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위해 집에서 광안리 바다까지 왕복할 때면 항상 '해변시장'을 지난다. '해변시장'이라고 해서 파도치는 백사장에 솔밭을 상상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물고기가 쌓여 있는 수산 경매장을 떠올려서도 안된다. 마을마다 어느 귀퉁이에 있는 조그마한 시장이다.
자꾸 없어지는지 요즘은 '전통시장'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한 블록을 넘어가면 깊은 바다가 펼쳐지니 이름값은 한다고 퉁치자.
늦은 아침밥을 먹은 날이면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썰물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인절미 같은 광안리 모래바닥을 걷는 호사를 누리려면 물때를 맞춰야 한다. 모닝커피에 딱 좋은 식사 1시간 후, 광안대교를 보면서 커피 한잔을 즐기려면 서두르는 게 낫다. 집을 나서기 전 재빠르게 새 마스크를 꺼낸다.
집으로 오는 길의 '해변시장'은 갈 때와는 사뭇 다르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목소리를 높이며 과일 값을 흥정한다. 떡볶이 집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나고, 페인트가 얼추 다 벗겨진 건물들 사이로 파전 굽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막 썰어 횟집 주인아저씨의 칼질이 경쾌하다. 운동으로 살짝 허기진 나의 식욕을 자극한다. 시장은 언제나 싱싱하다. 시장이 살아야 동네가 산다.
아귀찜으로 유명한 골목길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자마자 낯선 장면이 나의 눈을 집중하게 한다. 거리두기가 잘 안 되는 노점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며 길 한가운데까지 이어져있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호떡'이라 적힌 간판이 멀리에서도 눈에 띈다. 커다란 철판 앞에서 기름을 튀기며 분주하게 호떡을 뒤집는 내 나이 또래 부부가 보인다. 서툰 몸동작이며 동선이 겹쳐 서로 마주치기를 반복한다. 장사를 오래 해 온 솜씨나 옷차림은 아니다. 땀과 미소가 얼굴에 범벅이다.
메뉴는 딱 한 가지 '씨앗 호떡'이다. 씨앗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원조'는 아니다. 속을 갈라 보면 해바라기 씨 같은 것들이 적절히 자리 잡고 있다. 씹는 식감을 더한다. 고소함도 덩달아 조연이다. 이 호떡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것을 개발한 두 청년은 이 반죽으로 집을 샀다는 소문 무성한 부산의 명물이다. 그 이름값은 여전한 듯하다.
방과 후 아이들의 간식거리로 호떡이 좋겠다는 아내의 말이 떠 올랐다. 사실, 어제 아내는 퇴근길에 여기를 들렀지만 헛걸음이었다. 인심 좋은 안주인 덕에 맛보기 호떡 하나를 들고 왔었다. 온 가족이 한 번에 한입씩 돌려가며 먹었다. 긴 여운이 남았다.
경상도 말로 '입맛만 버린 셈'이었다. 그것이 더 큰 갈증을 불렀을까? 오늘은 호떡을 하나 이상은 꼭 먹어야만 하는 날이 되었다.
적당히 굽힌 밀가루 반죽은 아이보리색 달무리였고 토종꿀 빛깔 설탕 속은 구름 뒤의 달처럼 살짝만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은은한 자태는 긴 기다림은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손님들을 설득하는 듯했다. 완성된 여러 개의 달무리들은 겹겹이 세워져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
호떡 1개 750원. 인플레이션이다.
현금만 받는다. 세금이 많이 오른 탓일 거다. 먹고살기 힘들다. 호떡도 정치의 영향권이다.
식욕이 왕성해진 둘째를 떠올리며 6개를 주문했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기포를 만들어 내는 기름통에서 여섯 개의 달이 떠오른다. 곧 대기석으로 옮겨지고 시원한 봄바람에 기름때를 벗겨 내며 나를 기다린다.
호떡은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다. 반대가 있을 수 없는 명명백백한 팩트다. 즉석에서 두꺼운 마분지 종이 조각으로 호떡 끝을 잡고, 뚝뚝 떨어지는 설탕물이 혹여 신발에 튈까 이리저리 엉덩이를 흔들며 호호 불면서 먹어야 제대로 먹는 거다. 잘 달궈진 설탕물의 기습공격에 덴 입천장은 영광의 상처다. 숙달된 조교가 시범을 보이듯 그 자리에서 뚝딱 처리하고 싶었지만, 호떡을 핑계로 시크한 사춘기 중딩, 둘째 아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참아야 했다.
기름기 쫙 뺀 호떡이 종이봉투에 담기고 검은색 봉투도 그를 감싼다. 바로 나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 순간, 조그마한 걱정거리가 불현듯 생겼다. 집까지 가려면 천 걸음 이상 남았다. 아들 수업이 끝나려면 백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이 호떡들 다 식을 텐데..
다 식은 호떡은 배신이다.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다. 칠레산 홍어가 들어간 삼합이다. 질소 가득한 새우깡 한 봉지다. 계란 프라이 없는 간짜장이다. 먹으려면 제대로 먹어야 한다고 배웠다.
잔돈을 챙기는 아주머니께 물어봤다. "이거 식으면 어떻게 먹으면 좋아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이어졌다. "1개는 전자레인지 20초 돌리세요~"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는 모양이다.
기름 잔뜩 번진 종이봉투를 찢고 다 식어버린 호떡 2개를 그릇에 담는다. "호떡이 두 개니까 40초." 수학은 실생활에 유용하다. 아들과 후~후~ 불며 맛있게 먹는다. 기대했던 대화는 짧게 끝나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