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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3. 2019

[컬처] 2019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폐막작 감독 인터뷰외 올해의 추천작.


 정규환  사진 김찬영  사진제공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소준문 감독
신종훈 감독


퀴어 영화, 지금 HIV/에이즈를 말하다
2019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가 오늘 11월 7월(목)부터 11월 13일(수)까지 총 7일간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다. 전 세계 31개국 약 100여 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한국영화 100주년과 스톤월 항쟁 50주년 맞은 시점에서 국내외를 대표하는 퀴어 영화들을 선보인다. 김조광수 집행위원장은 “올해는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며 프로그램에 자신감을 내비쳤다.올해 칸영화제 화제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필두로 총 7일간의 무지갯빛 퀴어 영화 축제에 돌입하는 서울프라이드영화제. 어떤 영화를 고를까 고심할 관객을 위해 다섯 편의 추천작을 소개한다. 더불어 올해 폐막작으로 특별히 조명되는 에이즈 이슈를 다룬 작품들에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감독 인터뷰까지. 자긍심, 다양성, 연대를 느낄 수 있는 프라이드영화제에서 만나보자.     


올해 폐막작은 HIV/AIDS를 주제로 3편의 영화, 

신종훈 감독의 <고잉 마이 홈>, 소준문 감독의 <키스키스>, 

이성욱 감독의 <아이스>가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

그 가운데 소준문, 신종훈 감독의 인터뷰를 전한다.


HIV/에이즈 이슈를 다룬 영화를 찍게  계기가 궁금하다.

신종훈(이하 신) HIV 바이러스 감염인인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때 그분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몰랐다.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힌트를 이번 영화 속에 담았다.

소준문(이하 소) 이 이슈에 대해서 관심이 있던 찰나 서울프라이드영화제의 제작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오랜 시간 생각했던 지점들을 시나리오로 썼다. 무겁기보다는 가볍게 다가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감염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HIV/에이즈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주제다.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HIV/에이즈에 관심을 갖게 되고 스스로도 되돌아보게 됐다. 사회적으로 여전히 금기시되는 분위기라 아직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스스로도 영화를 만들면서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 에이즈=죽음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다. 실제로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설명으로 어려운 이야기를 장르 영화적으로 풀어서 다가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감염인의 어두운 모습보다는 일상으로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삶을 돌아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대만의 동성혼 법제화 소식을 접하는 시대다. 그런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성소수자의 삶이 사람들에게 공기처럼 다가온다. 커밍아웃 이후에 할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곧 퀴어 영화도 이성애자 주류 사회 드라마나 영화처럼 평범한 성소수자 부부나 결혼 에피소드를 담을 것이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 시나리오를 쓰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지금까지 퀴어 영화의 시선은 외부를 향해 있었다. 나 역시 사회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이제는 내부로 옮겨온 거 같다. 진짜 내 친구들의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닿을 수 있게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에서 HIV/에이즈 문제에 대해서 지금 이야기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먼저 했어야 하는데 감독으로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자체에 두려움이 있기도 했다.     


소준문 감독의 <키스키스> 판타지라면 신종훈 감독의 <고잉 마이 > 현실적이다.

 아무래도 아는 만큼 쓰게 됐다. 위에서 언급했던 지인의 상황을 많이 참고하기도 했다. 그분이 가족 행사 때문에 고향에 내려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상황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HIV/에이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같이 밥 먹어도 되는지’를 궁금해하는 식의 차별이 존재한다. 보통 사람들의 무지와 무관심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썼다.


<고잉 마이 > 가족의 모습을 보는 관객은 주인공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영화  가족은 주인공의 정체성을 모르는 상황을 지켜보게 된다 이미지는 어딘가 불편하고 이질적인 감정을 느끼게 한다.

