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근.후.에]
1987년 4월 11일. 한 남자가 자신의 아파트 계단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검시관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판정했으나, 나중에는 사고로 굴러떨어졌을 뿐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재까지 논쟁을 거듭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자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으며…
지금 세상에 위 문장들처럼 글이 시작된다면, 어떤 생각들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요?
‘그래서? 그 남자의 죽음에
관심 가져야 할 이유가 있나?
그것도 1987년도 일을.
어제도 이런 종류의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았는데? ‘
사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생사를 넘고 있을 겁니다. 거기에 수많은 매체가 실시간으로 사건, 사고를 전달하고 있죠. 너무 많은 자극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제대로 정신 못 차릴 정도로. 그럼 1987년에 벌어진 어떤 남자의 ‘죽음’에까지 주목해야 할까요?
앞서 자신의 아파트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사람은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입니다. 반파시즘 운동을 하다가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던 이탈리아계 유대인이었다고 합니다. 후에 그는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글로 옮긴 『이것이 인간인가』를 비롯해 많은 저작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87년 4월에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합니다. 프리모 레비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으로 발표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이 작품 속에는 지옥에서도 살아나온 한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 프리모 레비의 ‘죽음’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책 본문에 레비가 오스트리아 철학자 장 아메리의 글을 인용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문당한 사람은 고문에 시달리는 채로 남는다. (25p)
그리고 몇 마디 덧붙입니다.
우리는 혼란을 일으키거나
프로이트 이론들을 사소하게 들먹이거나
병적 상태, 관용 따위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압제자는 압제자로 남고
희생자는 희생자로 남을 뿐이다.
양자는 서로 뒤바뀔 수 없다. (25~26p)
두 구절은 분명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아돌프 아이히만과 루돌프 회스의 전후 진술들, 즉 ‘가해자였던 우리도 절대적 복종과 위계질서에 맞게 교육되었으므로 결국 체계의 피해자’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요. 작가는 여기에 ‘아인자트코만도스’라고 하는 예시를 추가합니다. 민간인들을 공동구덩이 가장자리에 세워놓고 기관총으로 학살했던 특수부대로, 이 부대원들에게는 원하는 대로 술이 무한정 배급되었다는군요. 술을 줬던 이유는 뭐… 안 봐도 비디옵니다.
레비는 수용소 관리책임자(단어 사용이 적합한지 모르겠습니다만)들에게서만 악마 같은 모습을 봤던 것은 아닙니다. 라거(강제수용소)에 같이 수용된 유대인들 안에서도 보게 되죠. 그중에서도 회색지대(2장의 제목이기도 합니다)는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실례가 됩니다. 이 회색지대에는 죽은 유대인들의 시체를 불태우는 ‘존더코만도스’, 서기, 수용소 행정 사무실 직원 등이 속하며(본문에서는 모호한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예시로 들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들입니다. 얼마 되지 않은 권력만으로도 일반(?) 유대인 포로들보다 한 계단 위에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회색지대의 사람들. 레비는 마지막까지 이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을 담담히 인정할 뿐.
우리 역시 권력과 위신에 현혹되어
우리의 본질적인 나약함을 잊어버린다.
(중략) 그렇게 우리는 자발적이든 아니든 간에
권력과 타협하게 되는 것이다. (80p)
이후에 글은 이전에 썼던 전작들의 내용을 다시금 짚어보거나, 독일 독자들한테서 온 편지를 소개하고 분석하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결론 부분까지도 레비는 그의 “과학자”스러운 자세를 견지합니다. 근데 여기에 그의 ‘죽음’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어디에?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경험, 타인에게서 들었던 증언, 독자들의 편지 등을 소재로 책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작가로서 시종일관 담담한 어투로 글을 이끌어 갑니다. 화학 전공자라서인지 실증적 과정으로 정제된 기억과 증언을 통해서 말이죠. 그러나 사실, 책을 읽다 보면 그 속에 복잡한 감정들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작가 스스로 마음속에 쌓은 빚은 너무나도 무거워 보입니다.
반복하지만 진짜 증인들은 우리 생존자가 아니다.
이것은 불편한 개념인데,
다른 사람들의 회고록을 읽고 여러 해가 지난 뒤
내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차츰차츰 인식하게 된 것이다.
우리 생존자들은 근소함을 넘어서
이례적인 소수이고,
권력 남용이나 수완이나 행운 덕분에
바닥을 치지 않은 사람들이다
(중략) 그들이 원칙이고 우리는 예외이다. (98~99p)
서문, 본문 단락들, 결론 모두에 이러한 감정이 녹아있습니다. 그렇기에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라는 책은 가볍지가 않습니다. 죽기 전까지 객관적인 사실들을 추구했음에도 ‘살아남았음’을 축복이 아닌 부채로 느꼈던 그이기에 1986년에 이 책을 발간한 이듬해에 그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어딘가 먹먹하게 다가옵니다. 자신의 ‘가라앉지 못함’을 후회로 남긴 남자. 담담하고 객관적인 서술을 통해 작가로서의 본분을 다하면서도, 인간적인 고뇌로 삶을 마감했던 유대인. 이 책을 읽었던, 혹은 읽을 분들에게 프리모 레비라는 사람과 그의 죽음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합니다. 독자 개개인에게 다가왔던 그 의미, 프리모 레비의 ‘죽음’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는지요.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해설을 쓴 서경식 교수의 글을 끝으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은 ‘나치 범죄’로 한정할 수 없는
넓이와 깊이를 통해
인간 존재 자체에 내재하는 위기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이 책을 남긴 까닭은
단지 타인에게 사실을 알리고
남을 설득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중략) 다만 그는 과학자 같은 솜씨로
깊은 절망의 양상을 해부하여
자기 개인의 생물학적 생명을
넘어서는 가치를 위해
이 책을 남긴 것이다. (279p)
P.S(1) ‘이 책도 유대인들의 피해망상에서 나온 책 아니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직접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P.S(2) 사실 이 책에 끌렸던 것은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마침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직후라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작품의 소재는 ‘나치 범죄’입니다만, 세월호 사건을 포함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일정 부분 통찰력을 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