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인물을 다룬 전기영화는 두 개의 갈림길 앞에 선다. 하나는 실존 인물의 행적을 최대한 충실하게 옮기고 재현하는 길이다. 이 경우 배우는 외형부터 동작, 사소한 습관까지 실존 인물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애쓴다. 스티브 잡스를 다룬 영화 중 애스틴 커쳐가 주연을 맡았던 <잡스>(2013)가 대표적인 사례다. 다른 하나는 한 인간이 걸어온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행보에서 대표적인 요소를 추출하여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스티브 잡스를 모델로 한 영화 중 대니 보일 감독의 <스티브 잡스>(2016)가 이에 속한다. 스티브 잡스를 다룬 두 영화는 각각 지향하는 바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형식으로 구성된다. 이 경우 대체로 외모의 싱크로율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자는 인물의 생애를 되도록 많이, 친절하게 다루는 한편 가능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애쓴다. 반면 후자는 특정 시기에 한정하여 인물의 특징을 증폭하고 상상과 각색을 더한다.
영국의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의 이야기를 다룬 <스펜서>는 살짝 특이하다. 겉보기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외양을 최대한 옮겨 담는 데 주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외모부터 표정, 작은 동작까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분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모습은 우리가 기억하는 세기의 아이콘으로서의 이미지 그 자체다. 무대가 되는 샌드링엄 별장의 모습이나 영국 왕실 사람들의 크리스마스 만찬 모습에 대한 재현도 두말할 나위 없을 만큼 생생하다. 하지만 <스펜서>는 왕세자비로서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사실적인 재현과 복원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차라리 전통에 목매는 왕실의 부속품으로서 어떤 자유도 허락되지 않았던 다이애나 스펜서의 정신이 붕괴되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인물의 내면을 형상화한다는 건 그만큼 주관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재해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펜서>의 장면들은 철저하게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들을 복원하는 반면 다이애나의 망가져가는 심리를 서사의 축으로 따라간다. 이와 같은 괴리, 필연적인 충돌과 불협화음이야말로 <스펜서>가 실존 인물을 다루는 독특한 방식이다.
3일간의 크리스마스 만찬을 무대로 고른 이유
실제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으레 그렇듯 <스펜서>도 한 줄의 자막으로 시작한다. ‘실제 비극을 기반으로 꾸며낸 이야기.’ 실화(true story)가 아니라 실제 비극(ture tragedy)이라는 자막은 <스펜서>의 지향점을 분명하게 지시한다. <스펜서>는 다이애나의 삶을 비극이라는 필터링으로 정제하여 카메라에 담는다. 비극이란 무엇인가. 인물의 욕망이 주변 환경에 좌절될 때 비극이 피어난다. 다이애나에게 비극은 왕실 생활 그 자체다. 다이애나는 1981년 찰스 왕세자와 결혼하며 온 국민에게 사랑받은 왕세자비가 되었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영국민들의 상징적 존재가 되어야 하는 왕가 사람들은 진짜 자신과 별개로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 자아가 필요했다. 일반인이었던 다이애나에게 세간의 소문과 시선이란 감옥은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남편 찰스 왕세자는 대놓고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왕가의 체면과 위신을 앞세워 다이애나에게 인내를 강요한다. 다이애나의 자서전에 따르면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와의 결혼 전부터 유부녀였던 카밀라 파커 볼스와 불륜 관계였다.
다이애나는 왕실이 만들어놓은 보기 좋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하지만 영국민들은 강요된 허수아비였던 다이애나를 너무도 사랑했다. 비극은 여기서 심화된다. 사람들의 사랑은 다이애나에게 닿지 못하고 왕실의 고루한 전통과 강요된 역할은 그녀를 거대한 성 안에 가둔다. 이제 선택지는 두 가지다. 그대로 천천히 말라죽거나 벽을 부수고 나오거나. 우리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 <스펜서>가 다루고자 하는 것, 파블로 라라인 감독이 궁금했던 것은 한 사람이 비극을 극복하고 하나의 주체로서 자립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연출자 파블로 라라인이 꾸준히 매료되어온 소재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실존 인물인 재클린 케네디의 일화를 다루었던 <재키> 역시 같은 맥락의 시도였다. 실존 인물의 내면, 특히 혼란과 압박 한가운데 놓인 인물의 발버둥을 상징적인 이미지로 포장하는 건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특기 중 하나다. 그 성패와 무관하게 <스펜서> 역시 같은 길을 걷는다. 아니 이번에는 더욱 화려하고 감각적인 스타일로 옷을 갈아입고 돌아왔다.
