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규환 사진 김찬영
결혼식 사진제공 김용민, 소성욱
“신랑들 입장!”
결혼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새하얀 드레스 차림의 신부 아니라 근사한 턱시도를 차려입은 두 남자가 입장한다. 꽃가루가 날리고 새신랑 둘은 춤을 추며 행진한다. 김용민, 소성욱 부부는 지난해 5월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집 입주를 앞두고 설레는 나날을 보내는 두 사람을 만났다.
프러포즈는 누가 먼저 했는지 궁금해요.
성욱 공식적으로 제가 하긴 했는데 실제 프러포즈는 용민이 먼저 한 셈이에요. 사귀는 동안 우리 꼭 결혼하자고 저를 세뇌시켰거든요. 그래도 낭만적인 프러포즈를 하면 좋을 것 같아 제가 영상 편지를 준비했어요. 특별한 순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프러포즈를 안 해도 결혼하겠지만 깜짝 선물 같은 느낌으로요.
용민 성욱이 직접 기타 치며 ‘나와 결혼해줄래~’ 노래를 부르면서 프러포즈를 했어요.
반응은 어땠어요?
성욱 뜨뜻미지근했답니다.(웃음)
용민 자고로 프러포즈는 화려한 이벤트여야죠.
두 분의 결혼식은 파티 같은 느낌이었어요.
용민 정형화된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다만 일반 예식장이다 보니 다음 예식 스케줄이 있어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뿐이었죠. 그 안에 진행하려다 보니 식순은 평범한 결혼식과 큰 차이가 없었어요.
성욱 대신 내용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했어요. 저희는 춤을 추면서 발랄하게 입장했고, 주례사 대신 저희가 직접 쓴 다짐문을 낭독했어요. 그리고 청첩장 문구와 다짐문 내용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서로를 더 존중하는 결혼식이길 바랐거든요. 그래서 혼인서약서 대신 다짐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어요.
공개 결혼식을 해야겠다고 용기를 내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용민 어렵지 않았어요.(웃음) 결혼식이니까 당연히 공개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저희를 모르는 사람을 초대하는 게 아니라 가까운 친구, 지인, 동료들을 초대하니까요.
성욱 몰래 하는 결혼식은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저희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고 싶었고요. 다만 장소가 외부로 알려졌을 때 혹시 호모포비아들이 와서 방해하면 어쩌나 싶어 염려하긴 했어요. 그래도 마음이 금방 놓였던 건 많은 사람이 우리를 축하하러 오실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 한두 명쯤 있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어요.
결혼식은 준비 과정이 더 힘들다고 하잖아요.
용민 예식장을 대관할 때도 저희가 게이 커플이라서 혹시 식장에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예식장 직원이 “이제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서 괜찮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대관 계약서에도 신부 칸을 지워주는 등 예식장 쪽에서 세심하게 배려해줬어요.
결혼식 현장에서 눈물을 흘린 분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성욱 저희가 입장할 때 우시더라고요. 그분들도 왜 우는지 이유는 모르겠다고 했어요. 또 저희 어머니가 축사를 해주실 때도요. 성 소수자들은 가족한테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아요. 가족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고 울컥한 것 같아요. 많은 성 소수자 친구들이 저희 결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해주신 것 같아요. 청첩장을 전달할 때도 많이 우셨는데, 한 친구는 “이런 결혼식을 상상하게 해줘서 고맙다.”라며 한국에서는 이런 결혼을 죽어도 못 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신혼집을 구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용민 불편한 점이 있었어요. 중개사가 남자 둘이 사는데 방이 두 개면 좁지 않으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당당하게 부부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혹시 집주인이 호모포비아여서 계약을 안 해줄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 둘이 어떤 사이인지 계속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친구 사이라고 말했어요.
성욱 괜한 불이익을 당하기 싫어서 친구 사이라고 둘러댔는데 은근히 불쾌했어요.
그리고 성 소수자들은 결혼과 주거 정책에서 분명히 배제되어 있죠.
용민 전세 자금 대출을 받으려고 알아봤어요. 요새 신혼부부는 전세 자금을 최대 2억 원까지 정부에서 빌려준다는 현수막 광고가 여기저기 보이더라고요. 저희는 당연히 해당되지 않으니까 박탈감을 느꼈어요.
게이 부부가 살기 좋은 집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용민 딱 한 가지요. 이웃과 단절된 곳. 이웃이랑 친하게 지내는 집이 있잖아요. 그러면 불편할 것 같아요. 맨날 볼 사이인데 속이기도 그렇고. 그럴 바에는 아예 단절된 삶을 사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집주인이 신경 안 쓰는 집에서 살고 싶어요.
성욱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웃과 멀어지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가까이 지냈을 때 우리가 상처받을 일에 대비해서 아예 모르는 편이 좋다고 느껴요. 만약 성 소수자 친화적인 이웃이라면 얼마든지 친하게 지내고 싶죠.
예전에 귀여운 게이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요.
성욱 우선 늙을 때까지 둘이서 잘 살고 싶어요. 제가 어릴 때는 롤 모델이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게이 할아버지 부부가 되어 있으면 그때 청소년 성 소수자에게 조금은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게이 할아버지 부부가 되어서 여기 우리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정규환
프리랜스 에디터. 20대의 절반 동안 영화사, 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매거진 <GQ>, <뒤로>,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 등에 성 소수자 관련 에세이를 기고했다.
인권 운동을 하며 만난 게이 파트너와 5년째 동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