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소연
사진 김화경
장소제공 gaga77page
그는 질문 사이마다 자주 고민하고, 열심히 말을 골랐다.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보면’이라는 말도 여러 번 했다. 뮤지션 김사월이 산문집 <사랑하는 미움들>을 냈다. 여러 인터뷰와 공연, 팟캐스트 출연으로 말하는 것을 익숙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매 순간 신중했고 자신에 대한 관심을 쑥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어떻게든 잘 살겠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꼭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건강하게 숨 쉬며 잘 살겠지’라고 생각한다고. ‘자조 가득한 시절’을 넘어, 자신의 문장들을 책으로 남긴 뮤지션 김사월을 만났다.
메모를 많이 하셨다고 해도, 뮤지션이 산문집을 내는 게 도전으로 다가왔을 것 같은데, 어떻게 책을 출간하게 되었는지.
그동안 긴 글을 쓰지 못하고, 가사에 쓰일 짧은 글이나 트윗 정도만 쓰고 살아왔다. 가끔씩 음악에 관해 나를 소개하거나 내가 추천하는 음악에 관해 글을 쓸 때가 있더라. 그것을 보고 편집자님께서 가사에 대한 이야기 등을 쓰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해주셨다. 좀 머뭇머뭇하고 있었는데, 편집자님이 배우들도 가끔씩 OST를 부르지 않느냐고, 아이돌도 연기도 하고, 경계가 없으니까 뮤지션으로서 글을 남겨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시니까 갑자기 부담이 없어지는 거다.(웃음) 그때가 1년 반 전이다. 진짜 천천히 시작했다.
아름다움의 수많은 기준 사이를 오가는 당신의 고민은 책을 읽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꾸미지 않는 힘을 믿고 싶다’고 한 문장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꾸미는 것에 많이 관심이 생기고 집착하는 시기는 보통 제 자신이 작아져 있거나 초라하거나 아니면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거나 예뻐 보이고 싶거나, 그런 욕망이 들 때더라. 대부분의 시간을 그래왔다. 남들에게 예뻐 보이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나를 꾸미는 거라면 사실 좀 무의미한 행동일 수 있지 않나. 그래서 꾸미지 않고도 나 스스로를 괜찮을 수 있다는 걸 쓴 것이었다.
“꾸미지 않았다는 당신의 말에 저는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는 편지를 받았다고도 했다. 관객과 이러한 위로를 주고받는 마음은 특별한 경험일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예쁜 옷도 입고, 날씬해지고, 계속 꾸밈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나만 ‘머리 잘라야지.’, ‘너무 대상화된 옷은 안 입을래.’ 이렇게 멈춰보려고 하는 게 너무 외로웠고, 내가 너무 못생겨 보였다. 진짜 우울했다. 같은 기분을 느끼는 분이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 공감이 되었다고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다.
음악을 한 지도 시간이 오래 흘렀다. 그동안 과거와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외롭고 슬퍼서 음악을 시작했다. 모두 그런 것 같다. 가장 외롭고 슬펐던 것은, 내가 아니어도 될 것 같을 때. 그때 제일 우울해진다. 이 자리에 내가 아니어도 될 것 같을 때.
대체될 수 있을 것 같을 때?
그렇다. 그 감정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그래서 노래를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사실은 마음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을 알아주면 좋을 것 같아서. 내 노래를 들어줬기에 덜 외로워졌던 것 같다. 예전에는 “내가 아니어도 되는 거지?”라고 화를 내고 있었던 거라면, 지금은 외로운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당신의 가사는 많이 회자된다. 최근 곡인 ‘사바스’의 경우, 다른 텍스트에 영감을 얻어서 쓴 곡이다. 가사나 멜로디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
보통 경험으로 쓰거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본 눈빛이나 대화나 단어 등에서 많이 아이디어를 가져온다. ‘사바스’의 경우 책 안의 텍스트로 가사를 쓰게 돼서 재미있었다. 자주 가는 카페 겸 펍 같은 데서 게임하듯이 막 읽고, 생각나는 거 적고, 인물 관계도 만들어서 읽고 하다가 다 읽고 나니까 너무 기분 좋고 흥분돼서 집에 가서 곡을 썼었다. ‘사바스’는 너무 이입하기 좋은 텍스트여서 멜로디, 텍스트 모두 금방 나왔다.
제일 쓰기 어려웠던 곡이 있을까.
꼭 다 쓰고 나면 구리더라.(웃음) 생각 많이 안 하고 쓰기 쉬운 게 좋은 곡이 되곤 했다. 할 말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면 엄청 빨리 나온다. 약간이라도 흐릿하면 오래 걸리고 어려운 것 같다. 근데 지금까지는 쉬운 방법만을 택해왔다. 하고 싶은 것만 해왔고. 그래서 노래들이 단순하다.
