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은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한다'라는 조기교육(?)을 좇아 거실 TV 앞에서 '대한민국!'을 외쳐야 하지만 오늘은 내방 책상 앞에 다소곳이 앉아 오늘의 필사 내용을 마이크에 대고 나직한 목소리로 읊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치맥을 먹으며 방구석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되어야 하지만 오늘은 필사 방송을 통해 만난 필우들과 함께 책을 따라 쓰며 글쓴이가 되어 보았다.
이웃집에서 탄성과 함성 소리가 주파수처럼 귀에 담기면 재빨리 휴대폰에서 축구 상황을 확인해야 하지만 오늘은 실시간 재즈 음악을 틀어 놓은 채 블로그에서 필사 일기를 쓰고 있다.
'일어날 일'은, 나와 상관없이, 반드시 발생한다. 그 일은 곧 '결과'라는 형태로 종결된다. 그 '결과'의 승패와 의미는 나를 향하지 않는다. 오직 '일어날 일'을 했던 사람에게 영향을 줄 뿐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승리를 기원하지만, 팀 전술과 훈련량, 체력에 따라 결판날 것이다. 경기 결과는 대표팀 감독, 코치, 선수들에게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그들을 성장하게 만들 것이다. 목청 높인 내 응원의 결과는 더 튀어나온 아랫배와 쉰 목소리뿐이다. 나는 그대로다.
매일 15분의 필사는 승패가 없는 경기다. 다만, 오늘도 어제에 이어 계속했는가 하는 '고, 스톱'에 관한 자신과의 게임이다. 필사의 결과는 오롯이 나에게로 향한다. 자신만을 위한 시간 투자는 나를 풍요롭게 한다. 좋은 글을 가슴에 새긴다. 글씨가 좋아진다. 손을 움직였으니 치매 예방도 된다. 필우들과 인사를 나누니 소속감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