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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Sep 15. 2022

메리 퀴어 연애 리얼리티, '남의 연애'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시대, 지금은 어느 채널을 틀어도 짝짓기 프로를 볼 수 있을 정도다. 포맷도 다 비슷하다. 도시나 여행지에 있는 근사한 집에 8~10명의 사람을 몰아넣는다. 그들에게 데이트 미션을 주고 관심 있는 대상을 탐색하게 한다. 어색한 대화와 은밀한 눈길, 솔직한 눈물이 오가는 가운데, 마음은 이어지고 누군가는 커플이 된다. 방송이 끝난 후에는 결혼 소식도 들을 수 있다. 웨이브 오리지널 프로인 <남의 연애>는 이런 헤테로섹슈얼, 즉 이성애자 짝짓기 프로 속에서 퀴어 남성들을 출연자로 한다는 면에서 독자적 위치를 차지한다. 

<남의 연애>는 포맷이나 출연자의 면면에서 남다를 게 없으면서도 퀴어의 데이트를 공공연히 다루지 않는 한국 방송 환경 때문에 독특해진다. 룰은 다른 연애 리얼리티 프로와 거의 유사하다. 같은 집에서 8명의 남자가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를 향한 마음을 키워간다. 매일 밤 서로 마음을 전하는 전화를 하게 하거나 미션에 따라 데이트 상대를 지목하는 등 기본 룰도 똑같다. 하지만 <남의 연애>는 제목에 그 본질과 문제를 동시에 담고 있다. 이 프로는 남성 출연자만 나오기에 ‘남(男)’의 연애지만, 내가 아닌 다른 타인이라는 점에서 ‘남(他)’의 연애이기도 하다. 모든 연애 리얼리티 프로가 사실 내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라는 면에서 남의 연애이긴 하다. 하지만 이 타인이라는 관점은 퀴어 정체성과 결합하면서, 타자성의 의미를 강조하고 <남의 연애>는 무거운 중의성을 띤다. 

웨이브, <남의 연애> 포스터

이 타자성은 헤테로섹슈얼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방송계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한 부분이었다. 세상 모든 연애가 이성 간 관계를 뜻하는 건 아니고, 연애 리얼리티 프로의 시청자가 모두 이성애자는 아닌데도 지금까지 연애 리얼리티 프로는 이성애를 규준으로 삼고 그에 따라 진행했다. 여성과 남성으로 구도가 짜인 연애 리얼리티 프로에서는 의문 없이 사회에서 주어진 성 역할대로 남성이 구애하고 운전과 데이트 코스를 리드한다. 시청자 또한 이성애자, 많은 경우 이성애자 여성이라고 전제하고 프로를 구성한다. 그러니까 실제로 <하트 시그널> 같은 연애 프로는 출연자와 동일시하거나 출연자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시청자를 타깃층으로 한다. 하지만 역시 이성애자 여성이 주된 시청층을 이루는 <남의 연애>는 오히려 타자적 성격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그건 소위 퀴어 작품 중에서도 BL(Boys Love·남성 동성애) 장르가 갖는 본연적 성격이다. 이렇게 타자화된 연애는 일정 이상 판타지가 된다. 

<남의 연애>가 방송된다고 했을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이 타자화된 판타지에 있었다. 일부 기독교 단체의 반대 따위는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제작진이 단순히 연애 리얼리티 프로의 인기에 편승해 자극적 요소로 동성애를 소비하는 것은 아닐지, 퀴어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봤을지 의문스러웠다. 결국 <남의 연애>는 ‘남자들의 연애를 표현할 수 있는 프로인가’ 하는 본질적 성찰을 거쳤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 엔딩은 불가능하다

7월 15일, 막상 뚜껑을 연 <남의 연애>는 ‘순한 마라 맛’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가능한 연애 예능 프로다. 이는 제작진의 배려라기보다는 출연자들의 개성에서 우러나는 성격이다. 성별로 나누어 이성을 공략하는 일반 연애 예능 프로와 달리 <남의 연애>에는 모든 출연자가 서로 관심 상대가 될 수 있고, 그러기에 방 배정 같은 문제에 예민해진다. 같은 침대를 쓰게 하는 룰 같은 것도 자극적 요소를 더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이 프로의 남성 출연자들은 다른 연애 예능 프로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분위기를 밝게 만든 건 서로에 대한 배려다. 첫 저녁 식사를 위해 요리 재료를 준비해 온 출연자가 있는가 하면, 아침을 챙겨주고, 설거지 등 집안일도 사이좋게 함께 한다. 같은 입장이기에 서로 따듯한 말로 격려하고, 메이크업도 살펴주는 등 모두가 경쟁자이면서도 동료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 거기에 더해 좋아하는 상대를 향해 재거나 따지지 않고 직진하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여타 연애 예능 프로에서 보기 쉽지 않은 솔직한 면도 함께 보였다. 

웨이브, <남의 연애> 스틸

이 예능 프로의 소비층이 BL 소비층과 겹친다는 면을 부인할 수 없다. 저마다 매력 있는 남성 간의 관계를 소설이나 만화를 보듯이 소비하는 방식도 있다. 하지만 <남의 연애>는 어떤 면을 보여주더라도 결국 현실의 사람이 등장하는 리얼리티 프로다. 이 현실성은 7화의 젠가 게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출연자들은 게임을 하면서 동성애자로서 자각하고 커밍아웃 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고백한다. 댄서로 활동하는 한 출연자는 커밍아웃 이후 “엄마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자기 같은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버지가 한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마음 아팠다고 말한다. 어떤 출연자는 아직 주변에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때까지는 그저 데이트 쇼에 머물렀던 <남의 연애>가 한국에서 퀴어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려는 광경이다. 이들의 관계가 로맨스로 단순히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대표하는 것이란 의미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 프로를 둘러싼 어떤 우려가 있더라도, <남의 연애>가 한국에서 TV 프로의 스펙트럼을 좀 더 넓힌 건 확실하다. 우리는 이제까지 연애 리얼리티에 왜 이성애자만 출연하는지 질문해본 적 없다. 대부분의 연애 리얼리티가 통제된 환경에서 하는 실험일 뿐이지만 그래도 현실을 일부분 반영한다. 하지만 현실에는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지 않는가! 이런 의미에서 <남의 연애>는 연애의 다양한 양상에 한층 더 다가간 프로다. 다만 <남의 연애>가 또 하나의 판타지로서 소비되는 데 그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점이 남아 있다. 인플루언서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일반 연애 프로 참가자들과 달리, 이들에게는 프로가 끝났을 때 감당해야 할 퀴어의 삶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점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남의 연애>는 다른 연애 프로와 달리 결혼이라는 엔딩을 기대할 수 없다.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지 않은 2022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글.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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