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에 대하여

개혁이 목적이 되는 순간

by 호옹이

잘 안쓰지만 오랜만에 정치글 ㅋ


이재명 정부의 검찰개혁 속도를 두고 지지층 일부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왜 이렇게 느리냐', '그냥 수사와 기소 분리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반응들. 그 답답함 자체는 이해한다. 검찰 권력 문제는 오래된 논쟁이고, 권한 집중에 대한 비판도 계속 있어 왔으니까.


그런데 요즘 논쟁을 보면 아쉬운 게, 정책 논쟁이라기보다 정체성 확인에 가까운 말들이 많다. '개혁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보다 '개혁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라는 상징적 질문이 앞에 놓이는 식이다.


제도 개혁은 원래 복잡한 일이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는 말은 간단해 보이지만, 그렇게 현실은 심플하지 않다. 수사 권력은 누가 통제하나. 경찰 권력은 어떻게 견제하나.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는 어떤 구조로 맡기나. 어느 하나 단순하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개혁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속도와 방식에 신중해지는 것은 이상한 태도가 아니다. 지방 행정에서의 추진력과 국가 제도 설계에서의 신중함은 사실 서로 다른 능력일 수 있다. 대통령도 거듭 강조하지만 대통령은 민주당만의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상황에서 일부 지지층의 판단 기준이 정책 내용보다 특정 해설자의 해석에 기대는 모습이다. 해설자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복잡한 정치를 풀어주고, 권력을 비판하는 기능은 필요하다. 다만 정치 판단이 그 해석에 과도하게 의존하기 시작하면, 정책 논쟁은 사라지고 진영 내부의 확신만 두터워진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 있을 것 같다. 개혁이 정책 목표가 아니라 정치적 정체성이 되는 순간. 원래 개혁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인데, '우리는 개혁 세력이다'라는 정체성이 먼저 자리 잡으면 순서가 뒤집힌다.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개혁의 상징이 계속 요구된다. 김어준이 노무현의 유족이라는 말을 괜히 꺼냈을까. 조국을 계속 앞세우는 것도 이들은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토템으로 작용한다.


그때부터 정치의 언어는 자연스럽게 도덕의 언어로 바뀐다. 제도 설계의 문제가 '개혁을 하느냐 마느냐'로 환원되고, 신중함은 곧 의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국가 운영은 결국 제도 설계와 행정의 문제다. 정치가 항상 전투적인 개혁 서사 위에서만 움직일 수는 없다.


검찰개혁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정치적 상징이 아니라 권력 구조를 어떻게 짤 것인가의 문제다. 속도와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고, 그 논쟁이 정책의 언어로 이루어질 때 정치도 건강해진다.


지금 필요한 건 개혁의 열정을 낮추는 게 아니라, 개혁을 다시 정책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개혁이 정체성이 아니라 실제 제도의 변화로 이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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