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 맥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지만 또 그 맥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리송해지기도 합니다.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딥 리스닝이나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명상이나 철학, 소셜 미디어나 관심 경제 등등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 쉽게 읽히진 않습니다. 제니 오델은 페이스북을 오래 할수록 우울함이 깊어지는 걸 느끼고, SNS를 멀리하고 평소 좋아하던 ‘새 바라보기’를 시도하는데요. 그렇다고 저자가 SNS는 무조건 나쁘니 다 끊고 자연 속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진 않습니다. 현대사회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으니까요.
우리는 아주 복잡한 세상에서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어려운 일을 해나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칼로 무를 자르면 무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죠. 칼로 무를 자르면 한번에 잘리지 않은 무의 파편이 여기저기 튀기도 하고, 막상 잘랐더니 무 속이 노란색일 수도 있고, 맛을 보니 감자 맛이 날 수도 있는… 그런 세상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이 책에서 자주 공감한 단어가 바로 맥락입니다.
“내가 소셜 미디어에서 만나는 정보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맥락이 없었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중에서) 현재 나의 육체가 존재하는 현실의 맥락이 아니라 잠시 트위터에 접속해 피드를 내려본 저자는 그 안에 정보들이 서로 어떤 맥락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당연하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쏟아내는 글이니까요. 이렇다 보니 어떤 사건이 온라인에서 터졌을 때 그 맥락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조차 맥락을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사실 유무는 맥락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맥락 안에서 어떤 말은 진실이 되기도 거짓이 되기도 하니까요. 잡지 한 권도 저는 맥락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기사의 순서를 짜는 배열표를 만들 때 저는 그 안의 맥락을 생각합니다. 독자가 어느 페이지부터 볼지 알 수 없지만, 앞에서부터 읽는다는 것을 가정할 때 이 기사 뒤에 이 기사가 배치되어야 책에 맥락이 생기겠구나, 하는 등 여러 가지를 참고합니다. 이 일을 왜 해야 할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질문들이 오가는 속에서도 맥락을 찾아보려 합니다. 빨리 다 알지 못해도 괜찮고, 사람과 사건이 어떤 맥락 속에서 연결되어 있는지 시간을 들여 찬찬히 찾아보고 싶습니다.
재미있게도, 이번 호에 ‘어쩔탱고’와 ‘아직은 다정함을 말할 때’의 두 필자 모두 ‘취미 생활’에 대해 말합니다. 이 기사를 앞뒤로 배치한 것도 나름의 맥락이 있습니다. 그 일을 내가 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왜 나는 이것을 하고 여기에 매료되었을까. 이런저런 삶의 맥락 속에서 그 일들은 일어나고 있겠죠. 도대체 이런 일은 왜 일어났을까,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쉽게 평가하거나 정의하고 떠들지 않고 조용히 맥락을 읽어내고 싶습니다.
글/ 김송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