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4년 차,
처음 인사하러 간 날에도 당연하게 부엌에 가서 뭐 도와드릴까요?라고 했었다.
이쁨 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다기보다, 그냥 당연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도 안 하던 행동이지만, 자라면서 보고 자란 대로, 여자가 남자집에 인사드리러 가면, 당연히 부엌에 쫓아가서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 초, 설거지에 대해서, 남편은 친정에서 안 하는데, 나는 왜 시댁에서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했었는데.
사실 아들 없는 친정에서 남편에게 내가 바란 것은 우리 아빠랑 말동무였다.
그런데... 그것도 안 했기에 화가 났지.
암튼 10년의 세월 속에서, 우리 집에서 남편은 손끝하나 일을 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집에 오지를 못하는 처지였기에. 남편에게 설거지란 내가 "씨발새끼!"라고 애들한테 욕한 지 수년이 지난 지금에야, 내가 드러눕고, 4일 정도 설거지를 안 하면, 이제야 눈치껏 한번 하는 정도이고, 사실 많이 고맙지는 않다.
지금은 마음먹으면 도우미를 부를 수 있고, 마음에 드는 도우미도 만났고, 무엇보다 애들이 커서 하루이틀 굶고, 라면만 먹고, 짜장면 먹어도 괜찮은 시기니까.
암튼.. 내가 하려던 말은, 나는 남편이 우리 집에서 일 안 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건 우리 집에서 자연스레 정착한 결과니까. 하지만. 나는 시댁에서 만큼은 남편이 설거지를 하기 원했다.
"일 년에 1-2번만이라도, 특히 시댁에서, 아빠가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여야, 우리 애들도 적어도 그 정도의 남편에게 결혼을 하는 것이다. 내 딸들이 나처럼 살기를 원치 않는다"라는 내 의견에 남편은 이해를 했건 못했던, 이거는 안 시키면 이혼감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는지, 한다고 했다.
그런데
4-5년을 남편이 설거지만 하면 시어머니가 소리를 지리고, 화를 내고, 남편이 소리를 지르고, 아주 난리가 났다.
나도 지지는 않았지만, 명절마다 큰소리 나는 것이 좋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23년 설날에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전화해서 "울면서!" 내 아들이 설거지하는 꼴은 못 본다.
너네 집에서 설거지를 하던 뭘 하던 신경 안 쓸 테니 우리 집에서는 네가 대접을 받아야 한다라고 하셨단다.
그 말을 듣는 그 순간.
아!
그 집 아들은 그렇게 귀해서 설거지도 하면 안 되는데
나는 남의 집 하찮은 딸이니까 "설거지는 당연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쪽 사람들이 나를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알았지만.
지난 10년 넘는 시간 동안 명절을 제외하고 가면 설거지랑 부엌에서 돕는 것들하고
"내가 해야 할 부엌일을 안 하고 싶을 때는, 죄책감에 밥도 사고 했던 것들 ( 심지어 애들 봐주고, 애들 옷 사주고, 용돈 주고, 사기당해 전재산 날린 기간 1년이 넘도록 매달 생활비를 대주셨던 우리 친정에는 밥 한번 사드린 적 없는데)"
그 모든 것이 후회되었다.
그 후 지난 추석에
나는 존중받지 못했기에 시댁에 가고 싶지 않다. 가더라도, 나는 사위들처럼 소파에 앉겠다라고 선언했다.
내가 가서 앉아있는 것이 좋으냐, 가서 네가 설거지를 할 것이냐라고 물어보니.
남편은 일단 너는 휴가가 없는 사람이니 내가 휴가 줬다고 할 테니 집에서 쉬라고 했다.
음.. 사실 나는 그런 핑계 싫었다. "당당하게, 내 아내는 내가 설거지를 안 하는 이상 명절에 참석 안 하겠다고 선포했다. 아들인 내가 설거지를 하도록 해주던지, 아님 앞으로 명절에 며느리 볼 생각하지 마시오"라고 말하기를 바랐지만.. 일단은 그냥 휴가로 쉬는 것으로, 나는 그렇게 추석 당일 하루종일 진짜 결혼 14년 만에 그토록 내가 울부짖었던 휴가를 처음으로 얻었다. ( 실제로 나는 결혼 14년 동안 남편이 애를 보고, 내가 쉬는 그런 날을 단 1일도 취해본 적이 없다. 이제 애들이 모두 다 크니까 큰 맘먹고 휴가를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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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그 후, 지난 일요일
시댁에 온 가족이 모일 일이 있었다.
음식을 시켜 먹었는데, 은근 설거지가 많이 나왔다. 밥그릇만 해도 20개는 나왔을 거다. 온 식구가 다 모였으니까
그런데 그냥 나는 앉아있었다. 설거지한다고 나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집 딸 2명, 아들 1명, 사위 2명, 며느리 1명(나)은 하하 호호 커피를 마시고 놀았고,
어머님은 설거지를 한 참 하셨다.
아무도 죄책감을 가지거나, 미안해하지 않더라.
나는 결혼하고, 친정엄마가 설거지하는 게 그렇게 미안하고. 안쓰럽던데...
내 생각에
아들 설거지를 안 시키니 며느리가 안 하고
사위들은 평생 설거지를 처가에서 하리라고는 생각도 없으니 아무 생각 없고
딸들 역시 엄마집에서 내가 왜 설거지를 하지?라는 생각에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었다.
( 막내 시누는 결혼 14년 동안 미혼 때도 설거지하는 것 한 번을 못 봤다. 솔직히.. 내 주변은 미혼들이 "이런 날은 내가 할게 하던데, 막내 시누는 정말 단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큰 시누는 내가 설거지로 시끄럽게 하면, 내가 할게 하면서 나서거나, 시어머니가 눈치를 줘서 "그냥 내가 할게" 라며 한 적이 있긴 하다 )
그런데.. 기본적으로 며느리가 하건 말건, 친정 엄마가 하건 말건
친정에서 나는 쉬어야지, 저건 나와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인 듯
나는 몸은 편했고,
뒤에서 설거지하시는 시어머니가 불편했으나 아무 생각 없는 모습으로 대화를 했다.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오니 남편이
"오늘 참 분위기 좋았다. 아무도 안 싸우고, 잘했다"라고 했다.
그래 좋았네.라고 대답했다.
"아들의 체면과 기를 살리기 위해, 나이 70이 넘도록, 혼자 부엌에서 설거지를 자처하는 아들 가진 엄마의 모습을 보며, 새삼, 아들 가진 엄마는 페미니스트가 절대 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솔직히
어머님이 100세가 되시더라도, 아들 설거지를 안 시키신다면, 설거지를 할 생각은 없다.
그게 좋다고, 웃으시는 어머님이 안쓰럽지만, 아무도 안 싸우고, 다들 그게 좋다니 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로... 우리 딸들은 정말 절대로 결혼은 금지, 동거 연애 찬성, 그리고 임신하면, 미혼모 출산 1년 후, 애기 아빠가 하는 거 봐서 아빠자리 주든지 말든지 결정하는 것
을 더더더 세뇌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돈을 벌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