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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15. 2020

현재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 티모시 샬라메


Writer 문재연



ⓒGetty Images 게티이미지코리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곱슬머리다. 긴 머리가 항상 눈을 가려 시선은 늘 아래에서 위로 치켜뜨는 듯하다. 이마와 코는 거의 직선으로 떨어지고, 긴장한 듯 어금니에 힘을 주면 턱선 전체가 꿈틀거리며 움직인다. 모델같이 마른 몸에 날카로운 인상을 갖긴 했지만 뉴요커 특유의 빠른 말투와 말끝을 흐리는 버릇 때문에 금세 또래 친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뇌하는 햄릿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시몽’과 같은 인물을 연기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잘생겼다’보다는 ‘아름답다’가 더 어울리는 ‘시몽’과 같은 인물을 연기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티모시 샬라메의 매력은 그가 배우로서 스크린에서 움직일 때 배가 된다.


ⓒGetty Images 게티이미지코리아

허세 덩어리여도 괜찮아

레이디 버드

티모시 샬라메를 처음 본 것은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에서다. 이 영화에서 티모시 샬라메는 주인공이 두 번째로 사랑에 빠지는 남자아이를 연기한다. 그는 첫 등장에서 아주 암울하고 허세 넘치게 베이스를 연주한다.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허세 덩어리지만, 무려 수영장에서 다른 친구들이 놀고 있을 때 옆에서 책을 읽고 있다. 그 장면이 아직까지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가 유별나게 잘생겨서, 첫눈에 반해서가 아니다. ‘쟤한테는 절대 마음을 뺏기면 안 된다.’고 강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다짐은 몇 분 뒤 티모시 샬라메의 두 번째 등장에서 바로 무너진다. 


그의 두 번째 등장은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책을 읽으며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다. 주인공이 다가가자 그대로 올려다보는데, 흐트러진 곱슬머리가 눈을 가리는 모습에 무장해제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극강의 허세 캐릭터가 거슬리긴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구글에 이 배우의 이름으로 이미지 서칭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검색을 하면 할수록 사랑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된 이유는 현실의 그는 이 허세 캐릭터와는 정반대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티모시 샬라메의 인터뷰를 보면 마치 우디 앨런이나 웨스 앤더슨 영화에나 나올 법한, 말이 빠르고 주체할 수 없이 어색한 사람같다. 실제로 우디 앨런의 <어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웨스 앤더슨의 <더 프렌치 디스패치>에 등장한다. 이 사람의 이미지와 실제 성격의 간극이 주는 매력, 그게 마음을 끌리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 그 5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사실 티모시 샬라메가 배우로서 감정선을 전달하는 능력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이미 다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다 볼 시간이 없다면 마지막 5분만 봐도 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티모시 샬라메는 한여름에 첫사랑을 앓는 소년 엘리오를 연기한다. 그가 사랑한 남자는 미국으로 돌아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엘리오는 이 소식을 듣고 벽난로의 일렁이는 불 앞에서 그와 함께한 여름을 가만히 반추한다. 뒤에서 어머니가 ‘엘리오’ 하고 부르는 순간, 마치 지금껏 해준 이야기의 끝은 여기라고 말하는 것처럼 엘리오는 관객과 시선을 맞추고 떠난다. 카메라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견디고, 눈빛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이 장면은 연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티모시 샬라메라는 배우 고유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난 장면이다. 그 외 망설이는 몸짓, 허세로 가득한 춤사위, 그러면서도 연인을 좇는 불안한 시선 모두 그가 얼마나 감정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능한 배우인지 증명한다.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를 공부하기 위해 예술고등학교에 다녔고 뉴욕에서 연극 무대에도 오르고 <레이디 버드> 같은 영화에도 출연하긴 했지만, 당시 스크린 경험이 얼마나 적었는지 생각하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이 영화로 티모시 샬라메는 오스카 남우조연상 수상후보에 오른 최연소 배우가 되었다. 아쉽게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전 세계 수많은 관객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에는 충분했다.



