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소설을 쓰겠다고 나섰을 때 '나는 이것을 꼭 써야 한다’는 그 무엇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의 테마’가 마음대로 써지지 않았다. 한동안 문장 수련을 하고 이것저것 소설을 써 나갔다. 그러는 과정에서 처음 쓰고자 했던 것을 잊었다. 다른 관심사가 생겨났다. 그것 말고도 쓸 것은 널려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두 달 전쯤, 40대 후반인 내가 '뇌경색' 환자가 되리라 생각할 수 없었다. 신경과 8 병동에서 3주간의 1차 치료를 끝내고 집에서 한 달여 동안의 재활 중에 불현듯 필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라이브 방송으로..
다친 뇌는 소뇌였다. '개미 똥구멍' 만한 혈관의 일부가 막혔다. 원인은 미약했지만 고통은 창대했다. 주요 증상은 어지럼증. 손, 발은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하기에는 머릿속이 너무 흔들렸다. 병실에서 의식 회복 후 오른 손가락 움직임을 첫 번째로 확인하고 이상 없음에 안심했으니, 2년 차였던 '글씨 유튜버'라는 부캐에 참 진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글씨는 쓸 수 있겠거니 여겼으니 말이다.
필사 시작 때는 2년 이상 할 것이라는 계획은 없었다. 책 7권을 따라 쓰겠다는 궁리는 더더욱 하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 움직임에 감사하고, '하루 10분'이라도 뇌를 한 곳에 고정시켜 보자는 것이 동기이자 목적이었다.
감사하게도, 방송 첫날부터 지금까지 혼자 마이크에 말하며 글씨를 쓴 적은 없다. 어디선가 필우분들이 나타나 늘 그 시간을 함께했다. 첫 방송에 함께였던 그분이 오늘도 같이 필사했다. 필우 덕분에 오늘까지 방송을 할 수 있었다. 내 건강도 계속 좋아졌다. 평생을 갚아도 모자란 은혜가 매일 쌓이고 있다.
최옥정 작가는 오늘 글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기록한 듯하다. 글쓰기 시작 당시의 의도와 목적은 어느새 사라지고 쓰는 도중에 변하고 발전한다는 경험 말이다. 그 변모와 진전이 더 글 쓰게 한다는 경험.
나도 같은 경험을 했다. 필사 시작 당시의 동기와 목표는 연필처럼 작아지고 필사를 계속하면서 더 진중하고 엄한 명분과 지향점을 가지게 된 경험 말이다. 그 무게와 방향이 계속 필사하게 한다는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