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Aug 01. 2020

[에디토리얼] 상상


편집장. 김송희   

     


1년 동안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주에 개봉한 신작 영화를 소개하는 짧은 코너였어요. 영화 코너이다 보니 음악은 주로 OST를 틀었는데요. 어느 날은 피디님이 “오늘은 기자님이 듣고 싶은 노래 하나 추천해주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평소 음악은 다양하게 듣지만 막상 듣고 싶은 단 한 곡을 추천하라고 하니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내가 평소에 뭘 듣더라? 급하게 플레이리스트를 뒤져봤는데, 방송 시간대나 채널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우울하고 느린 음악들뿐이더라고요. 피디님은 제가 듣고 싶은 걸 틀자고 했지만, 저는 청취자들이 좋아할 법한 노래를 틀고 싶었습니다. 상상을 해봤어요. 사람들은 저녁 8시에 이 방송을 어디에서 어떻게 듣고 있을까? 긴 하루를 마치고 지친 퇴근길 꽉 막힌 차 안에서 습관적으로 듣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왠지 밝고 신나는 음악을 틀고 싶었고, 아이돌의 댄스 음악을 틀어 달라 청했습니다. 최애곡은 아니지만 흥겨워서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은 곡이었죠.


가끔 ‘사람들은 이 글을 어디서 읽고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물론 저와 기자들이 관심 있는 내용으로 기획을 하고 취재를 하지만, ‘우리 독자들은 어떤 걸 좋아할까?’를 상상하는 게 우선입니다. 《빅이슈》의 취지가 좋아서 구매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표지에 나온 사람의 팬이라 단발성으로 구매하는 독자분도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기회로 이 잡지를 손에 들게 됐을까요. 재미있고 유용한 내용을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시대에, 《빅이슈》를 선택해준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요.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특별한 사람일 것 같단 상상을 해봅니다.



장마가 길어지면 빅이슈 판매원들은 판매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코로나에, 더위에, 우천에, 비협조적인 주변 상권까지… 판매원들은 매일 힘든 싸움을 하고 있겠죠. 길에 서서 팔리지 않는 잡지를 손에 들고 겨우 버티는 판매원에 대해서도 상상해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겨우 이렇게 다른 사람의 고난을 짐작해보는 일뿐입니다.  


여름이라, 단순하게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봤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배우 박정민을 커버로 만났고요. 래퍼 슬릭과도 긴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이들은 모두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었어요. 언제 올지 모를 먼 미래보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상상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좋은 연기를, 노래를, 사진과 글을 완결해냅니다. 결국 우리가 타인에게 온전히 가닿는 방법은, 쉽사리 아는 척하지 않고 남의 삶을 침범하지도 않으며 그저 상상해보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이 글을 읽고 있을까요. 여름의 한복판에서 잡지라는 매개로 우리는 만났습니다. 빅이슈에게도, 판매원에게도, 저에게도 사실 여름은 그다지 우호적인 계절이 아니지만 되도록 계절의 빛나는 면을 보고 싶어요. 덥고 지치는 게 아니라 따스하고 청명한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8월을 잘 이겨내시길.      


위 글은 빅이슈 8월호 23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