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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대곰돌이 Jul 17. 2022

돈 없는 파이어족의 여행일기

EP7. 함께 하는 첫 여행, 그리고 귀국

Write & Photo by 거대 곰돌이


미국 도착 후 아마 제대로 된 첫 외식이었을 부바 검프 산타모니카 비치 지점
누구나 사진을 찍는 산타모니카 비치의 Route 66 사인

미국 입국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찌 됐든 우리의 여행은 시작했다. LA의 날씨는 좋았고, 코로나와 상관없이 함께 있는 게 좋았고, 온전히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다. 유명한 관광지들을 둘러봤고, 남미에서와는 다르게 좋은 호텔에 머물렀고, 맛있는 식사를 하며 여행을 즐겼다. 초반 LA 여행을 하던 당시까지만 해도 여행 자체에서는 코로나의 영향을 크게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다 잊고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항공 티켓이 취소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각자의 티켓의 주체인 항공사와 소통을 하고 있었는데, 나보다 먼저 티켓 근황이 계속 바뀌었던 것은 여자 친구였다. 하와이 경유 편에 문제가 발생했던 그녀는 결국 기존 티켓을 정리하고 당시 기준으로 가장 저렴했던 출국 티켓을 찾아서 직항 편을 예약했었는데, 2차로 예약했던 그녀의 귀국 편은 LA의 베니스 비치를 걷던 중에 취소가 되었다. 그래서 그날은 한창 베니스 비치를 걷다가 서로 더 여행을 못하겠다며 마트 가서 먹거리 대충 사서 바로 숙소로 복귀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운영을 중단한 LA의 한 타워에서의 야경

이후에 그녀는 예약했던 노선 대신에 LA에서 인천으로 가는 항공편으로 티켓이 변경되었는데, 처음 변경되었던 LA-인청 항공편도 최종 날짜는 아니었고, 배정되었던 스케줄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런데 이런 불안정한 스케줄 변화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는데, 그녀의 티켓이 계속 변경이 되었던 것처럼 내 티켓도 계속 변경이 되었고, 그건 아마도 자국민 여행객들을 안전하게 귀국시키기 위해서 산발적으로 예약되어 있던 티켓들을 하나로 모으던 과정이었던 것이었다. 그런 항공사의 조치 때문에 결국 그녀와 내가 동시에 항공사와 티켓 여정을 조율할 수 있는 타이밍이 생겼고, 결국 최종적으로 함께 같은 항공편으로 귀국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처음에 예약했던 각자의 출국 편을 타러 가기 위해 이동하려고 예약했던 국내선 항공권들은 환불을 못 받고 다 날렸지만, 집에 돌아갈 수 있는 항공편이 같은 항공편으로 무사히 최종 확정이 된 것은 좋은 일이었다.


LA의 여행에서 국제선 항공권을 처리하고 여행도 마무리한 뒤, 우리는 바로 라스베이거스로 이동했다.


라스베이거스의 여행 계획은 좀 독특했는데, 라스베이거스에서 초반에 3박 정도 여행을 한 뒤에 차를 빌려서 그랜드 서클을 일주일 정도 여행을 하고, 2000km가 넘는 거리를 운전하는 긴 여행을 한 뒤에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돌아와서 다시 여행하고 출국 전 마지막 목적지인 LA로 다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내가 운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2000km를 혼자 운전해야 하는 그녀의 컨디션이 중요했는데, 그녀의 컨디션 회복에 필요한 기간이 라스베이거스로 이동한 초반에 필요했기에 기간을 둘로 나눈 것이다. 그냥 먼저 라스베이거스를 길게 여행하고 갔어도 됐는데, 우리의 목표는 라스베이거스보다는 그랜드 서클이었기에, 일정을 그렇게 잡았다. 그리고 돌아가기 전에 쇼핑 등도 해볼 생각이 있었기에 그랜드 서클을 여행하면서 굳이 쇼핑한 짐들을 다 싣고 다니면서 불편한 일정을 다닐 필요는 없었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베네시안 리조트 내부에서의 간이 공연
멋진 하이롤러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의 전망
라스베이거스 다운타운에서 유명한 미디어 쇼. LG가 만들었다고 한다.

