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이끈 우연 속에서
1월에 2주간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초반에는 친구와 동행하다가 중반부터는 홀로 제주에 머물렀다. 친구와 함께할 땐 그대로 좋았고, 혼자가 됐을 땐 또 그대로 편안했다. 혼자 지내는 동안 제주에 여행 온 지인과 연락이 닿아 하루 동안 신나게 보내기도 했고, 또 다른 하루는 얼마 전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에 정착한 지인을 만나 오름에 오르기도 했다. 서쪽 협재에서 얼마간, 성산에서 또 한동안, 종반에는 세화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지금은? 다시 서울 한복판의 카페다. 야속하게도 제주의 시간은 이미 저 멀리 가버렸지만, 그래도 그 덕에 2월과 다가올 봄을 날 힘이 생겼다.
책방 투어가 시작됐다. 독립 책방에 관심이 많은 친구 덕에 덩달아 나도 가는 곳마다 근처에 있는 책방을 한 군데씩 둘러본다. 물론 서울에서도 때때로 독립 책방을 찾곤 했지만 단행본 시장에 최적화된 독자로서 아무래도 독립 책방 방문이 상대적으로 뜸한 게 사실이다. 책방에 들러도 출판물의 종류나 디자인, 만듦새 등을 눈으로 쓱 훑고 슬그머니 나오는 때가 많았는데 이번엔 달랐다. 책방마다 특색이 뭔지, 어떤 책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공간은 어떻게 활용했는지, 주인장의 인상과 책방의 분위기는 닮았는지, 책방을 차릴 것도 아니면서 괜히 호기심 많은 손님이 돼 이것저것 둘러보고 만져보고 들춰보고 물어본다. 그리고 책방에 갈 때마다 적어도 책을 한 권 이상 샀다. 제주로 떠날 때 이미 책을 두 권 들고 갔지만, 그럼 뭐 어떤가. 여행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장소든 그게 뭐가 됐든 계획 없이 훅 하고 내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삶의 우연과 마주하는 즐거움을 극한으로 느낄 수 있는 때가 아닌가. 그게 여행의 낙이다. 왠지 이곳에서 만난 책을 읽는 편이 내게 더 좋을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책으로 부리는 소소한 사치랄까. 물론, 서울로 돌아갈 때 수하물에 붙는 추가 비용을 감당하고 싶지는 않으니 적당히 해야 한다.
제주에 가져간 책은 출판사에서 서평 청탁을 받은 〈젊고 아픈 여자들〉(미셸 렌트 허슈 지음, 마티 펴냄, 2022)과 그 글을 쓸 때 참고가 될까 싶어 다시 읽을 생각으로 가져간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지음, 다다서재 펴냄, 2021)이다. 두 책 모두 최근 내 삶의 화두라고 해도 좋을 육체적, 정신적 아픔과 통증, 고통의 문제와 추상적이라 할지 모르나 실은 가장 구체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에 관한 흥미로운 책이다. 〈젊고 아픈 여자들〉은 ‘젊은 여자들’이 아플 때조차 겪어야 하는 부당과 차별과 폭력의 문제를 수많은 여성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경우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평생 ‘우연’을 연구해온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가 죽음을 앞두고 의료인류학자 이소노 마호와 나눈 편지를 엮었다. 병, 고통, 우연, 운명, 불운의 문제를 철학적 사유 속에서 펼쳐낸 더없이 진솔하고 담백한 서간문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우연의 힘을 믿는다. 기꺼이 그 힘에 이끌려 가보고 싶다. 사람만이 아니라 사물과 공간 역시 자력이 있다고 느낀다. 내가 어찌하지 않아도 때때로 나는 그 사물과 마주할 것이고, 그 공간으로 갈 것이다. 나보다도 먼저 사물과 공간이 그들과 내가 만날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들이 나를 기다리고, 나를 끌어당긴다. 나와 함께 제주로 간 두 권의 책도 이런 우연의 산물인 것만 같다. 이번엔 그 책들이 제주의 작은 책방에서 만난 책들을 끌어당겨 내 곁에 두는 것만 같다. 너른 의미에서 보자면 제주에서 만난 책 모두 서로 같은 종족에 속하는, 서로 꽤 닮은 모양새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장편소설 〈어떻게 지내요〉(엘리 펴냄, 2021)가 그중 하나다. 제주의 책방 ‘풀무질’에서 이 책을 만났다. 다 읽은 후 속지에 써둔 메모를 다시 보니 ‘이 책을 만나 행복하다.’고 썼다. ‘행복’이라니. 좀처럼 쓰지 않는 단어지만 이 책을 다 통과한 뒤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통과하다’라는 말이 이 책에서만큼은 중요하다. 관통, 통과 즉, 그 시간을 직접 겪는다는 뜻이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글을 이제야 읽다니. 이 책과 나 사이의 우연이 이제야 제힘을 발휘하다니. 뒤늦은 인연에 한탄했지만, 더 늦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어떻게 지내요〉의 화자인 ‘나’는 죽음을 앞둔 친구와 여행하며 자신과 친구의 삶과 죽음, 우정과 사랑, 여성의 삶, 타인을 향한 이해와 공감, 연민과 애증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그와 동시에 시그리드 누네즈는 소설의 형식을 영리하게 활용하며 ‘나’를 통해 자신의 지적 계보와 예술적 지평을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게 펼쳐내 보인다.
이웃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어떻게 지내요?” 하고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 시몬 베유
시그리드 누네즈는 ‘나’를 통해 시몬 베유의 저 말에 이렇게 덧붙인다.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Quel est ton tourment?’(〈어떻게 지내요〉, 122쪽)
일상을 지내는 일이 실은 고통과 등치한다는 것을, 안부를 묻는 일이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일임을 어떻게 ‘Quel est ton tourment?’ 저 문장은 알고 있었을까. 나보다 한참 먼저 도착한 저 문장이, 이 책이 내게 묻는다. ‘어떻게 지내요?’
또 한 가지 애틋한 우연이라면 이원하의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문학동네, 2020)를 만난 일이다. 성산의 한 편집숍에서 견본을 읽고 홀딱 반했으나 재고가 없다는 비보를 듣고 다음을 기약해야 했는데, 돌고 돌아 함덕의 ‘만춘서점’에서 재회했다. 이 시집의 존재는 한참 전에 알았는데 마땅히 손을 대지 못했다. 아마도 유혹의 말처럼 들리는 표제시의 제목에 약간 부담스러워 차일피일 미뤘던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여행이다. 경직된 몸과 마음과 사고를 활짝 열어주니 말이다. 이 책 역시 관통해 겪고 나면 저 문장이 소박한 고백이자 바람으로 다시 읽히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자연에서 나와 너로.’ 시집 속지에 남긴 메모는 이러했다. 크고 너른 품을 지닌 이원하의 시들을 지나며 자연으로 갔다가 다시 나와 너로 향할 힘을 얻는다.
제주에서 만난 책이 더 있지만, 오늘은 지금까지 언급한 책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책 읽기의 기쁨을 맛봤다. 잃었던 감각 하나가 되살아난 것만 같아 괜스레 건강해진 듯도 하다. 제주로 떠난 덕분에 만난 우연들이다. 먹고, 자고, 걷고, 책을 읽는 것이 거의 전부이던 시간. (아, 내 사랑 수영도 했지!) 단순하지만 가장 명쾌한 삶이다. 봄이 조금 더 가까이 왔다.
글/ 정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