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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Sep 15. 2022

구두장이와 잡지

20여 년 구두를 만들던 손에 이제 《빅이슈》가 들려 있다. 젊은 시절 기술 좋은 구두장이었던 그의 손에서 구두를 놓게 한 건 중국산 기성화였다. 제화 관련 가내공장들은 다 문을 닫았고 그는 대형 병원 주차장의 미화원이 되었다. 나이가 많아 더는 미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생활고로 홈리스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이다. 녹록지 않았을 그의 인생에 따스한 위로를, 앞으로 펼쳐질 그의 인생에 응원을 보내며, 여기 합정역 7번 출구 홍병철 빅판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올해 1월부터 《빅이슈》 판매를 시작하셨다고요?

네, 1월 23일부터 시작했어요. 한창 추울 때 시작했지요. 


한파가 절정일 때라 거리에서 판매하시기 힘드셨을  같아요.

그래도 다행히 판매지가 밖이 아니라 지하철 역사 안에 있어서 괜찮았어요. 빅이슈 사무실에서 두꺼운 외투가 제공되니까 그거 입고 서 있었지요. 판매지가 합정역 7번 출구인데, 출구로 나오기 전에 편의점이 있어요. 편의점 바로 앞에 소화전이 있는데 그 앞에서 판매해요. 


판매하시면서 한파와 폭염폭우를  겪으셨네요판매해보시니 어떠세요?

어떨 땐 역사 안이 밖보다 더 더워요. 그래서 잠깐 밖으로 나가서 시원한 바람을 좀 쐬고 들어와요. 독자분들이 올까 봐 1~2분 쉬다 얼른 들어와요. 열차가 도착해 개찰구에서 사람들이 많이 나올 때는 꼭 자리를 지키고요. 사람들이 다 빠져나갔다 싶으면 그때 잠깐 나갔다 오는 거지요. 


목표 판매량을  채울 때까지 판매지를 지키신다고 들었어요.

처음엔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날씨가 워낙 덥고 여름휴가를 간 사람들도 많으니까 마음먹은 대로 안 되더라고요. 지금은 정해진 시간 맞춰 판매해요.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판매하지요. 처음에는 밤 10시까지 판매하고 그랬어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 근데 판매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언제 많이 지하철 출구를 이용하고 뜸해지는지 알겠더라고요. 무조건 오래 자리 지키고 있는다고 판매가 잘되는 게 아니란 걸 터득한 거지요.(웃음) 


잡지 판매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강하신  같아요.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하니까요. 제가 1952년생이에요. 나이가 일흔이니 앞으로 뭐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어요.

어디서 지내세요임대주택아니면 고시원?

1월에 《빅이슈》 판매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고시원에 들어갔지요. 그 전에는 고양시 일산에 있는 고시원에서 살았어요. 한 고시원에서는 9년 가까이 지내기도 했지요. 그때 일산백병원과 일산병원에서 주차장 미화원으로 일했어요. 8년간 일했지요. 그래서 그때 일산에 있는 고시원에서 지낸 거예요. 


미화원은  그만두셨어요?

나이가 많아서요. 그만두고 다른 곳의 건물을 청소하러 반년 정도 다녔어요. 다니다가 몸이 아파서 2~3일 쉬었다가 나가니까 병원에 가서 의사 소견서를 받아서 제출하래요. 그래서 그만두고 아파트 미화하는 데 들어갔는데, 나이가 많으니 일하다 몸이 좋지 않을 수 있잖아요. ‘병원에 좀 잠시 다녀올게요.’ 하니 사직서를 쓰고 가래요. ‘에이, 니들끼리 다 해먹어라.’ 하고 그만뒀지요.(웃음) 미화원 중에는 나이 든 사람이 많아요. 반장은 일흔 넘은 사람도 많고요. 일 잘하면 자기들 자리가 불안해지니까 좋아하지 않아요. 뭐라도 꼬투리 잡아서 내보내려고 하고요. 텃세가 심하더라고요. 그래서 1년 정도 놀았어요. 고시원 비용도 없어도 못 내고 그랬지요. 그렇다고 고시원비 떼어먹은 적은 없어요.(웃음) 


《빅이슈》 판매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돈이 떨어지고 나니까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청량리 ‘밥퍼’(밥퍼나눔운동)에 가서 도시락을 몇 번 먹었거든요. 근데 그때 보니까 빅이슈 사무실에서 나와서 판매원을 모집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바로 다음 날 사무실로 찾아갔지요. 처음 판매할 때는 사람들 앞에 서서 잡지를 판다는 게 좀 얼떨떨하기도 하고 어색하고 그랬는데 하루하루 지나니까 괜찮아지더라고요. 제가 그때 휴대폰값이 110만 원 정도 밀렸었어요. 근데 판매 시작하고 미납금을 다 갚았어요. 제가 귀가 얇아서 휴대폰 판매하는 젊은 친구들한테 잘 넘어가요.(웃음) 그래서 휴대폰을 두 번이나 바꾸는 바람에 그 두 대 값 갚느라고…. 


《빅이슈》 판매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나요?

저한테는 도움이 많이 돼요. 저한테는 최고지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저는 좋아요. 이번 주말에 휴대폰 기기값만 마저 갚으면 이제 빚이 하나도 없어요. 빚을 다 갚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좋아요. 앞으로는 저축도 할 수 있는 거예요. 

노숙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기성화를 만들었어요. 수제 구두요. 남의 공장에서 일해주고 공임을 받았지요. 월급쟁이가 아니라 ‘하는 만큼 먹었지요’. 한 켤레에 얼마, 이렇게요. 그때가 40여 년 전인데, 처음에는 벌이가 괜찮았는데 점점 나빠지더군요. 중국산이 들어오고 한국의 제화 가내공장들은 무너져버렸어요. 물론 큰 공장들이야 끄떡없지만 작은 공장은 다 무너졌어요. 


구두는   정도 만드셨어요?

한 20년 만들었지요. (구두 장인이시네요.) 장인은 무슨요. 먹고살려고 그냥 한 거지요. 만든 구두를 청계천7가에 도매로 넘기고 그랬어요. 구두 제작하는 가내공장은 다 어려웠어요. 더구나 저는 남의 공장에서 일해준 거니까요. 사장들은 돈도 좀 벌고 했겠지만 일하는 우리야 하는 만큼 받았으니 뭐 돈 많이 벌었겠어요.(웃음) 그래도 아직까지 구두 만드는 기술은 가지고 있지요. 

《빅이슈》를 판매하면서 좋았던 기억이 있으세요

판매를 시작하고 두 시간 반 만에 30권이 나간 일이요. 그때 박재찬이라는 사람이 표지 모델이었는데, 그때가 제일 좋았지요. 하루 종일 웃고 다녔지요 뭐. 그땐 헛꿈도 꾸었네요. 매일같이 이렇게 팔리지 않을까 하는.(웃음)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없어요. 앞으로 더 친절하게 판매할 테니까 잊지 말고 찾아와주십사 하는 거지요. 단골손님들이 오실 때 바나나나 음료수, 삶은 달걀 이런 것도 주고 가시니까 제가 그분들을 잊지 못하지요. 한두 주 지나면 그분들이 오시기를 기다리게 돼요, 제가. 매주 신간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사 가는 분들이 계세요. 모든 독자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글. 안덕희/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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