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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mouth Aug 05. 2021

물 흘러가듯이

인생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느낀 순간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소파에 기대앉는다. 리모컨을 쉴 새 없이 조작하며, 지금 쉬는 시간을 가장 돋보이게 만들 TV 프로그램을 찾는다. 마침 새로 시작한 슈퍼밴드 2의 재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얼른 하이볼 두 잔을 타 와서 와이프와 나란히 앉아 예전에 같이 스쿨밴드를 했었던 그때의 감성으로 TV를 감상한다. 마치 심사위원이라도 된 것처럼 만년 직장인 밴드 아마추어가 프로들의 공연을 평가하며 TV 화면에 몰두하고 있을 때 아내는 조심히 다가와 구레나룻에서 흰머리 한가닥을 뽑아 들더니 이제는 20살 때 같이 음악 하던 선배가 아니라 늙어가는 아저씨라며 푸념 섞인 말을 내뱉는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시간의 흐름은 거스를 수가 없다. 아직까지도 마음은 스무 살 새내기 같지만,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늦어가는 밤이면 축축 쳐지는 눈꺼풀에 코 골며 잠들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체력을 보고 있으면 나이 들어감을 여과 없이 느낀다. 100세 시대에 아직 절반도 살지 못했지만 요즘 나이만큼이나 거스를 수 없는 것들이 인생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하루하루를 계획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멀리서 보면 인생 자체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진 않은 것 같다. 풍선 바람 빠지듯이 방향 못 잡고 이리저리 날뛰는 인생은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한 시작과 끝점이 일직선으로 올곧게 이어지는 삶 또한 아닌 것 같다. 어떤 때는 한 시절을 아무런 조작도 없이 무중력 상태로 보내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중간중간에 선로를 바꾸고 가끔은 급하게 항로를 변경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인생이 살아졌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할 때가 있다. 평행우주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평행우주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도 궁금하다. 확실한 건 어렸을 때 꿈꿔왔던 모습이 지금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원했던 꿈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그래서 시작점과 끝점을 정확히 어디에 찍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어렸을 때는 앞으로의 10년 20년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알지 못하니까 막연한 꿈을 꾸었고, 당시의 관심사가 꿈이 되고, 다른 사람의 꿈을 모방하기도 하면서 상상으로 먼 훗날의 모습을 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기억을 거슬러보면 초등학교 때 육상선수, 전투기 조종사처럼 여느 아이들처럼 직업이 꿈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부모님도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계셨다. 먹고살기 힘드셔서 그러셨는지 몰라도 내가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진 못하셨던 것 같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에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나는 진로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둘째나 막내들이 그러하듯이 육상선수나 전투기 조종사는 형이 적어낸 직업 희망란의 내용을 모방했을 뿐이었다.


학창 시절에 나는 공부를 잘하진 못했다. 그렇다고 잘 놀거나 학교의 일진 같은 무리에도 속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뚜렷하게 관심을 보이거나 잘하는 걸 찾아내지도 못했다. 중학교 때는 같은 동네에 살았던 몇몇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혼란한 사춘기를 보냈었다. 어울리던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 건지 진로나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별다른 고민 없이 노는데 하루를 소비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흡연과 음주에 오토바이를 타고 신나게 돌아다니는데 치중했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그런 것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 친구들과 오락실에서 한참을 놀다가도 5시가 되면 나는 목적도 없이 재미도 느끼지 못했던 학원에 혼자서 터덜터덜 걸어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큰 목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자존심에 인문계 고등학교는 가고 싶어 했다.


고등학교는 기숙사에서 지내야만 했다.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통학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지내지 않으면 매일 새벽 6시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0교시에 출석할 수 있을 정도였다. 기숙사 생활은 답답함의 극치였다. 조금이라도 아침잠을 자보려고 택한 기숙사였는데 매일같이 6시에 일어나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아침밥을 대충 입속에 털어놓고, -1교시를 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해야 했다. 그렇다고 도망도 갈 수 없었다. 학교는 산 중턱에 위치해서 도망가도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그렇게 3년을 보냈지만 수능성적은 in 서울 할 정도도 아니었고, 재수를 할 용기도 없었기 때문에 점수에 맞춰서 갈만한 학교를 찾아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대학을 꼭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안 다닐 이유도 딱히 찾지를 못했다.


