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찐’ 로맨티시스트, 정금자

하이에나

글 황소연     

단 한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았을 것만 같다. 하긴, 남는 시간에 하는 일이 거대 로펌 건물 앞에 가서 선글라스를 끼고 높은 ‘금자탑’을 바라보는 일이라니…. 치열한 싸움은 더 치열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하이에나> 속 변호사 정금자(김혜수)는 별로 쉬는 것 같지 않다. 밥을 먹을 때도 마치 연료를 충전하는 듯하다.

갖은 무시와 수모에도 ‘타격감 제로’다. 거대 로펌인 ‘송&김’ 소속 변호사들은 명예가 실추되면 쪽팔리지만, 더 내려갈 곳이 없는 금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승소를 손에 거머쥐고 만다. 그래서 ‘창피하다’는 감각이 없는 듯하다. 물론 돈 많은 사람에게는 애절하고 진심이다. 마침내는 이혼소송 건의 상대편 변호사인 윤희재(주지훈)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해 그를 애인으로 만들고, 주요 정보를 빼낸다. 이게 웬 로맨틱코미디의 도입부? 하지만 금자에겐 희재의 진심은 중요한 게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살면서 세상을 호령하는 여자를 드라마에서 만나긴 어렵다. ‘송&김’에서 법조계를 주름잡는 남자들은 늘 아리송하게 말한다. 금자의 화법과 반대다. 자신이 부리는 변호사들을 ‘미꾸라지’와 ‘메기’에 비유하고, 중요한 순간, 정확히 말하면 상대방이 내 말을 잘 안 듣거나 구슬리고 싶을 때엔 ‘희재야’, ‘현국아’ 하고 호칭 대신 이름을 불러 친밀감을 강조한다. 이건 송&김에 정금자가 입사한 게 아니라, ‘송&김’과 정금자라는 세계가 충돌한 것과 같다.

정금자에게 빨려 들어가는 순간은 명품을 걸친 모습도(물론 멋있긴 하지만), 애인(인 척했던) 희재에게 살갑게 구는 모습도 아니다. 자기소개를 하는 순간부터다. “안녕하세요~ 정금잡니다.” 돈을 주고 산 이름이어서 일까. 악센트 없이 읊는 이 인사는 마치 자동응답기 음성 같다. 허리는 미리 연습한 듯 적당히 굽혀진다. 인사치레엔 관심 없고, 본론인 돈 이야기로 넘어가자는 액션이다. 건물, 아니 세상을 정복하기 위한 하이에나의 움직임. 그는 남은 회 차 동안 부자들을 ‘탈탈’ 털어먹을 예정이다. 이미 버려버린 희재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정금자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만 바라보는 진짜 로맨티시스트다.     

SBS 금,토 밤 10시 방송

위 글은 빅이슈 3월호 22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