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안정적인 서른 살에 생각을 바꾼 이유
겨우 30살인가, 벌써 30살인가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서른 살을 맞이하게 됐다. 맞이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나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먹었고 마침내 그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나이만 한 살씩 올라가지 내 마음은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난 아직도 청춘이야"라고 말하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도 오버랩됐다. 그때는 '아니 저렇게 나이가 많으신데, 무슨 청춘이야?'라는 시선이 있었는데 나도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들은 억울했던 것이다. 마음은 그대로인데 나이가 든다는 것이 말이다.
30살을 맞이하며, 10년간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돌이켜본다. 그리고 깨닫는 것은 나는 정말 '착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대학교를 다니며 학점을 잘 받기 위해 애썼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학교 생활을 적당히 즐기고 싶었는지 동아리도 들만큼 체력도 좋았던 것이다. "나는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며, 제 길을 찾겠다고 때려치울만한 생각 따위도 없었다. 주어진 공부를 잘하고 싶었고, 거기서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그게 목적이었다면 어느 정도 성공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졸업하자마자 6개월이 지나고 바로 사기업에 취업을 했고, 쭉 지금까지 20대를 보내온 것이었다.
20대 초반은 열심히 학교를 다녔고, 20대 후반은 열심히 회사를 다녔다. 나는 반항 한 번 없이 참 잘 '다니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걸 느꼈다.
그렇게 안정적인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내던 내가 무너지던 계기는 평상시에는 믿지 않았던 아홉수에 일어난 아빠의 수술이었다. 건강하던 아빠가 두통을 호소했고, 머리가 너무 아파 찾아간 서울 신촌의 대학병원에서 뇌하수체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내'가 쌓아오는 실력, 모아가는 돈이 전부였는데 당연시 여겼던 가족이 한번 휘청이고 나니 일상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나는 매일 잠을 잘 때 불안했고, 아침에 눈을 떠도 불안했다. 특히 어느 날 아침 6시쯤에 동생에게서 전화가 와 "아빠 응급실 가셨대"라는 말을 들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다'라는 말이 이 말이었구나 라는 걸 이제야 이해할 수 있다. 그건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파도의 철렁임 같이 요동치는 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무너진 일상이 다시 돌아오는 데에는 정확히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아빠가 퇴원하시고, 건강을 되찾아 갈 때쯤 나의 마음도 슬금슬금 다시 올라왔다. 어떻게 아냐면 그때쯤 되니 이제 친구가 만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서글플 때는 누군가 만나고 싶지도 않았는데, 슬그머니 친구들이 만나고 싶어졌다. 나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많이 좋아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내가 사는 목적이 뭘까?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살아있다는 걸 느낄까? 어떻게 살아야 하루하루 정말 의미 있다고 느껴질까?'라는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그 질문을 붙잡고 늘어지던 날은, 29살 가을에서 겨울을 맞이하던 그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