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시원하게 내렸다. 원래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 비는 반가웠다. 며칠간 이어진 폭염이 그 이유였다. 오늘은 제법 선선한 게 썩 마음에 들었다.
퇴근 후 저녁을 먹으며 고민했다. 매일 걷기가 이제 두 달이 넘어가서 그런지 슬슬 고삐가 풀린다. 아, 귀찮다. 나가기 싫다. 그렇다고 집에서 운동하기도 싫다.
고비는 종종 있었지만 그때마다 악착같이 지켜냈기 때문에 오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생각도 하지 말고 움직이자! 두툼한 옷을 챙겨 입고, 새로 장만한 장화를 신고 마지막으로 우산을 챙겼다.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몸이 이끄는 데로 무작정 걸었다. 역시 익숙함을 못 벗어던지고 결국 도착한 곳은 공원이다. 나처럼 우산을 어깨에 메고 걷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평소 바글거리던 산책로가 한산하니 비 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었다.
2020.06.24 매일 걷기 72일차!
우산으로 후두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평화롭게 거닐었다. 장화를 신어서 발에 무리가 갈까 봐 천천히 걸었다. 딱 한 바퀴. 오늘은 공원 한 바퀴만 돌고 돌아가자.
걸으며 최근 내 오락가락하던 감정, 남편과의 다툼, 내가 뱉은 말들, 끊어낸 인연들, 받지 않은 전화들을 생각했다. 답을 구하는 종류의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빗방울이 우산에 맞아 쭉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생각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발걸음을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에 사로잡혀 걷다 보니 어느새 한 바퀴.
몸을 틀어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저녁때 까먹은 약을 챙겨 먹으며 물을 한 잔 쭉 들이켰다.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었다. 싫어도 귀찮아도 오늘 또 하루의 습관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