 먹었다면 출근을 늦지 않았을 테고, 상사에게 들볶일 일도 없었을 테고, 스트레스 해소용 야식으로 불닭발을 시키지 않았을 테고, 야밤에 화장실에서 곤욕을 치르는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순간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무한대의 분기를 아무렇게나 하나 집어 스크린에 띄워보면 한 편의 영화가 된다. 팝콘이 따로 필요 없다.


“사람은 말이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그러니까 상상을 하지 말아 봐. x나 용감해질 수 있어.”

영화 <올드보이>에서 철웅(오달수 분)이 오대수(최민식 분)에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때 만약’이라는 벽 뒤에 숨기만 한다면 인간은 한도 끝도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그 미완의 시나리오를 우주 어딘가에, 어쩌면 우주 밖 어딘가에 또 다른 나는 실현해내고 있겠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있다 한들 수시 원서에 붙어놓고 가지 않은 대학 후기를 듣는다든가 내가 타작하지 않은 결실을 치사하게 뺏어올 수도 없다. 상상이라는 웜홀의 구멍으로 잠깐 훔쳐보는 게 고작, 너저분한 일상에 달라지는 건 없다.


이따금 부잣집에서 사랑받고 자랐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는 친구의 말에 씁쓸히 웃었다. 노력으로 주어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에 더는 심장이 뛰지 않는 나이, 자유롭게 하늘을 가르는 줄 알고 한껏 바둥댔는데 짚라인처럼 설계된 경로를 착실히 밟고 있더라는 말에 멋쩍게 웃을 나이가 됐다. 노력 뒤에 따라붙는 좌절은 비 오고 마르는 땅처럼, 수차례 반복해서 결국은 굳어버린 땅처럼 심장을 딱딱하게 만든다. 발이 쇠사슬에 묶인 새끼 코끼리가 몸이 커서도 제 경계를 못 벗어난다는 이야기는 많이들 해주는데, 여기서 얼마나 더 경험을 먹고 소화해 몸집이 커져야 내 사슬을 끊어먹을 수 있는지는 어째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집안 경제 수준이나 떼어낼 수 없는 환경이 문제라면 오히려 다행일까.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니까’라는, 슬픔을 조금 덜어낼 값싼 위로의 말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기 삶을 일부나마 개척할 여지가 있을 때 내려버린 선택은 퍽 설익은 것임에도 치러야 할 할부금을 누가 대신 내주지 않는다. 살면서 조금씩 갚아나가는데도 원금은 도통 줄어들 생각이 없다.


아마 열아홉, 담임선생님 앞으로 내민 수시 원서에는 여섯 장 중 두 장이 비어있었다. 자리에 맞게 쓰인 건 부산교대 한 장, 부산 거점 국립대 세 장. 전교 1등 녀석이 자기 반에 있다고 자랑하던 담임으로서는 참으로 속 터지는 일이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고향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다는 고집은 알겠으나 왜 하필 그 성적으로 부산에 남겠다는 건지.


“안 쓸 내신 등급이면 양보나 하지.”

시험이 끝날 때면 문제지를 맞춰보던 친구들로부터 장난 진심을 반씩 담은 화살이 날아왔다. 꼬질꼬질한 영웅보다는 섹시한 악당이 되고프다는 말을 언젠가부터 달고 살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누군가에게 지독히도 빌런이었다.


원서를 마무리하기 전날, 담임선생님과의 설전을 복기하며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다 지나가듯 말을 흘렸다. 엄마는 읽던 성경책을 덮고 아홉 시 뉴스 할 시간이라며 TV를 켰다.


“두 장 남은 거 아깝잖아. 뭐 어차피 안 가긴 할 건데, 위쪽 대학으로 써 놓기만 할까?”

부산에 남겠다는 게 제 나름의 결단이었음에도 명문대 합격이라는 타이틀은 포기 못 할 무언가였을까. 가지 못한 게 아니라, 붙었는데도 더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안 간 거라는 으스댐이 훈장처럼 빛나 보였을까. 스스로가 확신이 없던 변혁의 읊조림은 TV 소리에 묻혀 멀리 뻗치지 못했다.


