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다시 백수, 그리고 블로그를 시작하다.
Write & Photo by 거대 곰돌이
항공편 때문에 우여곡절이 참 많았지만, 별 탈 없이 한국으로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환불이 안 되는 미국의 국내선 티켓을 몇 장 날렸고, 그래서 금전적인 손해를 조금 보긴 했지만, 심적으로 큰 낙담은 없었다. 나중에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이 없어서 한국에서 전세기를 띄워서 비싼 돈으로 귀국하던 이들을 생각하면 미국 국내선 항공권 몇 개 환불 못 받은 것은 손해도 아니었고, 오히려 큰 덕을 본 경우이기도 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코로나 이전의 마지막 미국 여행이 '여행'이라는 그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코로나 이전에는 누구나 누릴 수 있었던 그 '여행'의 끝물이었고, 입국한 이후 전 세계의 여행은 꽁꽁 얼어붙었다. 코로나가 익숙해져 가면서 여자 친구와 종종 나누던 이야기였지만, 그때 그렇게 여행하고 마지막에 귀국할 수 있었던 우리는 참 축복받은 사람들이었다.
입국할 당시는 전원 PCR 검사로 전환되기 바로 직전이었고, 그래서 증상 관련 보고만 하고 체온 체크하고 입국해서 바로 공항을 떠날 수 있던 시기라서 공항에서도 별문제 없이 귀가할 수 있었다. 입국 뒤에 며칠 후부터 귀국하는 전원을 대상으로 PCR 검사를 시작했으니까, 여러모로 좋은 타이밍에 귀국을 했다.
집으로 무사히 복귀한 이후, 정부의 지침에 따라 바로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당시의 격리는 기본적으로 '2주간 격리'를 했어야 했고, 이동 동선 추적을 하던 시기라서 꼼짝없이 방 안에서 나가지 않는 격리를 했다. 여행의 거의 마지막까지도 느끼지 못했던 코로나에 대한 위기감을 집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는데, 가족들은 모두 일상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외국에서 입국한 나는 분명히 그들의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는 '코로나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
다행히 집에서 컴퓨터만 있으면 그렇게 심심하지 않은 생활을 하는 편이라서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면 아예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격리를 철저히 했고, 규정상 2주 정도만 격리를 했으면 됐지만, 어쩌다 보니 거의 3주 가까이 격리를 하고 첫 외출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격리 이후의 첫 외출은 여자 친구를 3주 만에 만나는 일이었는데, 사이버 친구처럼 3주 내내 카카오톡으로만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만나니, 불과 몇 주 전에는 미국에서 매일 붙어서 여행을 했지만 뭔가 여러모로 어색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아마 만나고 있는 세상이 그 몇 주 동안에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렇게 격리 이후의 첫 외출도 마무리했고, 본격적인 코로나 이후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아무튼, 대략 3주간의 '자가 격리자'라는 직업을 잃은 뒤, 이제는 완벽하게 다시 무직자가 되었다.
데이트를 하거나, 관계 그 자체에 대해서는 큰 문제는 없었지만, 어쩌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을 것들이 대화 중에 하나씩 터져 나왔다. 바로 '돈'이었다.
여자 친구도 지난 여행이 퇴사 후 퇴직금으로 떠났던 여행이고, 나도 뉴질랜드와 쿠스코에서 돈을 벌면서 생활하긴 했지만 많은 자금을 미국 여행을 통해서 소비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모두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진 않았다. 몇 달 정도는 일을 안 해도 틈틈이 데이트할 비용 정도는 갖고 있었지만, 코로나 상황이 오래 이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아껴야 오래 버틴다는 생각이 커져서 좋은걸 먹으러 갈 수 없었고, 만나는 매 순간 씀씀이를 계속 신경 쓰게 되는 불편함이 지속되었다. 사람이 돈에 초라해지면 안 된다고 하지만, 그때만큼은 어쩔 수 없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여자 친구는 다행히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면서 여자 친구는 '돈'에 대한 부담은 덜 수 있었다. 여전히 내가 그 돈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는걸 여자 친구도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여자 친구가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는 액수가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욱 불편한 마음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돈 버는 사람이 더 쓰는 거지 뭐!"
여자 친구의 주장이었고 여자 친구가 일을 안 하고 내가 돈을 벌었어도 같은 말을 했겠지만, 아무리 세계를 누비며 글로벌 마인드로 살아왔다고 자부한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성장한 입장에서 그걸 그대로 수긍하기는 쉽지 않았다. 원래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신세 지며 살아오는 걸 매우 어색해했고, 항상 '주는 게 맘 편하고 받는 거에 인색하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돈으로 인한 관계의 불편함이 길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비슷하게 바로 취업을 해서 뭐라도 일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하필이면 대부분의 커리어가 '여행사'였기 때문에, 코로나 시기에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실, 그 어떤 장르의 아르바이트라도 마음만 먹었으면 쉽게 일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자 친구도 농담 삼아 진담 삼아 매번 '할 일 없으면 쿠팡이라도 가볼래?'라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인데, 또 그런 일을 하긴 싫었다.
일을 못한 이유는 하나였다. 무엇이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한 용기가 없었다. 핑계 같은 이유이기도 하다. 여행사를 떠나서 호기롭게 이민을 가겠다고 떠난 게 2019년이고, 외국에서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느낌으로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있었지만, 여러 과정을 거쳐서 1년여 만에 집에 완전하게 돌아온 뒤에는 '다시 여행업계로 돌아가야겠다'라는 생각이 컸고, 그 생각이 다른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지 못한 것이다.