ⓒGetty Images 게티이미지코리아



가장 눈부신 순간의 빛나는 아우라

뷰티풀 보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2017년 2월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어 비평계의 이목을 사로잡기 시작했을 때, 티모시 샬라메는 이미 펠릭스 반 그뢰닝엔 감독의 <뷰티풀 보이>에 공식 캐스팅되어 있었다. 이 영화에서 티모시 샬라메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마약중독으로 고통받던 작가 닉 셰프를 연기한다. 제목 ‘뷰티풀 보이’는 아버지 데이비드 셰프가 어린 시절 닉에게 불러준 존 레논의 노래이자, 데이비드 셰프의 부모로서 자녀의 약물중독 경험을 담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마약중독자가 어울린다는 표현을 쓰기는 싫지만, 흐트러진 머리와 가는 팔다리,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처진 눈매가 자아내는 불안한 아우라 덕분에 티모시 샬라메는 이 배역에 적격이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그의 밝은 모습이 돋보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도 사랑에 빠진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엘리오가 피아노에 일가견이 있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비범한 소년이었다면, 닉 셰프는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청년이다.

 

이 영화는 그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잃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 어떻게 고군분투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평범한 닉의 모습은 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버지와 함께 서핑 갔을 때 들려오던 파도 부서지는 소리, 여동생과 그네를 탈 때 비추던 햇살, 그리고 남동생과 해변에 누워 손에 쥐었던 모래알은 추상적인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영화의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중 5분 여간 티모시 샬라메가 낭독하는 찰스 부카우스키의 시 <Let it Enfold You>도 그런 내용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뻔한 것만큼 인생에서 지켜내야 할 것은 없다는 것을. 



ⓒGetty Images 게티이미지코리아



티모시 샬라메라는

고유의 영역

티모시 샬라메의 차기작 중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은 데이비드 미코드 감독의 <더 킹: 헨리 5세>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헨리 5세>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11월 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실제로 티모시 샬라메와 연인 관계인 릴리 로즈 뎁이 이 영화에서 캐서린 왕비 역을 맡아 정식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가 넷플릭스로 풀리기 전 국내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될 예정인데, 10월 8일 오후 8시와 익일 오전 10시에 티모시 샬라메 GV가 있다고 한다. 실물을 영접하고 싶다면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무이한 기회가 아닐까 싶다. 


한편 <레이디 버드>의 감독 그레타 거윅과 배우 시얼샤 로넌이 함께한 <작은 아씨들>도 북미에서 크리스마스에 개봉될 예정이다. 티모시 샬라메는 시얼샤 로넌이 연기한 '조'와 사랑에 빠지는 '로리' 역을 맡았다. 내년 하반기에 공개될 예정인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은 프랭크 허버트가 1965년 쓴 SF 소설이 원작으로, 지금까지 티모시 샬라메가 참여한 영화 중 가장 스케일이 클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웨스 앤더슨 감독의 <더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는 '제프리 엘리'라는 배역을 연기한다고 한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 위치한 미국 신문사의 기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결코 짧지 않은 배우 덕질 경력에서 가장 슬펐던 순간은 잘되길 바랐던 배우가 작품 복이 없거나 경력이 단절될 때였다. 티모시 샬라메의 경우 그런 이유로 슬플 일은 없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뷰티풀 보이> 이후에 <더 킹> 같은 작품을 선택한 행보를 보면 <바스켓볼 다이어리> 이후 <아이언 마스크>에 출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티모시 샬라메의 연극 경험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같은 작가주의적 작품의 출연 경력, 그리고 그레타 거윅 감독이나 배우 시얼샤 로넌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며 여성 중심의 젊은 영화에 참여하고 있는 점도 배우로서의 그를 독자적 위치에 서게 한다.


덧붙여 그는 우디 앨런 감독의 <어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얻은 수익 전부를 할리우드 미투 운동 재단에 전부 기부함으로써 젊은 남성 할리우드 스타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2010년대 후반에 등장해 상당한 호응을 얻으며 성장하고 있는 티모시 샬라메. 그는 훌륭한 배우이자 변화하는 영화계의 지표이기도 하다.


문재연

영화 팟캐스트 ‘씨네는맞고21은틀리다’에서 

수다를 떠는 것으로 모자라 브런치와 왓챠에서 

puppysizedelephant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다. 


위 글은 빅이슈 10월호 2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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