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상을 새로이 기획하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하곤 해요. 그 대상은 사람이나 동물이기도 하고, 영화나 음악이기도 하고, 물건이나 음식이기도 합니다. 영훈은 어떤 음식을 먹게 됐는지, 어떤 재료를 좋아하는지, 그때 누구와 함께 있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해 일기를 쓰듯 부드럽게 말해주었어요. 그가 전하는 따뜻한 마음 한 그릇을 대접받고, 다가오는 시간을 더 다정하게 살고 싶은 용기를 가져보려 해요. 어느 계절, 버드나무의 초록과 어울리는 음식은 영훈의 영혼을 북돋울뿐더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계속 떠오를 거예요.
이 집에 어떻게 이사 오게 됐어?
전에 살던 집은 작은 원룸이었는데 처음이라 모든 게 다 좋았어. 그래도 나중에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 새로운 집을 알아볼 때 망원동이나 연희동으로 가고 싶었어. 근데 내 조건에 맞는 전세 매물이 없는 거야. 지금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근처에서 일을 하니까 같은 6호선 근처로 알아보다가 석관동까지 오게 됐어. 이 집을 봤을 때 공간이 잘 분리되어 있어서 내 취향대로 잘 꾸며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사하면서 인테리어에 특히 신경 쓴 부분은 뭐야?
예전부터 갖고 싶던 가구가 있었어. 지금 책과 다기, 오브제들을 올려놓은 짙은 원목 캐비닛인데, 이사하면서 어디에 둘지 가장 고민해서 그런지 애착이 많이 가. 그리고 편하게 앉아 쉴 수 있는 큰 소파 맞은편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빔 프로젝터도 설치했어. 또 계절이 바뀌면 테라스에 작은 텃밭도 꾸리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좋을 거 같아서 하나씩 채워가고 있어.
집에 책이 참 많고, 책을 좋아하는 게 느껴져.
내 마음 같아서는 책으로 가득 채운 서재가 있으면 좋겠어. 최근에 친구들과 독립 출판을 하게 되면서 책 디자인에도 관심이 생겼거든. 내 취향에 꼭 맞는 책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좋아하는 책들을 책장에 꽂아두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 그 책들을 읽곤 해.
주인장의 취향으로 잘 큐레이션 된 아기자기한 독립 책방에 온 것 같아.
그래서 종종 친구들이 “이거 빌려 가도 돼?”라고 물어보면 흔쾌히 책을 빌려줘. 저 위에 김소연 시인의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라는 책이 있는데, 예전에 내가 이별하고 힘들 때 많은 도움이 된 책이거든. 그 이야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자기도 힘들 때 저 책을 찾으러 오겠다고 했어. 집에 있는 책을 통해 가까운 사람들과 공감하는 재미를 발견하기도 해.
독립하고 나서 비건(채식주의)을 지향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어.
늘 비건에 관심이 있었어. 독립하면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 싶잖아. 그 시기에 내가 바라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는데,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 같아. 그 당시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은 후로 자연스럽게 비건을 지향하게 됐어.
비건을 지향하는 마음이 어땠는지 궁금해.
비건을 실천하기 시작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야. 건강, 환경, 동물을 위해서. 결국 멀리 보면 모두 다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 동물들에 대한 마음이 특히 와 닿았어. 왜냐하면 이 사회에서 나도 종종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곤 하는데, 어떤 동물들도 마찬가지야. 동물권과 관련한 책들을 읽고 고민하면서 비건을 지향하게 됐어.
혼자 살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행복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졌다는 네 말에 많이 공감했어.
예를 들어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선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먹고, 치워야 하잖아. 또 지금 냉장고에 음식이 얼마나 남았는지 파악하고 다음에 사야 할 재료를 머릿속에 담아둬야 하고. 독립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그동안 내가 누리던 행복이 당연한 게 아니었구나, 이제는 생활의 모든 부분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어. 그러면서 내가 먹는 음식과 재료가 어떻게 식탁까지 오게 됐는지 상상해보게 됐지.
현실적으로 살아갈수록 채식이나 환경문제를 놓칠 수밖에 없잖아.
맞아, 나도 최근에 일이 바쁘니까 음식을 선택할 때 융통성을 부리게 되더라. 회사 근처에서 비건식으로 먹으려니 여건이 안 될 때가 많으니까 가끔은 생선을 먹기도 해. 바쁘니까 배달 음식도 평소보다 더 자주 먹게 되고. 꼭 절대적인 시간이나 돈이 아니어도,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비건을 더 잘 지속할 수 있다고 느껴. 나는 앞으로도 비건을 지향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어떻게 나만의 여유를 만들어가야 할지 고민하게 돼.
