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Sep 15. 2022

생존이 곧 투쟁이다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한인정 작가

당연한 얘기지만, 서울이 아닌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출판사가 있고 이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누군가는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싸우기도 한다. 결혼 제도를 통해 한국으로 이주해 와 가족 안과 밖에서 접하는 편견과 혐오에 맞서 싸우고, 또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성들. 아니,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지 않더라도 그들이 살아남고 적응해온 것만으로도 투쟁임을 이 책은 기록하고 있다. 다섯 개의 로컬 출판사에서 그 지역의 목소리를 기록한 ‘있다’ 시리즈 중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는 옥천에 사는 이주여성들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것은 기자로 일하며 동물권을 비롯한 소수자 이슈에 관심을 기울여온 한인정 작가다. 이 인터뷰에 담긴 글은 책에 있는 수많은 투쟁의 목소리 중 일부에 불과하다. 웃기고, 슬프고, 때론 가슴 벅차게 뜨거운 연결과 공감의 책을 써낸 한인정 작가를 만났다. 

한인정 작가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이주여성의 인터뷰로 구성된 책인데요인터뷰는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옥천에 이주여성협의회가 있는데요. 여기 회장인 부티탄화 언니가 도와줘서 인터뷰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이들을 만나 차 마시고, 인터뷰 끝나고 밥이라도 한 끼 먹는 것도 다 돈이 들더라고요.(웃음) 이주여성협의회의 1년 회비가 4만 원 정도인데, 이주여성들이 경제권이 없으니 이조차 부담스러워해요. 충북 공동체지원사업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여기서 여비 정도의 돈이 나왔고 덕분에 자주 만나면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만두셨지만, <옥천신문기자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일을 하다 보면 여러 소수자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제 경우에는 이주민 쪽 취재를 자주 하다 보니 이주여성들과 친분이 생겼어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서울 밖 세상에 대해선 잘 몰랐어요. 그런데 <옥천신문>에 취직하고 거기 살게 되면서, 제가 그간 이주여성들을 단편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몸이 뻐근해서 가끔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데 거기서 일하는 분도 이주여성이고 집이 지저분해서 도움을 받게 된 분도 이주여성이더라고요. 직접 이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생각했고 그 기록이 책으로 묶이게 됐어요.


있다’ 시리즈는 다섯 개의 지역 출판사들이 모여 만든 책인데요옥천에서는 싸우는 이주여성 주제가 됐습니다옥천에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줄은 책을 보고 알게 됐어요.

포도밭출판사 대표가 최진규라는 친구인데, ‘있다’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뭘로 주제를 잡을까 하다가 처음에는 옥천에서 일하는 택배 분류 노동자들을 취재하려고 했대요. 옥천 허브라고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택배 현장에서 직접 일하면서 노동자들을 만나려 하니, 이분들은 옥천에 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대요. 새벽이면 단체 버스로 타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왔다가 일이 끝나면 또 버스를 타고 나가요. 농촌이나 어촌의 고된 노동도 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것이 많고, 힘든 택배 분류나 상하차도 그런 거죠. 한국의 많은 노동 현장이 그런 식으로 굴러가요. 이주민이 들어와서 일을 하면 이분들은 집단화되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으니까 그냥 노동력만 전가되는 거죠. 어쨌든, 처음엔 택배 노동자의 목소리로 책을 내려고 하다가 그게 진행이 잘 안 되어서 저한테까지 제안이 왔고 마침 제가 이주여성을 취재해 글을 쓴 게 있어서 정리해서 책으로 나오게 됐어요.


책은 언어문화폭력양육권과 이주민 법규  다양한 이슈로 정리되어 있고  주제에 따라 여성들의 목소리가 대담처럼 모여 있습니다인터뷰는 각자 진행되었을  같은데요섭외나 진행 과정도 궁금합니다.

부티탄화 언니가 다 연결을 해주었어요. 우리도 자기 속 얘기를 남에게 쉽게 털어놓기 쉽지 않잖아요. 언니가 평소에 듣던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소개해주면서, 통역도 해줬어요. 언니가 이주여성협의회를 만들게 된 이유가 있는데요. 옥천에 다문화가족협의회가 있는데 거기 부티탄화 언니가 임원으로 들어가려고 했어요. 근데 여자는 안 받아준다고 하더래요. 다문화가정의 남성만 협의체에 들어갈 수 있는 건데, 그게 무슨 다문화가족협의회에요. 가족이라는 이름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뭐가 썩어가든 말든 상관없다, 는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거죠. 언니가 화가 나서 ‘다문화남편협의회’로 이름 바꾸라고 하면서 이주여성을 위한 단체를 만든 거예요. 만약 (이주민) 언니들이 남편과 이혼하면 다문화가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거잖아요. 탄화 언니가 그랬어요. 그럼 우리는 여기서 무슨 존재야? 말 잘 듣고 사랑받을 수 있을 때에만 가족으로 인정하는 거냐고요. 이주여성이 남편을 능가하고 돈도 더 벌고 한국 사회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 건 배격하는 거죠.


책에도 나오는데 결혼 이주여성이 가장 크게 받는 오해가 도망치는 여자라는 편견이잖아요그래서 언어를 배우지 못하게 하고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요

맞아요. 그런데 그들이 왜 도망쳤는지,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잖아요.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 서래도 이주여성이잖아요.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우리가 행동(또는 사건)의 맥락을 알게 되잖아요. 그러곤 서래를 이해하게 되죠. 알게 되면 이해 못 할 사람이 없어요. 책을 쓰면서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게 ‘이해’였어요. 이주민은 생김새나 삶의 경험이 선주민과 다르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알게 되면 공감의 장이 열리죠. 그게 시작이라고 봐요.  


