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없는 겨울이었다. 같은 나라인데도 기차는 마법같이 나를 다른 계절로 데려다주었다. ‘서울 사람들은 이런 날씨가 익숙한가.’ 시베리아 기단의 병정들이 옷깃 사이로 스며와 창을 들이밀었다. 남쪽 따뜻한 지방에 사는 나는 이 도시에서 한없이 이방인이다.
무언갈 두고 나오는 오랜 버릇이 있다. 대개는 자잘한 해프닝으로 끝나곤 했는데 인생의 방향을 바꿀만한 사건도 더러 있었다. 의무경찰 면접을 보러 갔던 날, 신분증을 방에 두고 와 팔자에도 없는 공군에 입대했다든가 하는 뭐 그런. ‘팔굽혀펴기 20회’ 정도는 거뜬하게 통과하라고 키운 광배근은 꺼내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다시는 중요한 일에 준비물을 두고 오는 불상사는 없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부산지방경찰청에서 집까지 두 시간 걸음을 생으로 꼬박 걸었다. 고생해서라도 부르튼 다리에나마 좀 새겨놓자는 고행길이었다.
조금은 나아졌다 할까. 적어도 수험표를 놔두고 왔다는 사실을 전날에는 눈치챘으니 말이다. 기차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에서 발견했단 게 좀 우습긴 하지만. 아침 일찍 눈을 떠서 재빨리, 그것도 생전 처음 가보는 곳에서 프린트 카페를 찾아 무사히 수험표를 출력할 자신이 없었다. 늘 그랬듯, 시간에 빠듯이 일어나 헐레벌떡 면접장까지 뛰어갈 게 뻔했다. 일찍 맞춘 알람은 언제나 눈꺼풀에 밀려 제 역할을 못 해낸다.
정류장에 내리고 보니 다음 버스까지는 50분이 남아있었다. 야심한 밤에 환승을 한 번 해서라도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지, 길거리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둔다고 원망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은 따뜻한 곳이 절실했다. 얇은 정장 바지가 덮지 못하는 복사뼈 부근에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 춥고 깊은 밤에 택시를 타지 않는 이유는 그게 더 비싸기 때문이고, 삼천 원짜리 24시 롯데리아가 아닌 피시방에 들어간 이유는 그게 더 싸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천 원이면 적당한 난방과 정수기 물이 있는 곳. 뼈까지 시린 밤, 피시방은 에덴동산이 된다. 어차피 수험표 출력도 해야 할 터였다.
숱한 알바를 거쳤음에도 어째선지 피시방 알바 경험은 없었다. 그렇지만 야식거리 주문이 밀려 들어오는 시간대에 알바 직원이 정신없다는 것만은 모를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을 두 번이나 붙잡고 물어보는 건 다분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여기 프린트 돼요?”
“프린트는 아무 컴퓨터에서나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목소리 끝이 이상하리만큼 기어들어갔다. 그는 팔에 화려한 문신을 하고 있었고 귀와 코에, 정확히는 고리를 걸 수 있는 곳이면 죄다 피어싱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어쩌랴. 나는 더 물러날 곳이 없다. 여기서 수험표를 출력하지 못하고 숙소에 가면 일정은 뜨개 털실처럼 꼬일 것이고 당장 내일 면접에 지장이 생긴다. 바짓가랑이를 붙잡더라도 환승 버스가 오기 전 여기서 꼭, 프린트 과업을 완수해야 했다.
요즘 현금을 들고 다니는 이가 드물다. 계좌이체와 카드결제, 각종 ‘페이’가 익숙한 현대인들에겐 불필요한 몇 장 종이도 무겁다. 나 역시 지갑을 따로 들고 다니지 않는데, 생각해보니 프린트 몇백 원 치를 카드결제로 해줄지는 미지수였다. 당장 피시방을 나가 근처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고 다시 와서 결제를 마친다는 건 더욱이 험난해 보였다. 그때까지 얌전히 버스가 기다려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만 원 뽑는데 천 원을 수수료로 떼이는 일도 적잖이 속이 쓰렸다. 지갑 사정이 아쉬울 땐 아쉬운 소리도 아쉽지 않게 나온다.
출력 버튼을 눌러놓고 계좌이체로 할 수 있게 부탁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알바 직원 앞에 섰다. 빨간 인장을 드러내며 출력된 수험표를 그는 찬찬히 보고 있었다.
“컬러는 한 장에 오 백원인데... 뭐, 안 주셔도 돼요.”
직원이라 번거로운 결제를 귀찮아하는 것인가. 그렇더라도 어찌 서비스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한껏 난처한 표정으로 현금인출기까지의 최단 거리를 잠자코 떠올렸다. 과민성인가. 배 아래 쪽이 살살 아파져 왔다.
“저도 이번에 대학원 지원하거든요. 저는 건국대.”
달이 조금 기울었는데 밖은 여전히 을씨년스러웠다. 피시방 앞에는 포장마차가 두 개 있었고 빨간 가림막 위로 후더운 김이 올랐다. 평소였으면 들어가서 뭐라도 털어넣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났을 터였지만, 글쎄, 기온은 퍽 낮아도 더는 춥지 않았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몽글한 것이 계속해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이천 원짜리 커피를 하나 사 고리를 걸 수 있는 데까지 걸어놓은 알바 친구에게 가져다주었다. 돈은 이럴 때 쓰라고 지금까지 아꼈던 게다.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눈빛으로 보듬어주었고 다 잘될 거라는 말을 주머니에 챙겨주었다. 기지개를 크게 한 번 켜고 나니 한파에 얼었던 손이 자유로웠다. 웃기지, 몰래 녹은 건 내 마음인데.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지 말라는 교훈을 알지만, 호의를 주고받는 것만큼 따뜻한 일이 세상에 또 없다는 것을.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에서 대학원 생활하면서 사람에게 데일 일은 숱하게 많겠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들을 만나 다정히 생의 단면을 빚어내겠구나, 면접 전날 이토록 우연히 포근함을 선물 받은 것처럼 그 믿음 하나로 나는 이 년을 어떻게든 죽치고 앉아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꼬박 일 년을 못 채우고 휴학계를 낸 건 그 이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