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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영화 <애프터 양>

1. 우리가 과거를 떠올릴 때면, 동영상보다는 사진처럼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소중한 장면, 장면이 머릿속에 콕콕 박혀서, 한 장면씩 떠오르고, 거기에 서사를 덧붙이는 식이다. 


2.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기대를 부여받는다. 

가장 무조건적이라는 내리사랑인 부모-자식 간에도, 내심 자식이 좋은 성적,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우리가 정말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그 의미가 충분할 수 있을까?


제이크는 집안의 가장이고, 사랑하는 아내와 입양한 중국계 딸 미카와 함께 살고 있다.

딸이 본인의 인종적 뿌리를 잊지 않고, 좀 더 수월하게 적응하도록 

중국 관련 지식이 많고 외형도 동양인인 안드로이드 "양"도 함께 데리고 살고 있다.


제이크는 젊었을 때 중국의 차 문화에 매료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실제 차를 파는 가게를 하고 있다.

하지만 벌이는 넉넉하지 못하고, 

가게에 찾아온 손님들은 진짜 차의 매력을 느끼기보다는 간편하게 마시는 차를 찾는다. 

영화의 초반부, 가족 모두가 단합 댄스 대회에 나가서도, 제이크의 실수로 탈락하게 된다. 

그런데 대회가 끝났는데도 양이 춤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과부하가 걸린 양은 전원이 꺼지더니 고장이 나버린다. 


이후에 영화는 안드로이드 양을 고치기 위해서 제이크가 동분서주하고,

그 과정에서 양의 기억장치에 담겨있는 기억들을 보게 되며 전혀 다른 이야기로 진행된다. 


양이 지금의 제이크 가족에게 오기 전, 

2번의 가족을 거치며 어떤 이별과 상실을 경험했는지 보게 되고

제이크 가족, 특히 딸 미카를 얼마나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안드로이드라는 상식 선에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따뜻한 시선.  

영화에서 기억장치 -> 실제 양의 시점으로 그려진 쇼트를 보는 순간, 관객은 양이 이들을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했는지 깨닫게 된다. 그것을 보통 사랑이라고 하던가.

그리고 과연 고장 나 버린 양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이 영화에서 가장 큰 철학적 물음으로 발전한다. 


사설 업체를 통해서 어떻게든 양을 고쳐서, 기억 장치를 리셋하고 원래의 역할인 "중국계 안드로이드"로 복원시킬 것인가 

아니면 박물관에 양을 기증하여, 기억을 그대로 남겨둔 채로 양을 추억하고 기릴 것인가. 

전자는 양의 원래 목적에 충실하게 안드로이드로 되돌리는 것이고

후자는 양을 사람처럼, 가족처럼, 실제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떠나보내며 추모하는 것이다. 


목적과 기능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존재와 기억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제이크는 결국 양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양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딸 미카가 전하는 양 오빠와의 작별인사. 

미카는 중국어로, 양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전한다. 

양에게 배운 그대로, 양을 가장 오롯이 보낼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렇게 차분하게, 하지만 슬프게, 그를 애도한다. 


그렇게 양이 우리를 사랑했고, 우리가 양을 사랑했음을 절절히 깨달으며

양을 보내준다.



글로 리뷰를 하다 보면, 그 영화의 모든 내용을 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양이 미카에게 접붙이기를 설명하며, 입양된 미카의 불안감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가족의 의미를 알려주던 장면이나, 

제이크가 차의 맛을 표현하자 양이 인생의 의미를 담아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놀라던 모습,

양이 이전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특별함을 느끼고 기억했는지 등, 

접 붙이기 설명 장면은, 양이 얼마나 따스한 "사람"인지를 알게 해 준다. 

영화에는 한 번쯤 우리네 삶을 떠올리며 생각하고 감동받을 많은 지점들이 있다. 

잘 가, 나의 가족. 나의 오빠.

영화를 꼭 한번 보시기를 바라면서, 

<애프터 양>에게 보내는 두줄 평.


기억은 입자이고, 추억은 파동이다. 
되살리려 한들 그것이 네가 아니라면, 오롯이 너로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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