나무바람나비  여성들의 이름은 가명으로 되어 있고본국 역시 정확하게 언급되지 않는데요일부러 그런 형식을 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명으로 한 이유는 이게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개인의 사례로서 이 가족이 나쁘다, 이 시어머니와 남편이 나쁘다, 라고 고발하려고 쓴 책이 아니니까요. 어느 개인이 드러나면 이게 우리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사사화될 수 있잖아요. 개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있었고요. 


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 당하는 언어 폭력물리적 폭력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될 때에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지점들도 있는데요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감정에 휩싸일 때가 많았을  같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제가 가장 많이 느꼈던 생각은 이 여성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투쟁하지 않았다 뿐이지 이들 하나하나가 부엌에서, 침대에서, 일상에서 삶을 견디는 것 자체가 다 엄청난 투쟁이라는 거였어요. 이분들이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통제당하고, 언어나 문화가 익숙하지 않으니 집에 갇혀 있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이 삶의 투쟁들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근데 나무가 가만히 있어도 그 안에서 엄청난 작동이 있는 것처럼 이주여성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가정 안에서 조금씩 바꿔나가는 모든 행동들이 엄청난 투쟁이거든요. 책을 쓰면서 많이 느꼈던 게 모두 각자의 차별이 있었다는 생각이었어요. 그 차별들을 어떻게 연결시키는지가 중요하고 보이지 않는 투쟁을 연결해내면 우리가 함께 뭉쳐질 수 있겠구나,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인상적이었던 것이 우리는  때문에 여기   아니고 함께  살고 싶어서  것이라는 이었습니다 말이  책의 핵심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도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이분들에게 잘해줘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제가 인터뷰하면서 언니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왜, 왜 나 불쌍한 사람으로 봐? 나 튼튼한 여자야!’ 하는 거였어요. 언니들 만나다 보면 다 저보다 생각과 몸이 건강하고, 이미 너무 잘 지내고 있거든요.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우리가 (앞을 향해) 밀어주는 게 아니라, 경사로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 통역이 필요한 거지 보호자나 남편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이웃이나 친구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서 손을 내미는 멋진 언니들이고, 나랑 같이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료 시민이에요. 그렇게 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누구보다 잘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내가 겪은 일뿐만이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를 계속하시잖아요.

그렇죠. 이분들에게 언어를 가르쳐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 수업 같은 걸 하지만 같이 사는 남편이 불편하지 않은 정도의 언어만 가르치거나, 실제 필요한 언어들은 배우지 못하고 짧게 끝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동네에 말이 통하는 친구에게 의지하게 되고요. 그리고 폭행을 당하고 경찰을 불러도 말이 안 통하니 제대로 표현을 못 하거나 경찰이 ‘가족들끼리 해결하라’면서 맡기고 가는 경우도 많아요. 가정을 유지시키는 걸 너무 중시하고 이분들이 한국에 결혼 제도를 통해 왔다고만 생각하는 거죠.


이혼을 하고 싶어도 아이 때문에  하는 경우도 책에 언급됩니다.

한 인간으로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혼을 통해 잘 해결되는 경우는 사실 드물어요. 한국어가 서툴다 보니 최저임금 노동자로 머물 수밖에 없고 이혼 소송 과정에서도 한국에서는 일단 양육권을 가지려고 하면 변호사를 구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잖아요. 그럼 남편에게 양육권이 가거나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을 땐 추방까지도 가능하거든요. 제가 최근에 어떤 언니와 같이 기고문을 쓰면서 언니의 노동사가 글에 들어갔는데요. 언니가 한국에 오기 전에 베트남 신발 공장에서 일을 했어요. 우리가 어느 나라 공장에서 만들었으면 ‘메이드 인 베트남’ 이렇게 써 있잖아요. 그런데 언니가 베트남에서 온 물건이 아닌데, 인구를 유지하는 역할을 할 뿐인 물건 취급을 하는 거죠. 언니가 ‘나는 물건이 아니야.’라고 말해요. 자유롭게 인간으로 살고 싶은데, 그걸 뒷받침해주는 정책이 없어요. 실상 언니를 이곳으로 부른 것은 한국 사회였음에도 언니가 그 ‘필요’를 벗어나는 순간 쉽게 버리는 거예요.


엄마가 받던 차별을 다문화가정의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받게 되는 문제도 있죠

이 책에 담겨 있는 모든 말들이 그 아이를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었어요.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제가 인터뷰하면서 언니들한테 그랬어요. ‘언니 어떻게 안 죽고 버텼어?’ 언니들은 코리안드림을 꿈꾸고 한국에 온 멋진 여자들인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잖아요. 하루에 17시간을 노동하면서 열심히 산 언니가 아이에게 얘기하는데, ‘엄마 비행기 타봤어.’ 이 말밖에 못했대요. 근데 언니들이 살아남은 것 자체가 진짜 멋있고, 이 사회의 생존자거든요. 지금 한국 사회가 그래도 과거에 비해 이주여성이 살기가 아주 조금이라도 좋아졌다면, 이게 다 언니들이 개척해낸 거예요. 말도 안 통하는 곳에 와서 혼자 노력해서 적응하면서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해낸 것들. 그 과정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 한국 사회에 살지 못하고 쫓겨난 사람도 있고요. 제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어요. 이 싸움이 ‘함께 나아가는 싸움이길 바란다’. 저도 고민이 있으면 언니들한테 얘기하면서 울거든요.(웃음) 제가 동물·식물을 돌보듯 언니들이 저를 돌봐주고, 언니들이 서로를 돌봐요. 우리 모두 돌봄의 관계에 있고 함께 싸워나가는 관계예요. 그런 멋있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 곳곳에서 싸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요. 


글. 김송희/ 사진. 강민구

매거진의 이전글 '헤어질 결심 각본' 편집자를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