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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지겹냐? 죽는게 지겹냐?

영화 <미키17> 후기

by BIGMAC bro 빅맥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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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마카롱 가게를 차리려고 대부업자에게 돈을 빌렸다가 쫄딱 망한 뒤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린 ‘미키 반즈’


우주의 새로운 개척지로 향하는 개척자 프로그램에 얼떨결에 ‘익스펜더블(소모품)’로 지원을 해버리고, 이제 그의 성은 ‘반즈’ 에서 숫자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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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행성을 향해 우주로 영역을 확장하고, 인간의 기억을 저장했다가 제조된 복제 신체에 이식할 정도로 발달한 인류의 과학기술에도 죽음에 대한 탐구와 공포는 미지의 영역 인가보다.


미키에게 다양한 실험을 하며 죽는 순간의 느낌과 과정을 질문하는 사람들.


고통은 익숙해질 수 없다는데, 생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 여기에 있네... 어쩌면 익숙해진건지도 모르게 잘 죽는 이 친구.


이쯤 되면 ‘사는게 지겨워? 죽는게 지겨워?’ 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미키는 사는 것에도 죽는 것에도 무덤덤한 인간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죽음을 맞이 할 운명이었다면, 채무자가 죽는광경을 지켜보는게 취미인 대부업자에게 '한번만' 죽으면 되는 것을...)


그런 대부업자에게서 도망쳐온 곳에서 무한한 죽음을 하게 된 미키는 이거마저 내가 받게 되는 벌 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일상같은 삶과 죽음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그에게도 사랑하는 여인 '나샤'가 생기면서 열심히 죽어볼(?) 삶의 동기를 얻는다. 자신이 죽는 것에 대해 아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오직 그녀만큼은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하며 그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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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우연히 죽음의 기회를 놓치고 미키 18을 맞이하게 된 17은 자신을 죽이려는 18의 모습에서 '아 이제 진짜 죽는구나' 하고 생각을 하는데-


거의 무한한 삶과 죽음을 반복하다 멀티플이 발생하는 순간, 이놈에게 죽거나 같이 소멸되거나의 기로에서 느꼈던 죽음의 공포는 아주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을 거다.


동시에 18 에게 나샤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질투심으로 다시 한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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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죽음에 익숙했던 미키, 그리고 나중에 희생을 하는 18 역시 어쩌면 죽음이 익숙했기 때문에 한명의 미키를 '반즈' 로 되돌리기 위해 버튼을 눌렀을지 모른다.


나에게 이번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이런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을 들여다보는 점이 재밌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랄까.


죽기위해 살아가는 미키의 삶이 '진짜' 죽음 앞에서 더더욱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역설이 보였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의미를 갖고, 삶이 있기에 죽음도 존재한다.

삶과 죽음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정의하는 관계였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음.


생명, 윤리, 정치, 사회, 윤회 등의 다양한 메타포가 겹쳐져 있던 영화였지만, 죽음에 있어서서는 그 어떤 미래와 과학기술도 결코 피해갈 수가 없는 숙명이자 그저 삶의 양면성 이구나 라는게 느껴졌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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