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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Sep 15. 2022

'헤어질 결심 각본' 편집자를 만나다

안녕하세요, 저는 각본집입니다. 요즘 저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해요. 어떤 문장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쓰이듯이, 저는 여러 책들 중에서도 눈으로 읽고 입으로 말하는 기쁨을 선사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당신은 좋아하는 영화 대사나 책 속의 대사를 입 밖으로 꺼내어본 적 있나요? 읽고 말하는 순간 주인공들의 내면에 한 발짝 깊이 빠질 수 있을 거예요. 감상을 넘어 체험하는 책, 영화가 품은 여운을 책의 세계로 확장시킨 <헤어질 결심 각본>을 둘러싼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책의 여행> 코너에서 네 번째로 만난 사람은 을유문화사 최원호 편집자입니다.

최원호 을유문화사 편집자

<헤어질 결심 각본> 어떻게 발간하게 됐나요?

지난해 을유문화사에서 박찬욱 감독님의 사진집 <너의 표정>을 출간했어요. 영화 외에 감독님의 예술 세계를 다룬 출판 시도를 위해 사진집을 냈는데 감독님도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다음 책도 함께 하자고 약속했는데 자연스럽게 각본집이 되었습니다.


각본집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편집자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이렇게 많이 판매될 거라고 예상 못 했어요. 책 판매가 꼭 영화의 대흥행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워낙 각본 자체의 퀄리티가 좋았기도 하고 온라인상에서 ‘밈’으로서 활용됐던 대사들의 힘이 컸어요. 대사 속에 등장하는 ‘마침내’처럼 단어가 주는 생경함 같은 것도 있었죠. 또 영화의 대사나 제목을 다른 뉴스에서 사용하기 시작하면 흥행 궤도에 오른 거잖아요. 예를 들어 뉴스 정치사회 면에서 ‘◯◯◯와 헤어질 결심’이 제목으로 나왔을 때 ‘오래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장르의 책들과 각본집 편집의 다른 점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각본집 편집은 완전히 기술적인 작업이고요. 보통 책을 만들 때는 문장의 스타일이나 구성을 작가와 편집자가 함께 만들어가죠. 교정을 하면서 문장을 바꿔본다거나 느낌에 변화를 주는 식으로요. 텍스트에 편집자가 개입할 수 있어요. 그런데 각본 같은 경우는 이미 완전한 텍스트이기 때문에 편집자가 수정할 수 없어요. 대신에 편집자로서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우체부처럼 매끄럽게 전달하는 것도 나름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영화 속에 을유1945’ 서체가 사용되었다고 들었어요.

감독님께서 극 중 소품에 ‘을유1945’ 서체를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어디에 쓰는지는 안 알려주셨는데 나중에서야 주인공이 사용한 협박 편지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희 출판사가 1945년 을유년에 창립된 광복둥이 출판사인데요. 2020년, 출판사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서체를 무료로 배포했어요. 출판사가 내놓을 수 있는 아이템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서체 배포가 적절한 세리머니라고 생각했죠. 클래식한 과거 서체들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감각으로 조합하였습니다.


관객으로서 영화 <헤어질 결심> 어땠나요?

박찬욱 감독님과 정서경 작가님이 그동안 만든 영화들은 무언가 파괴하면서 진전이 된다고 보았거든요.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시스템일 수도 있는데 <헤어질 결심>은 조금 다르다고 느껴졌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마찬가지로 극 중 여러 사람이 죽었더라고요. ‘파괴했지’만, 왜 의식을 못 했는지, 파괴적이었다는 인상이 남는 임계점이라고 할까요. <헤어질 결심>은 그 임계점 위로 도달하지 못한 거예요. 마침 그 위에는 두 주인공의 사랑이 두텁게 쌓여 있었고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스토리는 이해가 됐는데 마음에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 그게 무엇인지 다들 헷갈리는 거예요. 보통은 여운이라고들 표현하는데 정확한 단어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영화가 던지는 일종의 질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각본의 차이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끼셨나요?