<스펜서>는 다이애나라는 인물이 비극적인 상황에 갇혀 거의 숨 막히기 직전에서 출발한다. 왕실 가족이 샌드링엄 별장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연휴 3일간의 시간은 다이애나에게 지옥이다. 다이애나의 생애 중 왜 하필 이 시기를 영화의 무대로 삼았을까.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스펜서>는 왕비가 되지 않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기로 결심한 다이애나의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3일간의 크리스마스 만찬은 사실 특정한 시기라기보다는 왕실의 고루한 전통을 상징하는 최적의 무대에 가깝다. 영화는 이미 한계까지 몰린 다이애나가 3일을 기점으로 왕세자비의 자리를 내려놓기로 결심했다고 해석한다. 정확히는 이 3일간의 시간은 다이애나의 붕괴되는 내면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스펜서>는 제목 그대로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스펜서라는 자신의 본래 이름을 되찾기까지의 심적 고뇌의 시간을 담았다.
조각난 마음의 콜라주,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존재감
영화가 시작하면 다이애나는 혼자서 차를 몰고 가다가 길을 잃는다. 만찬이 진행되는 별장은 자신이 살았던 고향 근처였기에 에스코트 없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지만 다이애나는 길을 헤맨 끝에 사람들에게 묻는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거죠?” 이건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노골적인 은유다. <스펜서>가 다이애나의 심리를 표현하는 방식은 대체로 이와 같다. 이어서 다이애나는 버려진 농장 한가운데 서 있는 허수아비를 발견한다. 이 역시 다이애나가 처한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상징이다. 동시에 이 장면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예정된 결말, 왕실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는 다이애나, 아니 스펜서를 위해 안배된 장치이기도 하다.
허수아비는 아버지가 입던 낡은 옷을 입고 있다. 다이애나는 구태여 그걸 벗겨 와 수선한다. 이쯤 되면 결말은 능히 짐작 가능하다. 다이애나는 허수아비의 옷을 벗겨 스펜서 가문의 옷으로 수선한 뒤 옷을 입고 떠날 것이다. 이미지의 반복과 상황의 변화를 통해 인물의 성장을 드러내는 단순한 구조. 중요한 건 다이애나가 스펜서가 된다는 결말이 아니다. <스펜서>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그 과정에서 반복되는 이미지의 나열이다. 감옥 같은 왕실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갖가지 형태로 다이애나를 압박하고 영화는 마치 패션쇼를 하듯 그 속에 다이애나를 밀어 넣는다. 화사한 다이애나의 드레스는 왕실의 고리타분한 전통에 맞춰 정해진 순서대로 반복되고 그에 맞춰 심리적 충돌도 증폭되어간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서사적으로 대체로 불친절하고 관객을 몰입시키는 사건도 부족하다. 갑갑한 저택과 탁 트인 들판, 화려한 드레스와 음식을 게워내는 변기의 대비, 스펜서 가문의 저택을 두르고 있는 철조망이나 목을 옥죄는 진주목걸이 등 다이애나의 조각난 심리를 상징하는 장치들이 맥락 없이, 정확히는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형상화하고자 하는 일념에 마구잡이로 콜라주 된다. 꿩과 두 아들에 대한 은유처럼 부분적으로는 납득 가능한, 기발한 면이 있지만 긴 시간을 지탱하기에는 다소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다이애나가 스펜서가 되어가는 과정을 심리적으로 설득, 동조하기보다 다이애나의 내면 상태를 상징하는 다채롭고 혼란스러운 이미지를 퍼레이드 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매칭되는 요소들이 흥미롭지만 그것이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다. 다이애나의 내면을 상징화한 이미지의 패션쇼는 언뜻 화려하지만 두 시간 동안 비슷한 이미지가 반복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스펜서>가 관객을 만족시키는 부분이 있다면, 실존 인물의 전기영화가 으레 그렇듯 주연 배우의 호연 덕분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벌써부터 수많은 여우주연상에 오르내릴 만큼 섬세한 감각으로 다이애나 스펜서의 육체를 스크린 위에 소환한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존재감은 단지 이미지를 모사하는 것 이상이다. 흔들리는 정신을 절제된 표정과 동작으로 표현해내는 솜씨는 메소드 연기의 정점을 찍는다. 현실과 망상을 파편적으로 오가는 연출이 하나의 호흡으로 정리될 수 있는 건 무게 추 역할을 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가냘프면서도 단단한 육체가 주는 강렬한 힘이다. <스펜서>는 수작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아쉽다. 비극의 심연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다이애나 스펜서의 숨겨진 내면을 새삼 알려주었다고 보기에도 힘들다. 그러나 스크린에 새겨진 한 여성의 공허한 표정들만큼은 또렷이 각인된다. 설사 그것이 다이애나의 얼굴인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것인지 알 수 없을지라도, 그 영화적 육체만큼은 생생하다.
글/ 송경원(영화평론가,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