지난날을 톺아보면, ‘그때 만약’이라는 벽을 퍽 많이도 세웠던 것 같다. 오늘치의 허름함을 아무렇지 않게 걸쳐 입는 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상상력이 쓸데없이 좋은 나는 비겁함의 벽에 기대지 않고서는 자신의 가치를 세울 코어 힘조차 없었다.

‘그때 만약 종교의 멍에를 빨리 떼어냈더라면’

‘그때 만약 SKY대학을 지원했더라면’

‘그때 만약 합격한 교대를 갔더라면’

‘어땠을까?’


역사에 만약을 가정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가정으로부터 파생되는 무수한 사건들을 완벽히 예측할 수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타임머신이 없는 이상 개입할 방도가 없기에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미래는 현재를 통해 써나갈 수 있다 해도 과거는 이미 써진 것이다. 지적 유희는 재밌는 일이지만 그 끝에 딱히 소득은 없다.


어차피 영양가 없는 일인 걸 인정하는 마당에, 그렇다면 약간의 비겁함을 더해 보기로 했다. 니체를 만나지 않은 스무 살의 내가 종교를 버리고서도 신이 죽었다는 허무한 세상에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을까? 군대에서 유연하게 처세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상태로 타지에서 험난한 대학원 생활을 해낼 수 있었을까? 모순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세상의 양면성을 모르고 교사가 되었다면 기껏해야 남의 말이나 옮기는 앵무새가 고작이지 않았을까? 죽기야 더하겠냐며 자신있게 삶을 앞으로 내던지는 기백은 그때까지의 길을 밟았기에 비로소 감당할 수 있는 결실이 아니었을까? 지나고 보니 사람 일은 모를 일이더라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경구는 후회와 회한으로 점철된 과거에 정당성을 입힐 마술 붓이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이탈리아의 역사가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의 말을 일 인분의 역사에 빌려오지 못할 것도 없었다. 민족과 공동체의 역사가 과거에 박제된 것이 아니라 현대의 필요와 가치관에 따라 끊임없이 재정립되어 새롭게 구성되는 것처럼, 나의 과거는 그 자체로 고정되어 죽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루하루의 끝에 새롭게 의미가 부여되어 다시 조립될 뿐. 내게 남겨진 임무는 지난날을 덧칠할 붓을 들고 오늘을 즐겁게 그려내는 일이었다. 지금, 여기,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인간에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노릇이니 타임머신은 없어도 그만이었다.


‘과거는 다시 쓸 수 있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보다도 거룩한 울림이었다. 마침 세부 전공을 도시에서 조경으로 바꾸기로 마음먹은 즈음이었다. 도시계획엔 두각을 보였으니 이번에는 도시설계를 배워보겠다고,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 전문가가 되겠다고 열어젖힌 대학원의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내 발을 찧어버려 신음하던 때였다.


학부 때 쌓아온 지식이 발판이 되어주지 못할 거라는 염려를 가린 건 온전히 자신감과 자부심이었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는 자신감이자 공부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 남들이 사 년간 쌓아 올린 경험치를 한 학기 만에 메꿀 각오가 되지 못한 공허한 자신감은,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만 공부하기 좋아할 줄 알았던 오만한 자부심은 비겁한 대학원생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스스로 빚어낸 결과에 무언가를 탓할 틈이라도 찾지 못하면 괴로워 죽을 것만 같던 그때 나를 멱살 붙잡고 살렸던 게 바로 그 거룩한 울림이 아니었을까.


조경으로 석사 학위를 따고서도 늘여놓은 짓은 도무지 과거를 써먹지 못할 보법으로 걸어왔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x나 용감하게 살다가 누가 물어보면 말할 테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나는 그때 그 상황에서 기꺼이 그 선택을 다시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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