라스베이거스의 여행은 즐거웠다. 자유롭고, 볼거리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많고, 호텔도 저렴하고, 너무 즐거운 여행이었다. LA와 라스베이거스에서는 4~5성급 호텔에서 계속 머물렀는데, LA에서 지낼 때는 생일이라서 멤버십 같은걸 활용해서 무료 와인을 선물 받았고, 생일이 지난 라스베이거스에서는 '허니문'이라고 체크인할 때 요청을 해서 역시 또 와인을 선물 받았다. 지금도 농담처럼 말을 하지만, 우리는 아마 이게 우리끼리는 '허니문'이었다. 그렇게 소소한 즐거움을 계속 찾아가며 여행을 한 뒤, 그랜드 서클로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Route66을 달리는 중에 만난 마을 & 차에서 보는 그랜드 캐니언
그랜드캐니언 주변을 달리던 중에 만난 야생동물

그랜드 서클을 여행할 때부터 코로나와 관련해서 눈에 띄는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이때까지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그랜드 서클 여행의 특성상, 먹거리를 사러 마트를 자주 들르게 되었는데, 뉴스에서나 보던 '마트 쓸이'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여행정보를 얻었어야 했던 관광 안내센터는 문을 닫은 곳들이 많았고, 유명 캐니언 중 하나였던 엔틸로프 캐니언은 아예 폐쇄되었다. 그래도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엔틸로프 캐니언을 제외하고 대부분 다 관람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국립공원 자체에 대한 출입통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소식을 찾아 본거 긴 했지만, 정말 타이밍이 운이 좋은 타이밍이었던 게, 우리가 떠난 뒤에 결국 그랜드캐니언 등 많은 미국의 국립공원들이 폐쇄조치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아름다웠던 그랜드 서클 운전 중 노을. 브라이스 캐니언을 떠나 숙소로 돌아가던 중.

그랜드 서클 여행이 중반을 넘어선 시점부터 새로운 문제가 생겼는데, 바로 호텔이었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라스베이거스 여행은 중심이 되는 스트립이라는 거리를 중심으로 넓게 펼쳐져있는 호텔들을 둘러보는 게 핵심인데, 이전 3박 여행은 스트립을 중심으로 북쪽만 둘러보던 여행이고 숙소도 북쪽이었고, 이후 3박은 남쪽을 여행하기 위해 숙소도 남쪽에 예약을 해뒀었다.


라스베이거스 복귀 전에 예약해두었던 호텔이 1차로 취소되었다. 정부의 카지노 셧다운 명령에 따른 취소였다. 한 브랜드 호텔은 홈페이지 공지사항 등을 통해서 그룹사 전체 취소를 알렸지만, 다른 그룹사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2차로 다른 카지노 호텔을 예약했는데, 그것도 몇 시간 되지 않아서 곧장 취소되었다. 단시 그룹 호텔들 별로 시간차가 있었을 뿐이었고, MGM, 시져스 같은 호텔 체인들이 통째로 예약을 취소하는 것 같았다. LA의 항공 스케줄을 바꿀 수 없었고, 국내선도 예약 중이었기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무조건 숙박을 했어야 했고, 계속해서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을 예약했다. 그리고 결국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당일, 마지막으로 예약했던 호텔도 취소되었다.

렌터카를 반납하기 전 차에서 먹었던 만찬.

식당도 문제가 생겼는데, 라스베이거스는 주정부 명령으로 더 이상 착석을 해서 식당을 이용할 수 없었다. 오직 포장이나 배달만 가능했는데, 우리는 숙소가 없었고, 밥은 먹어야 했기에, 그래서 먹고 싶은 메뉴를 포장을 해서 차에서 먹었다. 차에 식탁 같은 용도로 쓸 수 있는걸 열심히 찾아보니 트렁크의 공간을 나누는 용도로 들어있던 긴 판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걸 꺼내서 그걸 각자의 무릎에 올려놓고 그걸 식탁 삼아 포장한 음식을 먹었다.


열악한 환경의 식사였지만, 그녀와 만난 이후로 같이 먹었던 식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 중 하나가 이날 차에서 먹었던 식사로 손꼽히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를 절반밖에 못 봐서, 아마 다시 같이 라스베이거스에 간다면, 반드시 이 식당은 꼭 다시 방문을 할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머물던 마지막 숙소

식사 후 한숨 돌린 뒤,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숙소를 열심히 둘러봤다. 예약이 안 되는 곳이 대부분이었는데, 30여 분간 찾고 예약하고, 취소하고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숙소를 발견했다. 스트립 중심부에서는 제법 떨어진 곳이었고, 다행히 렌터카 사무실에서는 걸어서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간단한 주방 시설이 있는 숙소였고, 식당을 못 가는 우리 입장에서는 괜찮은 조건이었다. 예약이 되는 것을 확인하고 실제 예약 전에 숙소에 먼저 전화를 했다. '정말 예약이 가능합니까?', '나 예약 3번 취소되었다. 다시 한번 물어보는 건데 정말 예약이 되는 겁니까?' 이걸 3번쯤 물어보고 확신한 뒤에 바로 예약을 했다. 카지노 호텔이 아니었고, 레지던스형 숙소라서 장기로 머무는 사람들을 위한 아파트 같은 숙소였는데, 운 좋게 찾아내고 예약을 했던 것이다. 항공편은 고정이었기 때문에 다른 옵션은 없었고, 그렇게 불이 꺼진 라스베이거스에서의 3박이 확정되었다.