 누구나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혈연 가족의 관계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주인공 ‘용근’이 가족에게 끝내 커밍아웃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성소수자라는 사실과 별개로 그 자체로 평범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 평온한 상태 그 자체로 그에게 힘이 될 수 있다. 직접 위로하지 않더라도 잠결에 토닥여주는 아버지의 손길 같은. 정말로 그 존재 자체로 가끔씩 힘이 되지 않나.


극 중 용근 게이이면서 HIV 바이러스 감염인이라는 이중적인 소수성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말한 지인이 내게 HIV 바이러스 감염 사실을 알렸을 때를 떠올리면 아득하다. 나 역시 그런 상황이 처음이었다. 주변에 가끔 ‘내 주변엔 성소수자가 없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경우를 본다. 나도 내 주위에 감염인이 없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소수자는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다. 더군다나 성소수자 감염인들을 소수자 안의 소수자라고 생각했다.     


<키스키스>   줄로 설명하기 어려운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나는 재난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병이 만약 누군가에게 찾아온다면 재난이 된다. 주위의 감염인 친구들을 지켜보면서 ‘약을 먹으면 괜찮은데 왜 힘들어할까.’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게이 커뮤니티 내부의 공포와 불안이 여전히 크다는 게 눈에 보였다. 그것들을 이번 영화에서 게이 커뮤니티만의 특유의 색깔로 풀어봤다.


재난을 마주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보면서 지극히 현실적이다어쩔  없이 사라져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키스키스>는 은유로서의 질병에 대한 영화다. HIV/에이즈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게이라면 영화 속 상황을 잘 이해할 것이다. 감독으로서 이 영화는 게이 커뮤니티에서 소비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촬영했다.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혐오를 바라보는 게 우선이라고 느꼈다. 무엇보다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스스로 존재를 지워야 하는 현실을 보면서 굉장한 혐오라고 느꼈다. 그 두 가지 이유로 감염인들에게 나만의 방식으로 위로를 주고 싶었다. 


HIV/에이즈를 설명하기 위해 키스라는 소재를  이유는.

 키스 마크는 일종의 사회적 낙인이라고 생각했다. 늘 달고 살아야 하는 것. 그 때문에 서로에게 다가가기 두려워하는 현실이다. 정작 애인으로부터도 더럽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차가운 시선이 있다. 알려진 바대로 HIV/에이즈는 대부분 성행위를 통해 전파된다. 결국 사람을 통해서 전염되는 것이다. 그것을 전면으로 드러내기보다는 키스라는 행위로 표현했다.


권태기 커플의 이야기에서 사회문제로 확장된다동시에 관계의 신뢰 회복 과정을 보여준다.

 질병은 기본적으로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감염인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생각보다 없기도 하다. 감기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HIV/에이즈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더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를 고민했다. 질병을 통해서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되는지에 대해서.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혐오를 바라보려면 영화도 관계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평범한 권태기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다.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도 두려움이 있지만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선 이 병을 같이 안고 가야 하지 않을까.


그간 작품들을 통해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줄곧 영화 속  사람의 로맨틱한 이미지를 자주 보여줬다.

  나의 로망인가 보다(웃음). 누군가의 접촉이 중요하다고 특히 이 영화에서 생각했다. 병으로 인해 손조차 잡기 어려워하는 상황들. ‘동성애’인데, ‘동성’만 있으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우리가 주말마다 종로, 이태원에 술 마시러 나오는 이유는 다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는 것이다. 연인이든 친구든 관계 맺기 위해서 살아가는 건데, 관계가 단절되는 상황은 슬픈 일이다. 우리가 혼자 살 순 없지 않나. 연애해야 하고, 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이러한 병 때문에 외로워지는 사람들에게 뭔가 ‘이건 아무 문제 아니야.’라고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을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품 다에서 감염인과 비감염인에게 동시에 손을 내미는 연대의 메시지를 읽었다.

