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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8. 2019

[인터뷰] 김사월, 당신이어야만 해요


 황소연

사진 김화경

장소제공 gaga77page





그는 질문 사이마다 자주 고민하고, 열심히 말을 골랐다.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보면’이라는 말도 여러 번 했다. 뮤지션 김사월이 산문집 <사랑하는 미움들>을 냈다. 여러 인터뷰와 공연, 팟캐스트 출연으로 말하는 것을 익숙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매 순간 신중했고 자신에 대한 관심을 쑥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어떻게든 잘 살겠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꼭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건강하게 숨 쉬며 잘 살겠지’라고 생각한다고. ‘자조 가득한 시절’을 넘어, 자신의 문장들을 책으로 남긴 뮤지션 김사월을 만났다.      


메모를 많이 하셨다고 해도뮤지션이 산문집을 내는 게 도전으로 다가왔을 것 같은데어떻게 책을 출간하게 되었는지.

그동안 긴 글을 쓰지 못하고, 가사에 쓰일 짧은 글이나 트윗 정도만 쓰고 살아왔다. 가끔씩 음악에 관해 나를 소개하거나 내가 추천하는 음악에 관해 글을 쓸 때가 있더라. 그것을 보고 편집자님께서 가사에 대한 이야기 등을 쓰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해주셨다. 좀 머뭇머뭇하고 있었는데, 편집자님이 배우들도 가끔씩 OST를 부르지 않느냐고, 아이돌도 연기도 하고, 경계가 없으니까 뮤지션으로서 글을 남겨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시니까 갑자기 부담이 없어지는 거다.(웃음) 그때가 1년 반 전이다. 진짜 천천히 시작했다.   

   

아름다움의 수많은 기준 사이를 오가는 당신의 고민은 책을 읽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꾸미지 않는 힘을 믿고 싶다고 한 문장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꾸미는 것에 많이 관심이 생기고 집착하는 시기는 보통 제 자신이 작아져 있거나 초라하거나 아니면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거나 예뻐 보이고 싶거나, 그런 욕망이 들 때더라. 대부분의 시간을 그래왔다. 남들에게 예뻐 보이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나를 꾸미는 거라면 사실 좀 무의미한 행동일 수 있지 않나. 그래서 꾸미지 않고도 나 스스로를 괜찮을 수 있다는 걸 쓴 것이었다.      


꾸미지 않았다는 당신의 말에 저는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는 편지를 받았다고도 했다관객과 이러한 위로를 주고받는 마음은 특별한 경험일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예쁜 옷도 입고, 날씬해지고, 계속 꾸밈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나만 ‘머리 잘라야지.’, ‘너무 대상화된 옷은 안 입을래.’ 이렇게 멈춰보려고 하는 게 너무 외로웠고, 내가 너무 못생겨 보였다. 진짜 우울했다. 같은 기분을 느끼는 분이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 공감이 되었다고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다.

     

음악을 한 지도 시간이 오래 흘렀다그동안 과거와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외롭고 슬퍼서 음악을 시작했다. 모두 그런 것 같다. 가장 외롭고 슬펐던 것은, 내가 아니어도 될 것 같을 때. 그때 제일 우울해진다. 이 자리에 내가 아니어도 될 것 같을 때.     


대체될 수 있을 것 같을 때?

그렇다. 그 감정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그래서 노래를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사실은 마음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을 알아주면 좋을 것 같아서. 내 노래를 들어줬기에 덜 외로워졌던 것 같다. 예전에는 “내가 아니어도 되는 거지?”라고 화를 내고 있었던 거라면, 지금은 외로운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당신의 가사는 많이 회자된다최근 곡인 사바스의 경우다른 텍스트에 영감을 얻어서 쓴 곡이다가사나 멜로디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

보통 경험으로 쓰거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본 눈빛이나 대화나 단어 등에서 많이 아이디어를 가져온다. ‘사바스’의 경우 책 안의 텍스트로 가사를 쓰게 돼서 재미있었다. 자주 가는 카페 겸 펍 같은 데서 게임하듯이 막 읽고, 생각나는 거 적고, 인물 관계도 만들어서 읽고 하다가 다 읽고 나니까 너무 기분 좋고 흥분돼서 집에 가서 곡을 썼었다. ‘사바스’는 너무 이입하기 좋은 텍스트여서 멜로디, 텍스트 모두 금방 나왔다.     


제일 쓰기 어려웠던 곡이 있을까.

꼭 다 쓰고 나면 구리더라.(웃음) 생각 많이 안 하고 쓰기 쉬운 게 좋은 곡이 되곤 했다. 할 말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면 엄청 빨리 나온다. 약간이라도 흐릿하면 오래 걸리고 어려운 것 같다. 근데 지금까지는 쉬운 방법만을 택해왔다. 하고 싶은 것만 해왔고. 그래서 노래들이 단순하다.     


