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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사람 Mar 17. 2022

꼭 투명할 필요는 없다

내 마음에 건강한 이자를 붙이며

정기 후원은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천천히 쌓아갈 생각이었는데 고민을 하다보니 극소량의 관심마저도 아쉬울 곳이 너무 많다. 방구석에서 이 털뭉치들과 체온을 공유하며 손가락 몇 번 움직여 음식과 당장 필요 없는 것들을 내 기분 맞추려고 꾸준히 사고 있는 것만큼 쉬운 일임에도 고심하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어려움이 전시된 모습들을 샅샅이 훑어보며 고민하기보다는 마음이 더 가는 곳들에 하고 있다. "여기 정말 힘들겠구나, 여기는 덜 힘들어 보이는데, 저기가 더 힘드려나."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불편했다.


예전에 푸르미카드(식권)를 쓰는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과자를 못 사먹는 것에 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댓글에는 "배가 불러서 끼니 대신 다른 것이 먹고싶은 것이냐, 당장 끼니가 더 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말이 생각보다 많았다. 도움을 받는 이들은 도움을 받을만한 자세의 기준이 찰나조차도 불쌍하고 처연하지않으면 안 된다는 말들이 이제는 식권이 필요없는 내가 보기에 너무 아팠고, 이미 매일 푸르미카드를 쥐고 눈치보며 감사한 마음으로 주먹밥이나 컵라면만 사는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또 고아원의 아이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갖고싶어하거나 후원받은 브랜드 운동화를 신은 것을 보고 화가 난 사람들도 보았었다. 아이들은 "감히" 도미노 피자를 콕 찝어 먹고싶어하면 안 됐고, 나이키 운동화를 얻어 신는 것조차 가난과 어려움을 개개인의 기준에서 평가받아야했다. 그래서 그 뒤로 최대한 너무 많이 알아보며 기부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고작 몇만원 지불하며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도 어쩌면 몇만원어치 잣대를 들이대게 되는 일이 될 것 같았다.


마음이 바스라져 한 푼도 의미없게 느껴지던 서른하나의 겨울 길거리에서 시작했었고, 지금은 그 때의 나를 지켜줬던 일들 중에 하나이다. 경제활동을 꾸준히 하며 스스로를 책임져야하는 성인인데 넉넉한 것도 아니면서 한두푼이 귀찮고 의미가 없어지니까 나도 곧 없어질 것 마냥 짐작이 되고 그런 내 상태에 저항도 없었다. 그때의 난 모든 것들의 의미들을 모르겠으니 열심히 팔을 흔드는 호객 풍선인형보다도 못 한 기분이었고 이러다 정말 작은 내 주변에 큰 일을 낼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한겨울에 모두에게 외면받는 길거리 스티커 붙이기가 눈에 밟혔고, 그대로 인파를 가로질러 종이에 내 이름과 계좌번호를 적었다. 쥐꼬리만큼이라도 의미있는 곳에 사용해보자며, 제 코도 엎어놓고 경제활동도 쉬던 때에 막연했던 새 단추를 꿰었다.


 투명하고 청렴한 마음만이 필요한  아니다. 지나가다 흘린 초코파이와 온정, 향해오는 다정한 눈빛, 쓰다듬는  마디,  하루의 봄바람이 나를 지탱해주는 때가 생긴다. 사람은 때로 터무니없이 퍼석하게 메마르고 질퍽하게 무거워지기도 한다.   모금과 작은 불씨 하나, 잠깐 쉬어갈 그늘이 사람의 마음을 구하기도 한다. 나와 누군가를 위한 작은 응원이 차곡차곡 오래 지속되어 함께 버티고 튼튼해지길 바라고있다.


그러니까 안팎으로 보다 건강한 사람이 되고싶다.

모두가 자신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고 소중하면 좋겠다. 마음가짐만으로 되지않는 때에 등을 받쳐주고 손을 잡아주고 걸음을 함께 해주는 이가 주변에 있었으면 좋겠고, 스스로도 그 온기를 진득하니 쫓을 힘이 언제나 남아있길 바란다.


도저히 자신을 어여삐 여기고 응원하지 못 했던 내게

누군가를 위해 소원하며 우리를 격려하는 마음은

결국 나를 아끼는 의지라는 이자가 되어 크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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