대학에서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보고, 제대로 된 꿈에 도전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용기가 많이 모자랐다. 군대를 전역하고서 뒤늦게 용기를 냈지만 이런저런 이유들로 빠르게 꿈을 포기하고 취업시장에 몸을 던졌다. 취준생 2년의 기간 동안 내가 가진 걸 꺼내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내 주머니에는 딱히 보여줄 무언가가 없었다. 면접장에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발로 점수를 따기에도 나보다 더 잘나고 멋진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장에서 난 그리 좋은 가치를 지닌 상품은 아니었다. 나에게 맞는 옷을 찾는다기 보다는 억지로라도 몸을 비좁은 취업시장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게 나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진열대에 나와있는 옷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더라도 우선은 입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입고자 몸을 구겨 넣었던 것 같다.


우연한 기회로 입사한 회사에 눌러앉아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하루하루 남들이 보기에 계획적인 일상을 나름대로 잘 살고 있지만, 가끔씩은 마음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늦은 밤 아이들이 자고 있는 침대 틈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 누워선 텅 빈 천장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정말 원하던 인생은 어떤 것이었을까?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순간에 이전에 꿈꿔왔던 수많은 꿈들을 하나둘씩 지워지는 것 같다. 그러다 점점 꿈을 꾸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잃어버리고 살게 되는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제는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기보다는 하루를 잘 지내보자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 이런 하루가 엉망이 되어버리면 삶의 목적이 희미해져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 하루가 엉망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삶의 무게를 하루에 견디다 보니까, 그 하루의 고단함을 이겨내기 위해 알코올로 하루를 지우는 일도 많아진다. 그렇게 쳇바퀴 돌듯이 돌아가는 하루하루가 생각했던 인생의 일부분으로 제대로 채워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인생이란 게 누구나 그렇겠지만 계획한 대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태어날 곳을 고르지 못하는 인간들이 스스로 결정할만한 운명이라는 게 있는지도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가끔은 인간 세계는 매트릭스처럼 짜인 코드 안에서 살고 있는 데이터 덩어리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인간의 DNA 구조를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는 고도로 발전된 문명사회에서 만들어놓은 Map안에서 살고 있는 유기체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난 제품을 기획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설계하고, 회사가 잘 움직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든다. 일을 할 때는 여러 가지 생길 수 있는 변수를 체크하고, 시장의 상황 등을 객관화된 데이터를 참고하여 기획을 한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바로 잡을 수 있는 범주에 있고, 시간과 비용을 얼마만큼 투자하냐에 따라 프로젝트를 수정하거나 폐기할 수도 있다. 또 여러 번에 테스트를 진행하고, 새로운 버전이나 개선된 버전을 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인생은 폐기하거나 고쳐쓰기가 어렵다.


내 삶의 일대기를 계획하거나 설계해도, 주변의 변수의 영향이 너무도 크다. 그래서 변수를 모두 체크할 수도 없고, 예상할 수도 없다, 원인을 찾기에도 너무 복잡하게 설계된 인간의 프로그램은 정확한 원인이란 없고, 그 원인이 한 가지라는 보장도 없다. 인과관계에 따라서 일어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또 객관화된 지표를 참고한다고 해도, 비슷한 모습을 기대할 수도 없을 때가 많다. 내가 빌 게이츠와 같은 경영인이 되고 싶다고 그 사람의 위인전을 읽어보고 따라 한들 비슷한 삶을 살 수도 없다. 개인적인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순전히 개인의 힘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뤄내고 성공한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계획하고 컨트롤했는지는 의문점이다.


이제 곧 마흔인데 지금처럼 물 흘러가듯이 몸을 맡기고, 하루를 살아가는 걸 목적으로 삼아야 할지 뒤늦게 잃어버린 목표와 꿈을 찾아서 인생의 항로를 재설계해야 할지 고민이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곡선의 어느 중간점에서 인생 정말 쉽지 않고,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https://youtu.be/0UvizTDAV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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