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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25. 2020

[취향의 발견]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


글·사진제공 배민영          





글밥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정초부터 글에서 말장난 비슷한 걸 하려니 저 혼자는 재밌으면서도 너무 언어적 물신화를 보이려는 건가 싶기도 하여 민망하다. 하지만 이미 제목을 그렇게 정해버렸으니 요즘 친일파만큼이나 무서운 꼰대처럼 늘여놓자면 ‘하고 싶은 것들’, ‘해야만 하는 것들’, ‘해야만 할 것 같은 것들’은 서로 다른 범주와 방향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아니냐고 하겠지만, 어쩌면 새해가 되면서 어떤 목표를 세우고 또 그것들 중 상당 부분이 불과 보름 안에(그러니까 이 글을 읽게 되기도 전에) 무너져 내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건 그 ‘것들’ 사이에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필자는 애당초 ‘100권 읽기’라든지 ‘5kg 감량’이라든지, 최근 유행한다는 ‘불릿 저널’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런 목표나 행동양식을 가진 이들을 비판하고자 함은 아니다. 오히려 필자의 게으름과 나약함에 대한 고백일 수도 있겠다.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이 큰 편인 필자는 가능한 물성을 띤 게시나 선언보다는 의식 속에 어렴풋이 목표를 정해두고 자연스러운 기분 속에 그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흔들리는 화살이 되고자 노력한다. 촌스러운 말로 플로를 탄다고 할까. 스스로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어떤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필수적이라고 표현해야 더 맞겠다. 일례로 몇 년 전 출간된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는 개인적으로 제목에서부터 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보다 흥미로웠다. 물론 ‘정의(正義)’에 대해 정의(定意)해보려는 노력은 무척이나 중요하며 그런 선행 작업이 있었기에 후작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성이 훼손되지 않고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기술하고 있는데, 읽으면서 역시 느꼈던 것은 저자가 이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것이었다.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

예술평론이라는 것을 자임해서 하면서, 스스로에게도 묻고 답을 얻는 문장이기도 하지만 작가들을 만나면서 더더욱 느끼게 되는 것 역시 그런 것들이다. 아, 이 사람은 이걸 만들지 않을 수 없었겠다. 그것은 단순한 욕망이나 욕구의 차원이 아니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존재의 발화 방식이다. 꼭 사회성을 띤 신념이 아니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기치에 건 예술의 존립 근거가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는 관점의 생성과 무르익음, 그리고 그것을 목도하는 우리는 어느 순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의식적인 진술만큼이나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는 명제도 함께 생각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므로 결국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많은 욕구와 희망, 그리고 의무감이 혼재되어 있고 그 안의 관계를 모색하면서도 결국은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로 하루하루를 귀결시켜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가가지 않을 수 없는 것들, 화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 해석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 감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생각하고, 생각하며, 또 행동한다.


여기, 그런 우리에 대해 주목하게 하는 작가가 있어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최근 개인 프로젝트 ‘60과 120 사이(From 60cm to 120cm)’와 굿즈-아트 프로젝트 ‘행-온!(Hang On!)’를 진행한 조호영 작가이다. 그는 작업 동기에 대해 “어떠한 대상을 두고 그 존재의 움직임과 변화 등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떠한 ‘운동’을 인지하고, 그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그 흐름을 가시화하는 데에 있다. 일상 속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대상의 흐름과 의미에 대한 낮은 인지도의 근원은 주변 환경에 쉽게 적응하게 되는 우리들의 ‘경향’ 때문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목표 지향과 사유 지향 사이예술

아마도 그는 많은 현대미술 작가들이 그렇듯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가시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아름다움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을 ‘미술’이라고 여기는 통속적인 생각을 바꾸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또한 ‘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단순히 호소하거나 푸념하는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그것의 역동성과 입체성을 최대한 가치중립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필자가 그의 작업들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지점은 타이틀들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직관과 상기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60cm’와 ‘120cm’는 우리가 친소관계, 사적 공간의 성격, 그리고 물리적 거리에 따라 느끼는 친밀함과 불편함 등에 대한 일종의 연구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간단명료한 결론이 가능할 수 있으나 작가의 개입과 재해석, 그리고 참여의 유도를 통해 더 많은 상상과 토론으로 증폭되는 장치이기에 굳이 ‘설치미술’이라 명명하지 않고, 우리가 존재와 거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옷걸이 위에 옷을 거는 행동–즉, 편습되었기에 자각하지 못했던 일상 행위들을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주목했다.”고 하는 ‘Hang On’ 시리즈 중 필자가 예전부터 흥미로워 한 <Hang On II>에 대해서 작가는 “일상품인 행거의 옷걸이 부분을 부드럽고 굽어지는 실리콘 소재로 재-가공함으로써, ‘본래의’ 그리고 ‘무언가 받칠 수 있는 견고함’을 잃어버리게 한 것이다. 단단히 연결된 옷걸이들과는 달리, 이 작업에서 사용된 소재는 그것의 본 기능을 감소시킨다. 그렇기에 관객은 그들의 옷을 걸어보려고 시도할 때, 보다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토록 우리는 목표 지향적 존재이기 이전에 사유 지향적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 좀 더 풍요롭고 덜 강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삶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라는 말로 마치 애정하는 대상에 대한 낭만적 의무만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반대로 ‘이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나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과 같은 현실 직시의 대상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또한 “별로 한 것도 없이 1년이 갔네.”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한 방어 차원으로서 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올해 말에도 별로 한 것은 없었을지언정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을 과감하게 했다든지,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을 느꼈다든지 하는,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개인적 만족이 있기를 바란다. 가까이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 멀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 조심히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많이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기를. 사족을 붙이자면, 어떤 이유로든 이 글이 ‘다시 읽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를 바라본다.     


 배민영 

예술평론가. 갤러리서울, 취향관 등에서

편집장, 전시 및 시즌테마 기획 등을 담당했으며,

변화하는 삶에 대해 배우는 자세로 

놀듯이 일하고 있다.


시각자료 조호영 

2018년 제로원 크리에이터, 2019년 

제로원 랩으로써 활동하였고, 2018년 퍼블릭아트 

뉴히어로에 선정된 조형예술 기반 작가로서 

다양한 팀작업과 개인작업을 통해 발견하기 

어려운 대상들을 관찰하고 발견해나가고 있다.


 위 글은 빅이슈 1월호 2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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