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Mar 10. 2022

마라 맛 세상에 순한 맛 미스터리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

OTT(Over The Top) 플랫폼이 넘치는 시대, 콘텐츠 경쟁도 격렬하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수많은 작품들, 시청자들은 15분을 틀어 보고 끄거나 1.5배속으로 돌려 본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단 자극적 설정으로 시선을 끌려는 작품이 많아진다. 잔혹하게 살해된 사람의 시체, 남다른 성적 취향, 물신에 현혹된 인간의 끝없는 욕망, 사람들을 거침없이 공격하는 좀비 등등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용납되는 세계다. 이런 장르물 경쟁 속에 범죄 실화를 다루는 팟캐스트의 팬일 뿐인 아마추어 세 사람이 모여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을 담은 귀여운 추리물이 등장했다. 2021년 훌루(Hulu)에서 처음 방영한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총 10화, 디즈니플러스 제공)다. 

뉴욕의 고급스러운 아파트 아르코니아 14층에 사는 찰스(스티브 마틴)는 한때는 형사물 <브라조스>의 타이틀롤을 맡으며 잘나갔지만, 이제는 과거의 인물로 기억되는 퇴역 배우다. 친구도 거의 없고 성격도 강퍅한 찰스의 취미는 팟캐스트 ‘트루크라임’을 듣는 것. 어느 밤 아파트에 울린 화재 경보 때문에 급히 근처 식당으로 대피한 찰스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수다스러운 퇴물 제작자 올리버(마틴 쇼트)와 늘 부루퉁한 태도의 20대 여성 메이블(셀레나 고메즈)과 합석했다가, 모두 같은 팟캐스트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방송에서 소개한 사건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토론하며 아파트로 돌아간 세 사람, 같은 아파트 9층에 사는 남자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전격 수사에 돌입한다. 

STAR 오리저널 시리즈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의 원제는 <Only Murders in the Building>이다. 찰스와 올리버, 메이블이 시작한 새 팟캐스트의 제목이기도 하다. 오로지 건물 안에서 일어난 사건만 수사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과거 형사 역할로 이름을 날린 찰스, 이 팟캐스트를 이용해 제작자로 재기하고 싶은 올리버, 그리고 과거의 비밀을 간직한 메이블, 세 사람의 동기는 다 다르지만 수사에 임하는 자세만은 모두 진지하다. 


살인 사건을 다루더라도 잔혹성보다는 작은 공동체 내 네트워크에 초점을 맞추고,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두뇌 게임에 가깝게 그려내는 추리 장르를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라고 한다. 이 장르에선 가십과 티타임에서 많은 추리가 오간다. 1회 25분 내외의 분량으로 간결하게 제작한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는 코지 미스터리의 정통성에 충실한 작품이다. 살인 사건과 이를 둘러싼 여러 사람의 욕망을 다루지만, 드라마 분위기는 늘 밝고 산뜻하다. 대도시 뉴욕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제한하는 고풍스러운 아파트를 무대로 설정함으로써 작은 마을을 만들 수 있었고, 주민 회의나 SNS, 팟캐스트를 통해 소문을 추적한다. 살인 사건이나 공격이 여러 건 일어나기는 해도 시체를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일은 없다. 모든 인물은 감정적 관계로 얽혔다. 아마추어 탐정들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진실을 추적해간다. 

배우들 또한 익숙한 얼굴이다. <신부의 아버지>로 유명한 스티브 마틴은 주연인 찰스를 연기하는 동시에 제작을 맡아 몸 개그를 펼치면서 추리와 코미디를 절묘하게 결합했다. 스티브 마틴과 오랫동안 함께해온 마틴 쇼트 또한 얄밉게 보일 수 있는 올리버라는 인물을 사랑스럽게 연기했다. 이 두 베테랑 배우에 디즈니 스타로 연기 인생을 시작한 셀레나 고메즈가 어울리며 훌륭한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같은 아파트 주민인 스팅, 그들이 좋아하는 팟캐스트 진행자로 나온 티나 페이 등 특별출연 배우의 면면도 화려하고, 각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의 개성도 다양하다. 

STAR 오리저널 시리즈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비극이 오락으로 소비될 


그렇다고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가 단순히 귀여운 작품만은 아니다. 주요 등장인물의 인종 구성 등 지적할 점이 있기는 해도, 다양한 계층의 인물을 현실에 맞게 배치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7화 ‘6B호의 남자’다. 이 아파트 6B호에 살고 있는 팟캐스트의 주요 후원자 테디 디마스의 아들 테오는 농인이다. 7화는 그의 관점으로 묘사한 세계를 그려낸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들리지 않고 자막으로 처리하거나 미국 수어로 대화한다. 세계는 멍멍한 고요 속에 갇히고, 청인 시청자들은 농인들이 인식하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많은 드라마가 농인을 주인공으로 해도 실제로는 청인의 관점으로 세상의 소리를 다 담아낸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 방식이다. 제작자 존 호프먼은 처음엔 대사가 좀 더 있었지만 나중에 편집 과정에서 스티브 마틴과 의논해 마지막까지 대사 없이 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막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높은 미국에서 이런 에피소드는 놀라운 시도이자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범죄 실화 프로그램을 포함한 현대 미디어를 향한 냉소적 비판도 담겨 있다. 아마추어 탐정들은 나름대로 사건 수사 전문가를 자처하지만, 진짜 범죄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세 사람이 만든 팟캐스트가 소소하게나마 열혈 팬을 모으자, 그들도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진실을 밝히느냐 아니냐를 떠나 타인의 비극을 오락으로 소비하는 작금의 태도에 질문을 던질 만하다. 현재 범죄 실화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이 많이 만들어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생각해볼 문제다. 

유쾌한 분위기에서도 반전을 이어가며 진지한 추리물의 근본을 잊지 않는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는 여러 면에서 균형 잡힌 드라마다. 무엇보다 사람의 원초적 신경을 자극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평단의 호평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이 쇼는 시즌 2에 카라 델레바인, 셜리 매클레인, 에이미 슈머의 특별 출연을 알리며 또 한번의 재미를 예고한다. 


글/ 박현주

매거진의 이전글 말들의 은하수, 담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