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성 홈리스 일시 보호시설을 이용하는 사람 중에서 요사이 제일 일할 의욕이 넘치고 열심히 하는 분을 꼽으라면 아마도 가자(가명)와 마자(가명) ‘자 자매’일 거다. 친동기간은 아니고 마치 그런 것처럼 보여서 이렇게 부른다. 두 분은 현재 여성 노인 세대에게 흔한, 소박하고 친근한, 끝 글자가 ‘자’로 끝나는 이름을 갖고 있다. 열 살 남짓 차이가 나긴 하지만 두 분 다 60세가 넘어 우리 시설 여성들 중에서는 어르신 축에 들며, 한 달쯤 시차를 두고 우리 시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차례로 일시 보호시설 긴급 잠자리에서 벗어나 고시원에서 지내는데, 그러면서 이런저런 복지 서비스 정보를 나누고, 생활의 애로도 같이 해결해가며 끌어주고 밀어주는 사이가 된 듯하다. 그런 두 분이 젊은 여성들보다 훨씬 더 일에 관심이 많다. 두 분은 시설의 공공 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다. 한 분은 시설 이용인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주방 일에 참여하고, 또 한 분은 공동 작업장에서 액세서리 포장 일을 한다. 이뿐 아니다. 두 분은 아르바이트를 할 기회가 생기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달려와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정기적인 아르바이트 자리, 이를테면 《빅이슈》가 발행되어 발송 업무 같은 일이 생기면 우리 시설을 이용하는 홈리스 여성들에게도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 시설에서 두세 명 신청을 받는데 두 분이 어찌나 적극적인지, 가끔은 새로 일시 보호시설을 이용하기 시작해 돈 한 푼이 아쉬운 신규 홈리스 여성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질투를 느끼고 화를 낼 정도다.
‘자 자매’가 이렇듯 열심히 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임대주택 입주를 위한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LH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하려면 보증금 300만 원은 필요하다며, 또 냉장고며 세탁기며 장롱이며 생활에 꼭 필요한 살림살이는 어찌 장만해 채우느냐며 열심히 돈을 모은다. 300만 원이 어떤 사람에겐 크지 않은 금액일 수 있지만, 한 달에 60~70만 원의 수입으로 고시원 생활을 꾸려가는 사람에게 수백만 원을 모으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일도 많겠지만, 예순 넘은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더구나 자 자매는 그 나이대 여성들이 흔히 그러하듯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 한 분은 허리 디스크 증상으로 강도 높은 일이나 오래하는 일은 하기 힘겹고, 또 다른 분은 부인과 질환과 성인병 때문에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다. 그런 만큼 하루 세 시간 정도 하는 시설의 공공 일자리가 이 두 분에게는 너무나 소중해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젊은 여성들보다 훨씬 다부지게 생활을 꾸려가는 요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두 분이 홈리스 상황에 놓였다는 것, 특히 이전에 노숙까지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자 자매 중 동생 격인 가자 님은 2년 이상 홈리스 생활을 했다. 일시 보호시설에 연계되기 전에는 주로 다리 밑이나 여인숙에서 밤을 보냈다. 돈이 생기면 하룻밤에 1만3000원 하는 여인숙에서 잤고,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그나마 조용한 다리 밑을 찾아가 잠을 청했다. 씻을 때는 공중화장실을 이용했다고 한다. 홈리스 상황에 놓이기 전 가자 님은 20여 년간 식당에서 일하며 스스로 생활을 꾸려왔던 분이다. 이혼 후 가족과 연락이 끊긴 후 찾은 일이 식당 일이었다. 처음 자리 잡은 식당에서 갈비를 손질하고 양념하는 일을 했는데 그런 대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다 몇 차례 지인에게 목돈을 빌려주고 떼이는 등 경제적 피해를 입으면서 생활이 점차 쪼들리게 되었다. 그즈음부터는 주방에서 하는 일보다 홀 서빙을 하며 여인숙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퍼지면서 그 일조차 여의치 않았다. 가뜩이나 나이 들면서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감염병까지 퍼지면서 일자리 구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그다음부터는 거리에서 자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노숙하면서 사람을 대하기가 두려워 대인 기피 비슷한 증상이 생겼다고 한다. 노숙까지 하는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곳은 딱히 없었다. 이혼 후 자녀와도 연락이 끊겨 손을 내밀 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돈이 전혀 없어 노숙할 정도였는데도 긴급복지생계지원금, 긴급주거비, 혹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다. 공적 서비스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자 자매의 언니 격인 마자 님은 70대 중반의 어르신이다. 외국에 나가서 생활하다가 지난해 9월쯤 한국으로 들어왔다. 18년 전쯤 일본에 가서 식당에 취업해 일했었는데 실직하면서 귀국했다. 귀국 직전 지인에게 받은 50여만 원은 코로나19로 2주간 격리하며 호텔 비용으로 다 썼고, 격리가 풀린 첫날 모텔에서 숙박한 다음 날부터 공원에서 노숙했다. 한 달쯤 노숙하다가 스스로 지구대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자녀가 있으나 오랜 기간 소식이 끊겨 연락처를 알지 못했고,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지구대 말고는 찾아갈 곳이 없었다고 한다. 오래 일본에서 일했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사기도 몇 번 당해 모은 돈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허리를 다치고 위궤양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그나마 있던 돈도 바닥났다고 한다. 돈도, 가족도, 주소지도 없는 채 귀국했으니 홈리스 생활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가자 님과 마자 님은 고시원에서 주소를 회복한 후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을 신청했다. 수급자가 되더라도 할 수 있는 한 일해서 돈을 벌겠다고 한다. 허리가 아파 힘든 일은 어렵지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심심해서 어떻게 지내느냐고 한다.
자 자매 정도의 상황은 모든 면에서 매우 양호한 상태다.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꾸려갈 만큼 건강하고 의욕이 있으니 말이다. 2021년 노숙인 등의 전국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노숙인 재활 시설과 노숙인 요양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 여성이 800명이 넘는데 그중 70~80%는 10년 이상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재활과 요양이 필요한데 마땅한 지지 체계가 없으니 시설에서 도움을 받는다. 만 60세가 넘어 노인 연령에 속하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만 65세가 넘지 않으면 근로 능력이 있는 연령대에 속하기 때문에 일을 하기 힘들다는 의사의 소견서가 있지 않은 한 가난하다고 자동으로 수급자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기준이 크게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족의 재산 상황 등 부양 능력을 파악하는 것도 걸림돌이 되곤 한다.
일시 보호시설에 들어오는 만 65세 이상 여성의 수가 꽤 많다. 정보력, 특히 공적 서비스 정보에 취약한 노인들은 긴급복지지원제도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뭔지 들어본 적도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이미 가족과 단절되고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홈리스가 되었으나, 나라의 지원을 받으면 가족에게 피해가 갈지 모른다고 생각해 스스로 공적 서비스를 기피하는 사례도 있다. 1~2년에 한 번씩 너무 힘들 때 일시 보호시설을 찾아와 한 달쯤 지내다가 또 지인 집에서 더부살이하겠다고 떠나는 황 어르신이 그렇다.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떠돌며 여인숙에서 지내는 아들을 둔 황 어르신은 수급 신청을 하자고, 아드님에게 부양 능력이 없으니 아무 문제 될 게 없다고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해도 수급 신청을 하지 않았다.
자 자매는 곧 원하는 임대주택에 입주할 것이다. 그렇게 최대한 오래 건강을 유지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자율적 생활을 꾸려갈 수 있기를, 그런 삶이 한때 홈리스였던 고령의 여성들이 꿈꿀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이기를 바란다.
글. 김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