차가 있을 때 3일을 버틸 준비를 한 뒤에 차를 반납해야 했고, 그랜드 서클에서 이미 현지 마트가 다 비어있던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인 대형마트로 찾아갔다. 역시 라면, 파스타 같은 저장식품들은 대부분 다 판매 종료. 살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래도 한국사람이 아니면 먹지 않을 밀키트가 남아있어서 몇 개 챙겼고, 구석에서 소외되어 있던 일본 햇반을 몇 개 찾아서 담고, 유독 비빔면을 포함한 매운 라면들만 매진이 안돼서 그걸 좀 담고, 들르는 타이밍에 컵밥들이 리필이 돼서 버텨야 되는 기간 맞춰서 다 쓸어 담았다. 그렇게 3일 동안 라스베이거스에서 외출 없는 3일을 버텼다. 정확하게 말하면 문 밖으로도 나가질 않았다.

비빔면과 골뱅이 조합, 이때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이 조합이 현재는 우리의 인생 음식 같은 걸로 남아있고, 한국에서 여행을 할 때도 종종 이렇게 한 끼를 해결한다
TV에서는 온종일 코로나 뉴스만 나와서, 휴대폰 삼각대를 세워두고 넷플릭스를 보는 게 하루의 주된 일과였다.

개인 인스타그램의 동영상 캡처 화면

라스베이거스를 떠날 때는 이제 그 여파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하던 라스베이거스 공항의 슬롯머신들은 모두 꺼졌고, 많은 노선들이 취소되거나 딜레이 되었다. 공항 내의 상점들도 몇몇 필수 상점을 제외하고 대부분 문을 닫았는데, 비슷한 날짜에 예약했던 여자 친구의 항공편도 딜레이, 다른 항공사였던 내 항공편도 딜레이가 되어, 결국 공항에서만 엄청 긴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렸고, 그녀는 저녁 시간에, 나는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간에 LA의 공항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던 순간이었다.


소소한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그 와중에 나는 LA 공항에서 캐리어가 깨진 것을 발견하고 그걸 접수하고 교체받느라고 시간을 더 보냈고, 먼저 도착해서 체크인했던 그녀는 먼저 밥을 먹고 나는 몇 시간 늦게 도착해서 자정이 거의 다 되어 식은 밥을 먹었다. 다음날 아침 호텔 조식은 뷔페였는데 착석을 할 수 없어서 쟁반에 최대한 꾹꾹 눌러 담아서 그걸 3~4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로 가져가서 밥을 먹었다.


난 비행기를 타는 날까지도 마스크가 없었고, 마스크를 구할 수도 없었는데, 여행 커뮤니티에 마스크가 많다고 하는 한 학생을 만나서 마스크를 하나 받을 수 있었고, 그걸 쓰고 10시간 비행을 했다. 뉴스에서 보던 것처럼 방역 복장을 입고 비행기를 타는 중국인들도 있었고, 항상 들떠있는 공항이 가라앉아있는 그 모습이 참 어색했다.


그렇게 우리는 3월 말, 같이 한국으로 돌아왔고,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제부터 격리 시작이다.


- EP7 FIN -


안녕하세요. 블로거 거대 곰돌이입니다.


이 브런치의 시리즈 '돈 없는 파이어족의 여행일기'는 코로나로 2020년 3월 미국에서 입국한 이후, 다시 해외로 떠날 예정인 2022년 12월 여행 글을 위한 인트로 성격의 글입니다. 본격적인 여행 글은 여행 출발이 임박해지는 시점에 본격화될 예정이고, 그 이전에 연재되는 글들은 제목처럼 파이어족으로 새롭게 살아보려고 시도 중인 블로거 거대 곰돌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생업 블로거로의 도전을 시도하게 해 준 밑거름이 되어준 과거의 많은 여행 이야기들과 코로나 시절 이어간 국내여행은 지난 2년여 동안 제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블로그를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https://blog.naver.com/ragun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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