나중에 시도해보고 싶은 음악 분위기나 장르가 있을까?

하고 싶은 건 너무 많다. 3집을 만들고 싶고, 제가 너무 하고 싶은 게 데뷔 10주년 콘서트다.(웃음) 2024년도에. 또, <수잔> 앨범 발매 10주년 공연도 너무 하고 싶다. 다 할 수 있도록 잘 지내고 싶다.     


팟캐스트에서 인디계의 송은이를 꿈꾼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제가 어떤 짤을 봤는데. 카니발을 몰면서 신봉선 씨와 함께 농담하는 장면이었다. 스케줄 얘기를 하고 있었다. 송은이 님 자신이 결국 판을 만들고, 여성 동료들을 다 모으고, 일을 주고 자신이 씬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존경을 느낀다.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메모를 많이 하신다고 하셨는데그 이외에 즐겨 하는 것이 있다면

운동하는 거 좋아하고, 술 먹는 거 좋아한다. 술 먹으려고 운동한다. 그 외에는 취미가 딱히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음악 만드는 게 지금 제일 재미있다. 잘해서 그런 건 아니고, 좋아해서 재미있다.      


혼자 있는 시간쉬는 시간이 궁금하다.

쉴 때는 그냥 집에 있다. 너무 단순한데, 노트북 틀어놓고 요즘 신보 많이 듣는다. 올해는 라나 델 레이 새 앨범을 많이 들었다. 잘 때나 일어날 때나. 트위터나 유튜브 밈 같은 거 찾아보면서 재미있어 하고. 말장난 좋아해서 트위터에 그런 것 올리고.      


산문집에서 오래전 메모해둔 문장을 글로 만들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고등학생 시절 언어영역 문제를 풀다 발견한 문장이었다고문장들을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가 인상 깊은 말을 하면 기억에 많이 남는 경우가 있다. 스페인의 섬 ‘테네리페’ 이야기가 나오는 챕터가 있는데, 그 챕터의 제목은 어머니 일기장에서 봤던 문장이다. 엄마 거니까 제가 베껴도 될 것 같아서.(웃음) “현실은 향수보다 잔인하다”는 문장이다. ‘나도 어디선가 느낀 것 같은데, 나한테는 이런 말이 없었는데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줬네.’라는 감각이 들면 기억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시적인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순간을 모으는 걸 너무나 좋아한다.     


서울의 종로구에 대해서는 홍대 인근과 다른 매력이 있다고 적었다종로에서 즐겨 방문하는 곳을 조금 더 소개해준다면.

원서동. 원서동이 창덕궁을 끼고 세모나게 생겼다.(직접 지도 어플을 켜서 보여주며) 원서동 에 1년 정도 살았다. 안국역에서 창덕궁 돌담길을 쭉 타고 올라가면 원서동이다. 해 질 무렵 가도 좋고, 아침에 가도 좋다.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이젠 아무것도 궁금해지지 않아진 나를 위해 여행을 떠난다.’ 요즘 일상에서 어떻게 궁금증을 발견하는지혹은 여행 계획이 있는지.

여행을 몇 번 다녀본 결과, 빈손으로 가도 둘째 날 우쿨렐레 같은 것을 사서 음악을 만든다. 음악을 만들지 않으면 너무 지루하다. 아니면 가사를 쓰거나 뭔가를 한다. 그때보다 지금이 덜 외롭다. 그때 아마 어떤 걸 느껴도 이걸 알아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아무것도 궁금하지도 않고 외로웠던 것 같다. 지금은 주변에 친구가 있고, 호기심이 다시 차오르는 것 같다.     


올해 당신에게 중요했던 일이나기억하고 싶은 사건이 있다면? 

친구들끼리 공연을 한번 했었다. ‘공중캠프’가 없어지기 전에 열 명이 모여서 공연을 하자고 해서, 그때 많이 행복했다. 와주신 분들도 누구 한 팀을 보러 오신 게 아니고, 이 어떤 음악가들의 우정을 보고 오신 거라고 생각했다. 끝나고 나서 다 같이 열 명이서 ‘브로콜리 너마저’ 선배님의 ‘앵콜요청금지’를 불렀다. 떼창으로. 올해 행복했던 기억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신기하다. 나 같은 사람 인터뷰를 하고 일상을 궁금해한다는 게. 책을 쓸 때도 ‘무슨 책을 써야지’라고 시작했으면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근데 그냥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웃음), 음악 열심히 하면서, 요즘 2030 페미니스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에 대한 평범한 생각들을 기록하면서 살아가겠다. 그래서 같이 살아가자. 살자.


위 글은 빅이슈 12월호 2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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