처음 영화를 보는 중간에는 일부러 각본 생각을 안 하려고 했어요. 둘 사이의 차이를 생각하면 영화를 제대로 못 보겠더라고요. 오프닝 씬부터가 다르거든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차이를 발견하고 놀라는 몇몇 순간들이 있었죠. 영화를 먼저 본 관객들에겐 영화가 완성된 우주라면, 각본을 먼저 본 사람한테는 그 반대예요. 영화와 각본은 일종의 멀티버스 같은 거예요. 같은 이야기 같지만 디테일이 다르고 사건이 진행되는 방향과 순서가 교차되는. 두 개별 작품이 서로 조금씩 다른 길을 갔는데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걸 보면서 운명이 이런 게 아닌가, 결국 종착지는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흥미로웠습니다.


각본집을  즐기는 방법이 있을까요.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라는 책을 편집하고 행사를 통해 독자분들을 만날 시간이 있었어요. ‘희곡을 어떻게 읽어야 될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제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2021)를 예로 들었어요. 등장인물들이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연습하는 장면들이 등장하거든요. <헤어질 결심>도 SNS에서 모여서 같이 읽어보자는 독자분들이 있더라고요. 희곡처럼 영화 각본의 대사 부분은 소리 내서 읽히기 위해 만들어진 말들, 다시 말해 발화되기 위해서 만들어졌잖아요. 정말로 소리 내서 문장을 말하면 눈으로 읽었을 때와 느낌이 달라지거든요.


<헤어질 결심> 유독 대사의 힘이 크다고 느껴져요.

일상에서도 말이 오갈 때에 기운이 있잖아요. 주고받을 때 타이밍과 느낌, 합 같은 것도 있고요. 그리고 내가 상대방에게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던진다는 의식을 직접 체험하는 거죠. 저는 그래서 희곡을 읽을 때 처음에는 눈으로 읽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이 되면 집에서 중얼중얼 되뇌어보곤 해요. 감상을 넘어 체험하는 거죠. 감상과 체험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고요. 직접 느껴봐야 아는 거겠죠.


편집자님이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무엇인가요?

“참 불쌍한 여자네.”

극 중 해준(박해일 분)이 서래(탕웨이 분)를 조사하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인데요. ‘당신 같은 사람을 보면 뭐라고 할 것 같냐’라는 해준의 질문은 서래에게 제삼자의 시선으로 답을 하게 해요. “참 불쌍한 여자네.”라는 대답을 하는 서래는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서래가 불쌍해 보인단 말이에요. 발화자의 내면이 겉보기와 다를 수 있다는 거리감을 주는 중요한 대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각본집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요?

젊은 여성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로맨스와 관련된 감성에 더 잘 반응해요. 다만 꼭 장르 자체가 로맨스여야 할 필요는 없고요. 독자들이 발견하는 거예요. 김혜리 영화기자는 <헤어질 결심>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피해 사랑을 표현하는 말과 몸짓의 총화”라고 표현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독자들의 애간장을 태우지 않았나. 사랑이 완성되지도, 제대로 표현조차 되지도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에 오래 남아 있는 작품이 되는 거죠. 영화에 꽂힌 이유는 모두 다를 테지만 각자의 삶과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헤어질 결심 각본> 편집자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종합도서 판매 순위 1위 달성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편집자로서 성실하게 만든 책이 출판 시장에서 1위를 해봤다는 경험이 기분 좋은 꿈처럼 남아 있어요. 그냥 그런 거예요. 토요일에 즐거운 약속이 있어서 금요일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간밤에 엄청 좋은 꿈을 꾼 거예요. ‘기분 좋다’ 그러고 이제 샤워하러 가는 거죠.


 책이 앞으로 어떤 여행을 떠나길 바라나요?

<헤어질 결심 각본>으로 각본집을 처음 구매했다는 분들이 계세요. 각본 읽는 재미를 느끼셨다는 분들도 많았고요. 읽는 즐거움을 느끼고 다른 영화들의 각본도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면 좋겠어요. 나아가 각본뿐만 아니라 희곡이라는 장르도 매력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의 ‘읽는’ 경험이 한 발짝 확장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정규환/ 사진. 이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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