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소시오패스 그녀
사업이 꿈이었다는 남편의 폭탄 발언을 나는 여러 날 곱씹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처음엔 느낄 수 없었던 오묘한 맛을 느꼈다. 새콤한 산미, 바삭한 식감, 은근하게 감도는 단맛! 나는 이내 그의 폭탄 발언을 사랑하고야 말았다.
참고로, 나에게는 큰 문제가 있다. 내 비관회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힘든 역경 뒤에 잇따라 오는 달콤함에 더 꽂히는 이상한 사람이다. 사업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부정적 이미지와 시련보다 그걸 극복했을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나의 이런 생각은 당시 읽었던 책들의 힘이 컸다. 부에 대한 욕망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난 후 관련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권 수가 쌓일 때마다 내 고리타분했던 생각에 조금씩 금이 갔다. 예전이라면 두려워 상상도 못 했을 일들에 호기심이 생겼고, 실패에 관대해졌다.
남편은 또한 나중에 아이 얼굴도 못 보고, 함께 시간도 못 보내는 그런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완벽한 설득이었다.
그는 매일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이나 비전에 대해 신나게 설명했다. 이야기 마무리는 항상 이 회사에서 엑싯할 때 자신이 얼마쯤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달콤한 예상으로 끝났다. 나는 반쯤은 건성으로, 반쯤은 함께 기대에 차서 이야기를 들었다. 성공할 확률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일은 또 모르는 법이니까...
다시 따박따박 남편의 월급이 들어오게 되어 기뻤지만 그의 월급은 따박따박 내가 무리하게 늘린 에어비엔비 2호, 3호의 월세로 들어갔다. 남들이 던질 때, 잡는 놈이 승자라는 말은 틀렸다. 남들이 던질 땐 이유가 있었다.
코로나로 우리 부부는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 시절은 다시 떠올리기 아찔할 정도다. 심지어 비관회로가 고장 난 나조차 앞날이 캄캄하여 우울한 나날이 이어졌다. 에어비엔비를 인수할 땐 코로나도 메르스처럼 몇 달 만에 사라질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그냥 번 돈을 다 월세로 날리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최악의 시나리오. 그게 발생할 확률은? 생각보다 높다. 예전에 부산은행이었던가? 이율이 가장 높다고 해서 1년 적금을 넣었다. 설마... 그 안에 부도가 나겠어? 놀랍게도 적금 만기 한 달 전에 부도가 났다. 팬데믹... 그게 설마 2년 내내 이어지겠어? 놀랍게도 월세 계약이 끝나고도 1년이 더 지속되었다.
인수 당시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져도 치명타는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월급이 통장에 스치듯 안녕을 고하니 허무함이 이루말할 수 없었다. 최대한 무슨 수를 써야 했다. 홍대에 멀쩡한 집 3곳을 그냥 그렇게 썩일 수는 없었다. 나는 셰어하우스로 세입자를 구했다. 그때 당시 내가 둘 수 있는 최고의 한 수라 생각했다.
그게 내가 인류애를 상실하게 될 최악의 수였는지도 모르고...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며 인류애가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엄연한 착각이었다. 셰어하우스로 그마저 남아있던 인류애 찌꺼기까지 증발해 버렸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지? 싶은 세입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저 내가 운이 없었던 것일까?
아직도 떠올리면 치가 떨리는 한 얼굴이 있다. 아마도 소시오패스였을 것 같다. 방을 보여주던 날도 첫인상에 쎄함 경보음이 울렸다. 보통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예의상 눈을 마주치면 살짝이라도 미소를 보이거나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데 이 여자는 사회적 미소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 질문에도 건성으로 대답하고, 자신이 궁금한 점은 거침없고 세세하게 질문했다. 당시 세입자가 잘 구해지지 않아 급한 마음에 애써 쎄함 경보를 무시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녀는 셰어하우스 내의 규칙 따위는 깡그리 무시했다. 혼자 사는 공간이었다면 이해라도 해보겠는데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어느 날 새벽잠을 자고 있는데 홍대집 아래층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에어비앤비 운영 동의를 받으며 아랫집 사람과 연락처를 주고받았었다. 도대체 이 시간에 전화 걸 일이 무어란 말인가? 나는 다시 쎄함이 발동되는 걸 느꼈다.
역시나 그 여자 때문이었다. 얼마나 이상한 사람이면... 옆집 사람도, 아래층 사람도 그녀를 알았다. 아래층 사람 말에 의하며 그녀가 술을 마시고 남자 2명과 집에 들어갔는데 다시금 술파티를 벌이는 건지 뭔지 새벽 내내 고성과 가구 옮기는 소리, 음악소리에 한숨도 잠을 못 잤다는 것이다. 새벽이라 고민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전화를 했다는 말에 엄청난 미안함과 그 여자를 향한 분노가 함께 치밀었다. 그 정도라면 다른 방 세입자들은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남편과 아침이 밝은 데로 홍대집에 찾아가기로 했다. 그때까지 봐온 그녀의 행태로 발뺌할 게 분명했기에 현장을 급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이 사는 셰어하우스니 내가 먼저 들어가 상황을 살폈다.
문제의 여자는 공용공간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그 사이 남자들은 다 떠난 것 같았다. 공용거실은 쓰레기로 난장판이었다. 그 여자는 내 기척에 반쯤 눈을 뜨고 '왜 왔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래층 사람에게 전화받은 내용을 전달하며 계약위반이기 때문에 이번 달까지 하고 나가달라고 했다. 이미 그 여자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더 이상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 나머지 이야기는 남편과 하라며 남편을 불렀다.
그동안 내가 너무 예민해서 세입자들에 대해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는 거라며 훈수를 두던 남편은 그날 그녀와의 대면으로 멘털이 완전히 털렸다. 내가 말도 세게 못 하고, 강하게 나가지 못하니 남편에게 부탁한 것이었는데... 남편이 그렇게 당황한 것은 처음 봤다.
내가 그 여자 얼굴을 쳐다보기도 싫어서 남편이 들어와서 더 설명할 거라고 하고 현관문 밖으로 나가있었는데... 그게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