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를 잘 쓰고 싶다는 생각한 건 중학생이 되면서였다. 급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2년 정도 배웠던 서예를 그만둔 직후라고 기억한다. 서예를 배웠다고 글씨를 잘 쓰지는 않았다. 글씨와 서예는 별개였다. 지역 대회 수상을 할 정도로 소질은 있다고 스승님께 칭찬은 들었으나, 글씨는 완전히 달랐다. 붓을 놓은 직후라도 연필을 잡으면 자동으로 글씨는 바뀌었다. 공책에 써진 글씨를 보고는 도무지 서예를 배웠다는 낌새조차 채지 못 할 정도였다.
그때는 글씨 쓰는 일이 제법 많았다. 숙제며 필기며 편지 쓰기며, 지금과는 달리, 손글씨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몽당연필이 되어도 볼펜대와 합체하여 쓰는 건 당연했다. 모나미 볼펜 한 개로 심을 바꾸어 쓰는 건 기본이었다. 삼색 볼펜은 부의 상징, 연필깎이는 최신 기계에 속했다.
학업(?) 때문에 서예를 그만두었을 때는 못내 아쉬웠다. 미술, 음악 등 예체능으로 학교를 다니기는 어려운 시대였다. 부유한 집안 아이가 공부에 관심이 없을 때 찾는 탈출구 정도로 간주되었다. 개천에서 용으로 출세하기 위해서는 공부 말고는 딱히 길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서예 쪽으로 앞 길을 정했으면 지금은 붓 들고 꽤나 설쳤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상상은 자유다.
붓을 놓은 후에야 비로소 노트 글씨에 심취했다. 곧바로 서예처럼 글씨를 써 내려간 건 아니었다. 노트 글씨는 그대로였지만, 틈만 나면 노트 구석 빈자리에 좋아하는 단어를 정성스레 썼다. 마치 서예를 하듯 펜으로 쓰고 또 썼다. 수업 시간에도 곧잘 그랬으니 꽤 진심이었다는 생각이다.
45세에 울산 방어진 구석에 위치한 회사 숙소에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중학생부터 틈만 나면 갈고닦았던 글씨를 뽐낼 속셈이었다. 영상을 찍으면서 내 글씨는 계속 나아졌다. 글씨를 계속 써야 했기 때문이리라.
48세 겨울, 큰 병을 얻었다. 뇌 속 아주 작은 혈관이 잠깐 막혔을 뿐인데 고통은 매우 컸다. 빠른 대처 덕분에 글씨를 쓸 수 있는 신체는 건졌다. 하늘에 감사하며, 남은 인생 글씨에 충실하기 위해 필사 방송을 시작했다. 글씨는 당연히 더 좋아졌다. 매일 글씨를 쓰는 데, 그것도 남들 보는 앞에서 라이브로 쓰는 데 어찌 안 좋아지겠는가?
50세가 되어도 필사는 이어오고 있다. 필사 후에 지금처럼 일기 형식으로 글을 쓴다는 게 달라진 점이다. 근래 같이 필사하는 분들이 제법 늘었다. 잠시 스쳐가는 이방인이 아니라 동반자들이 늘고 있다. 내 글씨도 덩달아 늘고 있다.둘 다 참 바람직한 일이다.
어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알림이 울렸다. 방학 동안 글씨 연습하면 나만큼 쓸 수 있는지 물어보는 당돌한 중2 학생이었다.
방학 때 열심히 해서 나 정도 쓰면 괜히 약 오를 거 같다고 대답하고 교본을 보내주었다. 열심히 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이 글을 이 친구가 볼지는 모르겠다. 나도 중학생부터 글씨를 고치기 시작했으니 반드시 멋진 글씨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방법을 찾아 꾸준히 하면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