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는다. 써놓고 나중에 아니다, 난 역시 처음의 계획대로 가자, 하면서 방향을 또 돌리면 된다. 그동안 헛수고나 딴짓을 한 게 아니다. 다른 것을 쓰는 동안 그만큼 필력도 늘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시험도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뜻밖에 좋은 글을 쓴 사람이나 예상외의 책을 써서 히트까지 한 사람은 이 경우에 속한다. 자기 안에 숨어 있던 것들이 새로운 환경에 튀어나와서, 혹은 자기 안의 변화의 씨앗이 현실을 만나서 놀라운 안목을 글에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