 <고잉 마이 홈> 시나리오를 쓰면서 감염인들과 미팅을 한 적이 있다. 부끄럽지만 그때 악수를 한 뒤 스스로 편하지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내가 왜 그랬지.’라고 생각해보니, 내가 그 사람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사람보다 병이 인식된 것이다. 반대로 그의 가족, 친구, 아는 사람에게는 병이 아니고 그로서 잘 받아들여질 거라는 기대나 희망을 걸었다. 그게 그동안 관계 안에서 연결된 사람들일 테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속해 있는 가족이나 친구, 커뮤니티 안에서라면 어떤 모습이어도 받아들여질 테니 숨거나 겁내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내 영화를 통해서 웃음을 주자라는 생각이 크다. 그리고 모두 HIV/에이즈에 대한 두려움을 떨쳤으면 좋겠다.          

정규환 

프리랜서 에디터. 20대의 절반 동안 영화사, 영화제 및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매거진 <GQ>, <뒤로>,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 등에 성소수자 관련 에세이를 기고했다. 인권 운동을 하다가 만난 게이 파트너와 5년째 동거 중이다. 




2019 서울국제프라이드 영화제 추천작



감독 셀린 시아마/프랑스/2019/120분



1.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결혼을 앞둔 엘로이즈와 그녀의 결혼식 초상화를 그리는 마리앙의 이야기. 결혼을 원치 않는 엘로이즈로 인해 마리앙은 그녀의 초상화를 비밀리에 그려야만 하는데, 몰래 그녀를 지켜보며 마리앙은 점점 엘로이즈에게 뜨거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시대적 비극 속 두 여인의 사랑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18세기 프랑스 여성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세대를 초월한 레즈비언의 사랑을 그렸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감독 토마스 밀러/미국/2014/76분


2. <리미티드 파트너십>

1975년 미국 벌더시. 필리핀계 미국인 리차드와 호주 출신 토니는 세계 최초로 합법적 동성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미국 이민국에서는 이들의 결혼 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토니의 영주권 신청을 거절한다. 토니의 추방일이 가까워질수록 리차트는 미국 정부를 고소하기 위한 준비에 나서고,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이 시작된다. 2015년 미국의 동성결혼 법제화가 되기 전 40여 년 전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성소수자 인권 운동 역사 속 인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감독 조엘 에저튼/미국/2018/115분


3. <보이 이레이즈드>

목회자 집안에서 자란 자레드는 부모님에게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커밍아웃한다. 목사의 아들이 게이라는 데 놀란 자레드의 부모와 교인들은 논쟁을 펼친다. 뒤이어 그들은 자레드의 정체성을 교화하기 위한 치료를 하게 된다. 절제된 연출 스타일로 2018년 북미 개봉 당시 ‘가슴이 미어질 듯한 슬픔을 안겨주는 작품’ 등의 평가를 받았다. 니콜 키드먼, 러셀 크로우, 트로이 시반, 자비에 돌란 등 화려한 캐스팅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러드 콘리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감독 신종훈/한국/2019/25분



4. <고잉 마이 홈>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용근은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HIV) 보균자다. 약만 먹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약을 챙겨 먹는 건 용근의 하루 일상이다. 고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본인이 게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HIV/AIDS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 하게 된다. <고잉 마이 홈>은 감염인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가족 영화이기도 하다. 고향에서의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용근에게 이중적인 차별을 혐오를 마주하게 한다.     



감독 소준문/한국/2019/25분



5. <키스키스>

‘Sucide Kiss’라는 전염병이 대한민국을 강타한다. 이 병은 목에 낙인처럼 키스 마크가 생기고, 발병 15일 이후에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기이한 병이다. 이에 모두가 불안에 떤다. 완치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이 키스를 통해 가져가야 하는 것. 어느 날, 애인 몰래 바람을 피우던 경준과 자유분방한 그의 친구 우민은 이 병에 감염되고 패닉에 빠진다. <키스키스>는 재난 영화의 형태를 띤 독특한 콘셉트의 퀴어 영화로, <REC> 등 다양한 연출한 소준문 감독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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