나중에 시도해보고 싶은 음악 분위기나 장르가 있을까?
하고 싶은 건 너무 많다. 3집을 만들고 싶고, 제가 너무 하고 싶은 게 데뷔 10주년 콘서트다.(웃음) 2024년도에. 또, <수잔> 앨범 발매 10주년 공연도 너무 하고 싶다. 다 할 수 있도록 잘 지내고 싶다.
팟캐스트에서 ‘인디계의 송은이’를 꿈꾼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제가 어떤 짤을 봤는데. 카니발을 몰면서 신봉선 씨와 함께 농담하는 장면이었다. 스케줄 얘기를 하고 있었다. 송은이 님 자신이 결국 판을 만들고, 여성 동료들을 다 모으고, 일을 주고 자신이 씬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존경을 느낀다.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메모를 많이 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이외에 즐겨 하는 것이 있다면,
운동하는 거 좋아하고, 술 먹는 거 좋아한다. 술 먹으려고 운동한다. 그 외에는 취미가 딱히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음악 만드는 게 지금 제일 재미있다. 잘해서 그런 건 아니고, 좋아해서 재미있다.
혼자 있는 시간, 쉬는 시간이 궁금하다.
쉴 때는 그냥 집에 있다. 너무 단순한데, 노트북 틀어놓고 요즘 신보 많이 듣는다. 올해는 라나 델 레이 새 앨범을 많이 들었다. 잘 때나 일어날 때나. 트위터나 유튜브 밈 같은 거 찾아보면서 재미있어 하고. 말장난 좋아해서 트위터에 그런 것 올리고.
산문집에서 오래전 메모해둔 문장을 글로 만들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언어영역 문제를 풀다 발견한 문장이었다고. 문장들을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가 인상 깊은 말을 하면 기억에 많이 남는 경우가 있다. 스페인의 섬 ‘테네리페’ 이야기가 나오는 챕터가 있는데, 그 챕터의 제목은 어머니 일기장에서 봤던 문장이다. 엄마 거니까 제가 베껴도 될 것 같아서.(웃음) “현실은 향수보다 잔인하다”는 문장이다. ‘나도 어디선가 느낀 것 같은데, 나한테는 이런 말이 없었는데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줬네.’라는 감각이 들면 기억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시적인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순간을 모으는 걸 너무나 좋아한다.
서울의 종로구에 대해서는 홍대 인근과 다른 매력이 있다고 적었다. 종로에서 즐겨 방문하는 곳을 조금 더 소개해준다면.
원서동. 원서동이 창덕궁을 끼고 세모나게 생겼다.(직접 지도 어플을 켜서 보여주며) 원서동 에 1년 정도 살았다. 안국역에서 창덕궁 돌담길을 쭉 타고 올라가면 원서동이다. 해 질 무렵 가도 좋고, 아침에 가도 좋다.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이젠 아무것도 궁금해지지 않아진 나를 위해 여행을 떠난다.’ 요즘 일상에서 어떻게 궁금증을 발견하는지. 혹은 여행 계획이 있는지.
여행을 몇 번 다녀본 결과, 빈손으로 가도 둘째 날 우쿨렐레 같은 것을 사서 음악을 만든다. 음악을 만들지 않으면 너무 지루하다. 아니면 가사를 쓰거나 뭔가를 한다. 그때보다 지금이 덜 외롭다. 그때 아마 어떤 걸 느껴도 이걸 알아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아무것도 궁금하지도 않고 외로웠던 것 같다. 지금은 주변에 친구가 있고, 호기심이 다시 차오르는 것 같다.
올해 당신에게 중요했던 일이나, 기억하고 싶은 사건이 있다면?
친구들끼리 공연을 한번 했었다. ‘공중캠프’가 없어지기 전에 열 명이 모여서 공연을 하자고 해서, 그때 많이 행복했다. 와주신 분들도 누구 한 팀을 보러 오신 게 아니고, 이 어떤 음악가들의 우정을 보고 오신 거라고 생각했다. 끝나고 나서 다 같이 열 명이서 ‘브로콜리 너마저’ 선배님의 ‘앵콜요청금지’를 불렀다. 떼창으로. 올해 행복했던 기억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신기하다. 나 같은 사람 인터뷰를 하고 일상을 궁금해한다는 게. 책을 쓸 때도 ‘무슨 책을 써야지’라고 시작했으면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근데 그냥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웃음), 음악 열심히 하면서, 요즘 2030 페미니스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에 대한 평범한 생각들을 기록하면서 살아가겠다. 그래서 같이 살아가자. 살자.
위 글은 빅이슈 12월호 2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