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디자인 / 하라 켄야 저, 민병걸 옮김 / 안그라픽스
순수한 학생 시절과 사회에 반쯤 발을 담근 지금. 이렇게 두 번 보는 이 책은 고개를 끄덕이는 지점이 같으면서 다르다. 아마 사회에 양발을 다 담그면 또 다를 것이다. 그래서 세 번 보기를 추천해본다. 이번 글은 책을 다시 읽으며 여전히 좋았던 부분, 새로이 보인 부분 그리고 왜 다르게 보였는지 적어본다.
책을 다시 봐도 이 프로젝트는 참 좋다. 이 책을 무겁게 느끼는 독자분이 있다면 이 파트부터 읽어 보길 권한다. '차이' 속에서 디자인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각 분야의 전문가가 디자인의 개념을 환기시킨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라는 말이 절로 끄덕여지는 디자인들이 있다.
그중에서 건축가 반 시게루가 맡은 휴지 디자인은 이번에도 베스트다. ㅇ형의 심지를 ㅁ으로 바꾸었을 뿐인데, 적재 효율면과 메시지면에서 모두 훌륭한 휴지가 탄생했다. 휴지를 당길 때 저항음이 발생함으로써 사용자에게 "당신은 휴지를 뽑아 쓰고 있다." 상기시키는 이 휴지는 자연히 자원 절약으로 이어질 터다.
(이미지 출처는 하라 켄야 연구소의 '리디자인 프로젝트'이며, 독자분들도 방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밤에도 잠 못 드는 나날의 연속이었네." 다나카 씨는 그렇게 말했다. 그가 저세상으로 떠나기 3일 전의 일이다. 무인양품의 바통은 이렇게 빠듯한 상황에서 선배 세대로부터 우리 세대로 전수되었다.
여전히 소름 돋는 구절이다. 기업은 누군가 혹은 누군가들의 소유다. 그 속에서 이만큼 열정을 가진 직원이 있다는 사실은 그 기업이 얼마나 건강한지 보여준다. 일 년 사이 한국도 맡은 일에 열정을 가진 디자이너가 종종 매체에 노출된다. 브런치 디자인 탭을 시작으로 네이버 디자인 탭이 생긴 영향이 큰 듯하다. 분명 디자이너에게 건강한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이리라. 지난날 막연한 기대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앞으로가 기대된다.
그러나 디자인이 한창 꽃을 피워 나갈 것으로 예상했던 20세기 후반, 세계는 경제의 힘이 주도하고 디자인도 경제 논리에 이끌려 다니게 된다. 러스킨이나 모리스, 바우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여러 디자인 사상들은 원래부터 그 배경에 약간의 사회주의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짧게나마 반성으로 적어본다. 두 번이나 사회주의와 디자인을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아직 사회주의에 대해 그 어떤 지식도 제대로 없다. 공부해야겠다. 5월엔 꼭 관련 글을 업로드하리라.
그러나 오랜 시간 이것을 사용하는 사이에 홍차의 색과 고리의 색의 관계를 차츰 의식하게 될 것이라고 후카사와는 생각한다. 자신은 고리보다 진한 편이 좋다거나 혹은 오늘은 엷게 타서 마시자는 식으로, 즉 색채의 의미를 특별히 상정하지 않더라도 그곳에 의미를 발생시키기 위한 준비는 해둔다.
디자인에서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을 '어포던스'라고 한다. 저자는 후카사와가 어포던스 이론에서 디자인을 찾아내는 디자이너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를 이번에 깨달았다. 그는 먼저 어포던스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여지를 주는 것이다. '이걸로 충분하다'는 무인양품과도 닿아있다. 물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나면 제품에 더 매료된다. 나처럼. "붉은색에 저런 의미가 있었다니!"
(이미지 출처는 하라 켄야 연구소의 '리디자인 프로젝트')
디자이너는 수용자의 뇌 속에 정보를 건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뇌가 오감으로 정보를 받아들인다면, 디자이너는 그걸 활용해 수용자의 뇌 속에 정보를 건축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수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촉각이라는 하나의 감각을 더 활용한 포스터라는 점이 좋았다. 하라 켄야의 작업은 대부분 소재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녹아있다. 분명 그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데에는 인쇄 소재에 대한 많은 고민과 연구가 한몫했으리라.
조너선 아이브에 대한 책을 읽고, 아이폰이 갤럭시보다 디자인적으로 고평가 되는 요소로서 소재의 아이덴티티에 있다고 적었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소재란 디자인에서 중요하지만, 제품 디자이너에게 특히나 중요한 무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에 다시금 '디자인의 디자인'을 읽고, 그래픽 디자이너도 더 이상 인쇄의 영역을 단순히 종이라고 칭하면 안 되겠구나 싶다.
(이미지 출처는 하라 켄야 연구소)
완전히 학생이던 시절 읽었던 부분과 회사의 녹을 먹으며 일하는 지금이 왜 다를지 생각을 정리해본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일본의 자동차는 일본인의 자동차에 대한 수준 그 자체이다. 감각이 뒤떨어진 나라에서 정밀한 마케팅을 한다면 감각적으로 뒤떨어진 상품이 만들어지지만 그 나라에서는 잘 팔린다.
그대도 회사에서 잘 팔리는 감각적으로 뒤떨어진 디자인을 만들지 모른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우리는 대게 을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대의 디자인에 경제적인 요소(원가, 인건비 등) 혹은 욕망(클라이언트)가 고려되기 시작한다면, 그대는 현실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두 번째 읽는 이 책이 꽤 다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순수 학문으로 디자인을 배울 때와 회사의 일(현실)로써 디자인을 하는 지금은 생각도 작업도 확실히 다르다.
휴학 동안의 경험적 측면(현실의 영역)에 더해 책을 읽고 터득한 지식적 측면이 이번에 책을 읽으며 다른 부분이 보였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특히 하라 켄야가 <본초도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박람회 디자인은 최근 본 <사임당의 뜰>과 연관해 생각하고, 세계적인 행사에 한국적 디자인도 나오길 바라게 되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정말 사고 싶은 한국적 디자인 굿즈(Goods)가 많이 나오길)
기묘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창조성이 아니다. 익숙한 것을 미지의 것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 감성 또한 똑같은 창조성이다. 우리는 이미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눈치채지 못하는 수많은 문화가 쌓여가는 가운데에 살고 있다. 그것들을 아직 사용하지 않은 자원처럼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창조적이다.
또한, 디자인적 창의성에 대한 생각도 한층 여유로워졌다. 과거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었지만, 디자인을 창조(Create)가 아닌 찾기(Find)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위 구절이 <완벽한 공부법>의 구절과 비슷하게 엮이는 부분인지라 그런 듯하다.
(이미지 출처는 하라 켄야 연구소)
책에 대한 평가로 내 생각을 한 줄 적어본다. 이 책은 아침엔 교양서, 점심엔 전공서, 저녁엔 인문학 도서이다. 그래서 졸업 후 완전히 디자인업에 뛰어들어 더 많이 공부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나는 또 무엇을 볼 수 있을지 기대된다. 기대반 걱정반으로 글을 마친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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