그럼, 이 집에 살면서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야?
때마침 어젯밤에 참 행복했어.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따뜻한 채소 수프를 끓여줬거든. 친구들이 그 수프를 먹고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어. 친구들이 모두 떠나도 기분이 공허하지 않고 집 안에 온통 사랑의 기운이 가득 남아 있었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비건 요리를 추천해줄 수 있어?
평상시에 나 역시 집에서 간단하게 혼자 만들 수 있는 비건 요리 위주로 해 먹는 편이야. 어제 친구들한테 끓여준 채소 수프는 먹어도 금방 배고파지는 요리이긴 하지만, 온기가 잘 전달된다고 할까, 특유의 감동을 느끼게 해. 왜냐하면 여러 가지 색이 고운 채소를 잘게 다져 오래 끓이면 자연 재료에서 우러난 단맛과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수프에 담기거든.
채소 수프 레시피도 궁금해.
우선 렌틸콩과 양파, 셀러리, 당근이 꼭 있어야 해. 그리고 토마토나 호박이 있으면 더 좋고. 우선 렌틸콩을 미리 물에 불려야 해. 준비한 채소는 모두 칼로 다지고. 그런 다음 코코넛 오일을 두른 팬에 준비한 재료를 모두 넣고 볶다가 채소가 부드러워지면 물을 붓고 소금과 후추로 간하면 끝이야. 뭉근하게 끓이면서 월계수잎이나 허브를 취향껏 추가해도 좋아. 나는 마지막에 꼭 파슬리를 넣어. 그럼 보기에도 예쁘고 풍미가 확 살아나거든. 이렇게 끓여뒀다가 손님이 왔을 때 따뜻한 상태로 내거나, 식어도 한 번 더 끓이면 맛있으니까 나중에 먹어도 괜찮아.
그러고 보니 집 군데군데 초록색과 버드나무 사진이 많네.
엽서랑 책을 사고 모아보니까 버드나무였어. 예전에 좋아하던 사람이랑 선유도공원 벤치에 앉아 큰 버드나무 한 그루를 본 이후부터 버드나무를 좋아하게 됐어. 기둥이 단단한 버드나무 잎사귀들이 바람이 부니까 살랑살랑 춤추듯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야. 그때 나도 버드나무처럼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침실은 의외로 이국적인 느낌의 파란색이네.
응, 거실 공간이 따뜻한 느낌이니까 침실은 차가운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겨울에 날씨가 추워도 전기장판을 안 깔거든. 공기는 차가운데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잘 때 드는 아늑한 느낌을 좋아해. 창문에 하얀 블라인드를 달고 파랑 이불을 두니까 시각적으로도 시원해 보이더라고.
평상시에 글을 쓸 때는 어떤 마음으로 써?
평상시에 지향하는 것 중 하나가 최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오래 곱씹고 싶은 마음인데, 그게 지난 일에 대한 후회의 감정일 때도 있고, 스스로를 잘 돌보지 못한 시기의 일기 같을 때도 있어. 이런 태도로 글을 쓰다 보면 글을 쓰는 게 결국 움츠러든 나를 하나씩 놓아주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해.
사람은 누구나 작은 변화가 모여 성장과 맞물리는 거 같아. 너의 2021년은 어땠어?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살고 싶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그래, 그거면 충분하지 뭐. 나에게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데, 그 방향이 잡혀서 힘들어도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한 해였어. 또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히 나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나름대로 균형을 잘 맞추는 과정이라는 기분이 들어서 2022년도 기대돼.
최근에 책을 세 권 구입했어. 거기에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 하나는 <새 마음으로>라는 책으로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해온 여섯 명의 인터뷰를 담았는데, 소개 문구가 마음 깊이 와닿았어.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헌 마음도 빈 마음도 아닌 새 마음으로 오랫동안 일했나.’ 그리고 요즘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다정한 마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한 책이야. 마지막 하나는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라는 책이야. 수의사가 도축장에서 경험한 일을 기록한 책인데, 비거니즘의 필요성을 곱씹어볼 기회가 될 거 같아. 이렇듯 2022년의 나는 매일 새 마음으로 살고 싶고, 늘 다정한 사람이고 싶고, 보이지 않는 곳에 희생당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해.
글/ 정규환, 사진/ 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