역시 핑계 같은 생각이지만, 원래 결심을 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또 하나를 결정하게 되면 그 결정을 뒤흔드는 다른 건 생각을 또 잘 안 하는 편이라서, '언제 여행사로 다시 영업을 시작할지 모르는데, 여행사가 다시 일을 시작하는 시점에 내가 바로 지원할 수 없으면 취업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당시에 내 결정과 근거였고, 그래서 다른 일을 하며 돈을 벌면서 버티자는 생각을 스스로 납득시키지 않았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 타이밍을 위해 고집스럽게 버티자는 생각만 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이 생기니 아껴야 하고, 그러니 당연히 돈을 쓰는 건 부담스럽고, 얻어먹는 것도 계속 부담스러운 상황이 지속된 것이다.
고민 중에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네이버 블로그'이다. 블로그의 시작은 원래 '돈을 벌어보자!'라는 느낌의 시작은 아니었다. 긴 격리생활에 뭔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을 찾는 그런 가벼운 시작이었다.
여행사를 다니며, 혹은 개인적으로 여행을 다니며 촬영했던 대략 만여 장 정도의 사진을 백업해 둔 게 있었고, 한국 생활을 하면서 또 사진은 계속 쌓여갈 테니 소일거리로 하기에는 블로그만 한 게 없었다. 그렇게 닫아두었던 블로그를 다시 열고, 새롭게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귀국 후에 새로 시작한 첫 글은 2020년 4월이지만, 과거에 블로그를 잠깐씩 운영했다, 닫았다, 하면서 원래 네이버 계정은 광고 계정이 활성화되어 있었고, 이미 네이버에서 다 합쳐서 몇 천 원, 몇만 원 정도의 적은 액수지만 광고 수익을 받은 경험이 있던 계정이었고,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부터 '블로그로 수익을 만들어 내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운영하다 보면 어느 정도 금전적으로 보조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광고 수익으로 한 달에 한 '20만 원'만 들어오면 코로나 시기에 버틸만한 자금은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컸다. 이런저런 생각들은 꾸준히 블로그를 매일매일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블로그로 뭔가를 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여자 친구의 조언이었다.
'블로그를 하면 협찬이나 금전적인 수익을 벌 수 있다더라'
여자 친구는 회사 생활과는 다르게 나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은퇴'를 꿈꾸던 사람이었고, 항상 파이프라인을 다양하게 갖춰서 일을 하지 않고 고정 수익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조금 더 빨리 귀국 후에 블로그를 시작했고, 그녀도 원래 갖고 있었던 블로그 계정을 몇 주 후에 새롭게 운영하기 시작했다. 내가 네이버 블로그를 그렇게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광고수익만 믿고 소일거리로 시작하던 것과는 다르게, 그녀는 유료 강의 등을 수강하며 블로그로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배웠고, 그걸 내게 공유해줬다.
10년도 더 지난 20대 대학시절이지만, 바이럴 마케팅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회사에서 5개월 동안 매일 네이버 검색어와 싸우면서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했었고, 회사를 다닐 때는 출장을 다녀오면 숙제처럼 회사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려야 하기도 했었고, 더욱이 회사의 네이버 광고를 대행업체를 맡기지 않고 직접 광고비를 집행하는 담당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네이버 블로거가 어떤 식으로 광고 수익을 얻게 되는지 광고주 입장에서 모두 알고 있었다. 오랜 기억이었지만,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면서 다시 그 내용들을 밖으로 꺼낼 수 있었고, 이후에 현실적인 문제를 곧장 찾아낼 수 있었다.
가끔 외출해서 건져오는 맛집 리뷰를 제외하면 대부분 과거의 사진으로 만들어가는 '여행 글'이 블로그의 주된 주제였는데, 코로나 시기에는 어느 누구도 여행을 광고하지 않고, 당연히 여행 글을 통한 광고 수익은 작을 수밖에 없었다. 거의 매일 포스팅을 했고, 열심히 새로 생겨난 이웃과 소통하며 열심히 블로그를 관리했지만 결과로 돌아오는 건 하루도 일주일도 아닌 한 달에 만원 정도밖에 안 되는 광고수익과 블로그를 열심히 운영하고 있다는 '자기 만족감' 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여자 친구가 강의를 통해서 찾아낸 것이 바로 '체험단'이라고 부르는 활동이었다. 지지부진하던 블로그의 수익이 생활을 어느 정도 보조하게 된 수익형 블로그로 다시 태어나게 된 시발점이었다.
- EP8 FIN -
안녕하세요. 블로거 거대 곰돌이입니다.
이 브런치의 시리즈 '돈 없는 파이어족의 여행일기'는 코로나로 2020년 3월 미국에서 입국한 이후, 다시 해외로 떠날 예정인 2022년 12월 여행 글을 위한 인트로 성격의 글입니다. 본격적인 여행 글은 여행 출발이 임박해지는 시점에 본격화될 예정이고, 그 이전에 연재되는 글들은 제목처럼 파이어족으로 새롭게 살아보려고 시도 중인 블로거 거대 곰돌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생업 블로거로의 도전을 시도하게 해 준 밑거름이 되어준 과거의 많은 여행 이야기들과 코로나 시절 이어간 국내여행은 지난 2년여 동안 제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블로그를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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