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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Feb 14. 2020

[칼럼] 검찰개혁만큼 경찰개혁이 필요한 이유

용산참사를 기억하자


 성현석



영화 <1987>


새해에도 검찰이 뉴스의 중심에 서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대대적인 검찰 물갈이를 했다. 검찰개혁인지, 검찰 길들이기인지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도 여전하다. 조국 전 장관 수사를 둘러싼 논란 역시 계속 뜨겁다. 이런 논란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미뤄두자.


상대적 약자 편 드는 게 곧 정의는 아니다

다만 한국의 형사사법 절차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변화는 중요성에 비해 관심을 적게 끈 다. 조 전 장관 수사에 대한 관심 가운데 일부만이라도 옮겨 왔으면 싶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는 말 그대로 고위공직 자를 대상으로 한다. 반면,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는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아주 넓다. 곧 탄생할 공수처 관계자를, 보통 사람이 만날 일이 얼마나 되겠나. 하지만 경찰을 상대할 일은 종종 있기 마련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의 핵심 내용은 경찰이 모든 사건에 대해 1차적 수사권과 종결권을 갖게 하는 것이 다. 경찰의 자율적 권한이 대폭 확대된다. 이제까지는 검찰과 경찰이 수직관계였다면, 앞으로는 수평관계에 가까워진다.

권력은 나눌수록 건강해진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위인 관계보다, 서로 견제하는 쪽이 더 낫다. 따라서 최근 진행 되는 변화는 큰 틀에서 바람직하다.

단지 어려운 시험에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젊은 나이에 너무 큰 권한을 갖는 것은 확실히 위험하다. 실제로 20대 나이에 ‘영감님’ 소리를 들었던 검사들이 쉽게 타락하거나 몹시 거들먹거렸던 역사가 있다. 오래전에는 젊은 검사가 나이든 경찰서장에게 폭언을 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자주 떠돌았다.

‘검찰개혁’ 구호가 큰 호응을 얻었던 배경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제는 찬찬히 따져볼 때가 됐다. 검찰이 지닌 힘은 한풀 꺾이게 됐다. 그렇다면, 새로 힘을 쥐게 될 경찰의 행태를 돌아봐야 한다. 경찰은 검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였다. 그러나 약자를 북돋우고 강자를 누르는 일과 정의 실현이 꼭 같지는 않다.


10년 전에도 남아 있던 고문 수사 관행

우선 상대적 약자가 곧 절대적인 약자는 아니다. 경찰이 검찰에 비해 약했다고 해서 경찰이 권력기관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경찰도 뇌물을 받는다. 권력이 없다면, 뇌물을 줄 일도 받을 일도 없다. 검찰에 비해 힘이 약할 뿐, 권력기관은 맞다.

상대적 약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 정의에 부합하려면, 약자가 더 착해야 한다. 혹은 더 약한 이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경찰은 과연 착한 권력 이었나? 약자를 더 잘 보듬는 권력이었나?

일제강점기 경찰 간부로 일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했던 노덕술은 해방 이후에도 경찰 고위직으로 일했다. 일제강점기에 의열단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노덕술이 잡아들이면서 따귀를 때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노덕술만이 아니다. 해방과 정부 수립 시기의 혼란은 치안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이승만 정부는 제국주의 일본을 위해 일했던 경찰들을 해방된 나라의 경찰로 다시 임용했고 중용했다. 4.19혁명 당시 시민에게 총을 쐈던 집단도 경찰이었다.

전국 곳곳에 있는 대공 분실에서 민주 인사들을 고문했 던 것도 경찰이었다. 박종철 열사가 서울 남영동 대공 분 실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하다 숨졌다. 고문 책임 자인 경찰 수뇌부는 사건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경찰의 고문 수사 관행은 민주화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0년 6월 경찰이 자백 을 받아내려 피의자를 고문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9년 8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서울의 한 경찰서 강력팀에서 조사를 받고 구치소로 이송된 피의자 32명 가운데 22명이 경찰로부터 심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이다. 등 뒤로 수갑을 채운 양팔을 머리 쪽으로 꺾어 올리는 이른바 ‘날개꺾기’ 등의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은 대부분 허위로 드러났다. 불과 1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검찰과 경찰,함께 바꿔야 한다

그나마 인권을 고려했던 것은 검찰 쪽이었다. 경찰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덮기 위해 열사의 시신을 몰래 화장하려 했다. 이에 맞서 사체보존명령을 내린 것은 당시 공안검사였던 최환이었다. 그가 민주화운동을 지지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전형적인 공안검사였다. 민주화운동가들을 잡아들여 기소하는 게 주요 역할이었다. 법의 틀 안에서 움직이려 했다는 점이 당시 경찰과 달랐다. 그때도 고문은 불법이었다. 똑같이 독재 부역자 노릇을 했지만, 검찰은 법을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았다. 비슷한 사례가 많다. 삼성 X 파일 사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등을 계기로 삼성이 검찰에 뇌물을 준 일이 드러났다. 실제로 검찰의 수사와 기소는 삼성 비리를 파헤 치기보다 덮는 쪽일 때가 많았다. 예컨대 성실하게 수사했더라면, 법원이 삼성 비리를 봐주려 해도 도저히 봐줄 수 없는 근거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일이 잦았다. 게으른 수사로 비리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혹은 이미 드러난 근거만으로도 충분히 기소할 수 있는 사건인데, 기소하지 않아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기회를 날린 경우도 흔했다.

검찰이 삼성에 치우쳤다면, 경찰은 어땠나. 경찰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노골적이었다.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조합 와해 사건 당시, 정보경찰이 아예 대놓고 삼성 직원처럼 행동한 사실이 최근 재판에서 드러났다. 검찰이 비리 수사에 태만하거나 슬쩍 눈감아서 삼성 편을 들었다면, 경찰은 삼성이 고용한 해결사처럼 굴었던 역사가 있다.

검사 가운데서도 재벌에 당당했던 이들이 많고, 경찰 역시 올곧은 수사를 한 이들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검찰개혁을 외치는 속에서 경찰의 역사에 면죄부가 주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경찰의 어두운 역사는 검찰보다 끔찍하다.


2009년의 비극들

검찰과 경찰, 모두 공권력인데 유독 검찰에 대해 개혁 목소리가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지난 2009년 5월에 있었던 비극이다. 검찰의 모욕주기 수사가 발단이 돼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의사실을 함부로 흘리는 관행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검찰이 현직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사실상 ‘하명 수사’를 하던 관행에 대해 서도 비판이 잇따랐다. 꼭 필요한 반성과 비판이다.

그런데 2009년에는 다른 비극도 있었다. 같은 해 1월, 용산에서 철거민이 불에 타 죽었다. 경찰의 무리한 진압이 원인이었다. 당시 서울경찰청장으로 진압 책임자였던 김석기 씨는 처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영전했다. 일본 오사카 총영사 등을 거쳤고, 지난 총선에 출마해서 국회의원이 됐다.

검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을 기억하는 만큼, 경찰이 빚어낸 참사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1월 20일은 용산 참사 11주기였다. 가방끈 짧고 가난한 이들이 다치고 죽었다. 11년 전보다 더 힘이 세질 경찰이 어두운 역사를 이어 가지 않게끔 하려면, 검찰개혁뿐 아니라 경찰개혁도 함께 요구해야 한다.


성현석

언론인. 17년 남짓 기사를 썼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글을 써보려 합니다


위 글은 빅이슈 2월호 22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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