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신한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 리모컨과 사랑을 나눕니다. 그러다 잠이 오면 자고, 깨고 또 자고, 깨고, 그러다 배가 고프면 일어나 밥을 먹고 또 침대에 올라 리모컨 잡고 텔레비전 보고를 반복하는 등 휴일은 오롯이 나만의 자유시간을 갖는 이 시간이 나는 가장 행복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이를 질투라도 하듯 아내가 느닷없는 태클을 걸어옵니다.
"여보 세탁기 빨래 다 됐으면 좀 널어 주실래요"
정말이지 침대 위에서 단 몇 센티미터도 떨어지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침대 위 유일한 즐거움인 리모컨 조작 말고는 손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침대 위의 내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하고 좋은 시간에 "뭣이라고~ 빨래 좀 널어 달라고?"...
나에게 있어 아내가 최고 존엄이라 쳐봅니다. 아내말이 곧 법이라고 해 봅니다. 하지만 그날만은 아내의 지시대로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있는 쪽을 향해 나지막한 소리로 소심하게 반기를 들어 봅니다.
휴일 가장 행복한 거처인 침대
"지금 꼼짝하기 싫어, 제발 나 이대로 좀 나두리 수 없을까"
그러자 아내의 반격이 즉각 들어옵니다.
"나, 지금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미안하지만 빨래 얼마 안 되니 금방이면 될 거예요"
조용하면서도 부드러운 존댓말이 오히려 더 무서운 아내의 성격인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나는 아차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앙탈을 부리다가는 후과가 두렵다는 것을 신속히 깨닫고 침대 위를 떠나 투벅투벅 세탁기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탁기 문을 열어 보고 내 마음도 급속이 냉각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안 되는 빨래, 금방이면 된다던 빨래는 왜 이렇게 많은지, 세탁기 안에 가득 찬 빨래를 보고는 괜히 얄미운 아내에게 한소리 퍼부으려다 가까스로 억눌렀습니다.
참자, 참아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사실 나는 아내를 잘 도와주는 편이라고 자부합니다. 예를 들어 식사 때면 밑반찬 알아서 척척 밥상에 내놓지요, 숟가락 젓가락까지 짝 맞춰 가지런히 놓아주지요, 아내가 밥 담아 놓은 밥그릇과 국그릇 착착은 물론 먹고 난 식기 설거지도 잘합니다.
그리고 청소등 집안일에도 알아서 척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아내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나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에 귀찮거나 힘들지는 않습니다.
아내 또한 웬만한 일은 나에게 시키지 않고 스스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온 아내와 나었습니다. 그런데 빨래 너는 거 부탁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아내 나름대로 할 일이 많은가 보다 하고 참기로 했습니다.
우선 옷 상위부터 꺼내 탈탈 털고, 하위도 털털 털고, 수건과 속옷도 마찬가지로 탈탈 털어 차근차근 건조대에 널고 나니 이제 세탁기 바닥에 남아 있는 거라고는 하루에 한 번씩 아내와 내가 신고 획~벗어던진 양말뿐이었습니다.
양말 한쪽 도주로 추정 되는 곳 한 켤레, 한 켤레 짝을 맞춰 그렇게 널고 나니 뭐가 이상합니다. 두쪽이 있어야 할 내 양말 한쪽이 없습니다. 혹시? 세탁기 속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달싹 달라붙어 있나? 아니면 다른 빨랫감과 딸려 들어갔나?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양말 한쪽이 어디로 간 거야...
"여보, 잠깐 와 봐, 양말 한쪽이 없어"
아내까지 나서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양말 한쪽이 깜쪽같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황당했습니다. 아내는 애초에 한쪽만 세탁기에 넣어 둔 거 아니냐며 괜히 나의 책임으로 돌리려 합니다.
그런데 그때 오래전에도 있었던 일이 문뜩 떠오릅니다. 이 녀석 혹시 이곳에 숨어 있지 않을까, 곧바로 그곳을 수색했습니다. 내 직감은 적중했습니다. 세탁통 넘어 틈새 속에 쥐새끼 마냥 숨어 있습니다. 아마 빨래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 물이 세탁통 높이까지 차 올랐고 그래서 물과 함께 휩쓸려 그곳으로 숨어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황당했던 양말 한쪽 도주사건은 그곳에서 검거했고 건조대에 입감 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무슨 죄로 몇 년형을 때려야 하나요, 하지만 이 녀석만의 죄는 아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빨래를 한꺼번에 터무니없이 많이 한, 그래서 이 녀석이 도주를 하는데 직, 간접적으로 도운 우리에게도 미필적 고의라는 죄가 성립 될 수도 있겠군요,
허~허~ 양말 한쪽만 죄 묻기에 참 난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