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뇌는 작년 초겨울, 상처가 났다. 뇌를 지나가는 핏줄이 입은 상처. 상처라 하기엔 너무나 작은 막힘.
그 미세한 체증은 전혀 뜻밖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컸다. 구역질과 구토는 그시작의 알람이었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핑 돌게 했다. 다 큰 어른이 스스로 일어나지 못했다. 땅은 꺼졌고 나는 이유 없이 방황해야만 했다. 코끼리코 100바퀴는 비교도 안 되었다. 김연아와 차준환은 3분 내내 이걸 견디는 거다. 박수받아 마땅하다.
몇 년 전 같은 곳을 크게 다치신 아버지의 끝없는 주의 덕에 신속히 응급실로 갔다. 막힌 곳은 개미 항문보다 작은 지름일 텐데 회복은 무척 더뎠다. 누운 채 몸을 돌릴 때마다 나의 뇌는 기울어진 쌀포대의 쌀처럼 덩어리로 움직였다. 소리를 지르지 않고서는 멈추지 않는 고통이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인생은 끝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없는 세상을 생각했다. 슬펐다. 아직 할 일도 많이 남았는데...
입원실 방장이 되었다. 많은 환자들이 오고 나갔다. 그 사이 조그마한 창문이 있는 자리로 옮겼다. 역세권 집값이 오르는 하나의 이유다.
양손을 번갈아가며, 핏줄 속에 24시간 묻혀있는 링거 바늘과 수많은 알약 덕분인지 증상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똑바로 걸을 수 있는 것이...
4개월 후 지금, 제법 잘 걷는다. 집안에서 꾸준히 캐리어를 지팡이 삼아 여행 기분 많이 낸 덕이다. 샤워할때마다 벽 잡고 스쿼트 50번 덕분에 허벅지가 튼튼해져서다.
양손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평생 무엇인가에 의지하면서 걷기에는 젊었다. 워터슬라이드에 처음 올라 양손을 가슴에 모을 때처럼 심호흡을 했다. 아장아장 아기처럼 기댈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걱정과는 달리 가뿐히 성공! 아무것도 아니었다.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닌 게 참 많다. 자신을 믿으면 된다. 도전을 즐겨야 한다. 자신의 성장을 직접 느껴보자. 겁먹지 말자.
다시 마주한 세상은 많이 변해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이 빨라졌다. 아니다, 나의 걸음이 한참 느려진 거였다. 지팡이 짚은 할머니랑 길거리 경주를 하고 있다. 가속을 위해 걸음을 키워보지만 스텝이 자꾸 꼬인다. 모로 가도 가기만 하면 된다.
거리의 먼지 냄새가 향기로웠고, 차가운 햇빛은 나만을 비춰주는 무대 조명 같았다.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느껴졌다. 동네 꼬마들의 재잘거림이 귀를 즐겁게 했다. 붕어빵 가격이 많이 올랐다.
세상 모든 것이 새롭고 달라졌다. 짧은 시간 동안 나도 많이 달라졌지만 살만한 세상이다. 다시 태어나면 이런 기분일 거다.
천천히 다가오는 세상은 나를 변하게 했다.
라식 수술을 한듯 눈이 똑똑해졌다. 나를 스치는 낯선 이들의 다양한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찬 바람에 앞구르기 하는 길 잃은 낙엽들은 더 쓸쓸해 보인다. 새로 들어선 베이커리의 빵 굽는 냄새와 커피 향도 겨울 속으로 하얗게 사라진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멀찍이 깜빡이기 시작한 초록빛 신호등을 진작에 포기하는 현명함이 생겼다. 다시 바뀐다.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내가 지나간 거리를 한 번씩 돌아보는 여유가 생겼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렸었다. 그래도 제법 많이 걸었다.
내 보조를 맞추는 고마운 아내의 하얀 손을 꼭 쥘 수 있게 되었다. 많이 거칠어졌지만 여전히 따뜻하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