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떠나기 전
나는 한국나이 마흔셋. 미혼의 중년소년이다. 나이는 먹을만큼 먹었지만 여전히 나는 소년과 성인 사이 어디쯤인 과도기적 인간에 머물러있다. 한살한살 나이는 들어가고 일은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지만 이렇게 사는게 맞는건가 싶다. 업무에 치이고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통장에 쌓여가는 돈은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숫자들을 좀 더 의미있게 지워버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결심했다. 모든걸 잠시 멈추고 싶었다. 이렇게 결심하게된 소소한 나의 여행의 기록을 공유한다.
"나도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걸까? 솔직히 나는 장기간의 여행을 좋아할 자신이 없었다. 여행은 관광과는 조금 다른 감각이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쉬운길도 때로는 어렵게 가야하고, 되도록 저렴한 숙소를 찾아다니는,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만 자발적 생고생들을 참아내야만 한다는 걱정 때문이다. 나도 유명 여행 유튜버처럼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하는 여행지를 갈 수 있을까? 편안한 집을 떠나 굳이 불편한 잠자리에서 잠을 자면서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까?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불편함과 혹시라도 다칠지도 모른다는 위험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심지어 내가 여행하려고 하는 곳들이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은 곳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여행의 기본적 테마를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가'라는 의문으로 결정했다 . 아니면 말고 하는 가벼운 각오도 필요했다. 이런 장기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기에 있는 그대로 모든걸 받아들일 결심이였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제주도에 살게 되면서부터 부쩍 올레길을 많이 걸었다. 예전부터 걷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살 적엔 자전거 타는걸 더 좋아했다. 하지만 제주는 자전거도로도 잘 갖춰져있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도로 구석을 운행하는 바이커를 배려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며 느꼈던 여러 차례의 불쾌한 위협감 때문에 나는 걷는것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자꾸 걷다보니 걷는 것의 단순함과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제주의 풍경에 걷는 것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생활에 빈틈이 생기면 제주의 올레길, 숲길, 둘레길들을 걸으러 다녔다. 자연스럽게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게 되었다. 더 멀리 더 오래 더 많은것들을 보며 마냥 걷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 갈 것인가? 그러게나 말이다. 최소 한 달 이상 길면 두 달 이상 짬을 내야 할 텐데 그런 일이 언제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한창 사회진입을 꿈꾸는 이십 대가 아니다. 나는 첫회사에 진절머리를 느끼고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 하는 삼십 대 초반도 아니다. 내 또래들은 지금 사회생활의 절정에 도달하기 바로 전단계 혹은 이미 그 단계의 근처에 도달해 있고, 대부분 결혼을 해서 자녀를 키우고 있다. 누군가는 집을 샀고 또 누군가는 집 때문에 힘들어 하는 그런 나이. 내 나이가 나에게 주는 압박감은 만만치 않다. 또래들의 절반만큼의 돈도 없는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하지만 한편 지금이 아니면 과연 언제란 말인가. 은퇴하고 다 늙어서 그곳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서 퇴사를 했다.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나에게 3개월의 휴가는 불가능 했다. 다녀오면 어쩔 것이냐? 답이 없었다. 그런 고민은 접어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 여행을 다녀온 지금의 내가 고민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이 글에는 순례길 모든 여정과 유럽의 몇몇 도시와 이집트여행을 통해 경험한 이야기들과 사소한 사족들을 기록해 담고자 한다. 내 추억들을 하나하나 언어로 정리하다 보면 나는 어느새 또 다른 정신적 여행을 떠나게 되지 않을까?
조금씩, 천천히 쓸 생각이니 재밌게 읽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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