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민 듯 안 꾸민 듯 무심하게
서울로 상경하여 고시텔, 기숙사, 단합 생활, 얹혀살았던 시간을 끝내고 꿈꾸던 '독립'을 시행시킨 18년이다.
누군가 맘 편히 쉴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감성 넘치는 재즈 음악을 켜고, 친구에게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고, 나만의 인테리어를 꿈꾸기도 한다.
그런 내 집 꾸미기에 대한 로망은 집을 구 할 때부터 이사까지 산산이 깨지기 시작했다. 이사 만렙 친구들은 하나같이 짐을 많이 만들지 말라고, 현실은 좁디좁은 방에서 잠만 자는 생활일 뿐이라 말한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집 구하기 미션을 수행하고, 드디어 한 시름 놓을 무렵 내 집에 대해 무심하게 꾸미기에 돌입하였다.
집을 구할 때, 다른 것 다 포기해도 포기 못하는 것은 '창문'이었다. 고시텔의 답답한 생활을 경험했던 탓인지, 집이 좁더라도 창문이라도 확 트여있다면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뻥 뚫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이 답답해서 들어가기 싫은 곳이 아니라, 퇴근 후에 달려가고 싶은 공간이 되게 만들고 싶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뚫린 큰 창문, 그리고 그로 인해 비치는 햇볕은 포기할 수 없는 나의 확고한 기준이다.
생각보다 많은 짐은 좁은 5.5평도 안 되는 원룸에서 보기 싫지만, 처리하기 곤란한 것들이다. 아무리 정리해도 줄어들지 않는 짐은 최대한 정리해야 한다. 풀옵션 원룸을 십분 활용하여 보이는 잡다한 짐은 치워 버린다. 특히 보일러실에 캐리어나 청소기, 잡다한 물건을 둘 수 있는 좋은 장소다.
침대는 무조건 하단에는 서랍, 상단에는 테이블을 두고 싶었다. 침대 아래는 짐 공간으로 활용도를 높이고, 계절이 바뀌면 이불이나 장판을 벙커 속에 넣어둘 수 있다. 또한, 상단에는 침대 헤드나 상을 피기보다, 움직이는 테이블이 취향을 저격하였다. 창가 옆 침대에서 모든 작업을 처리할 수 있으며, TV가 없더라도 노느북으로 무엇이든 편히 볼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웬만하면 행거를 설치하고 싶지 않았는 데, 어쩔 수 없이 많은 짐으로 행거 설치가 필요했다. 행거에 울퉁불퉁 나와있는 옷들을 보면 지저분하고,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거 같아 행거는 '커튼형'으로 구매하는 것이 필수다. 또한, 원룸이 분리형이 아니라면, 커튼형이 음식 냄새가 베지 않도록 막아주기 때문이다. 때때로 남는 공간은 옷걸이에 빨래를 말리는 공간, 가방을 걸거나 자주 입는 옷을 두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좋다.
이제는 디테일을 살펴볼 차례다. 무심한 듯 신경 쓴 디테일이 방 안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액자를 구매할 까 생각했다가, 괜히 이것저것 돈을 많이 쓰는 것 같아 관두었다. 실제로 들뜬 맘에 이것저것 샀다가 과한 것이 심플한 것만 못한 것을 경험한 후, 신중해진다. 그리고 있는 것들로 디테일을 신경 쓰려고 했다.
예쁜 엽서는 훌륭한 아름다움이다. 기존에 예쁜 사진들로 손수 엽서를 만들어 보내준 것들과 유럽에서 구매했던 엽서들을 드디어 오래된 상자에서 꺼내었다. 아끼면 무엇하나, 이렇게 보면서 유럽도 기억하며 그 설레는 느낌과 분위기를 기억하기 더 좋다. 특히 인상주의 그림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어디 가든 빠질 수 없는 것이 드라이플라워, 허전한 벽을 아름답게 채워준다. 꽃을 사기에는 부담스러운데, 선물도 받고, 이쁘게 말리면 기분이 정말 좋다!
액자형 테이블, 이것은 공간 활용과 데코의 혁명이다. 펴면 다용도 테이블이 되고, 접으면 허전한 벽을 메우는 아름다움이 된다. 방의 느낌을 한결 살려줄 수 있다.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다면, 적적한 마음을 달래줄 인형이라도 있어야 한다! 인형 뽑기와 선물들로 나와 함께한 인형을 두었다.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할 거야!
유럽에서 건너온 빅벤, 에펠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그리고 두오모. 그때 그 감동을 잊지 않고,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었다. 그때 가우디를 통해, 미켈란젤로를 통해 느낀 감동, 거서 배운 성실함, 그리고 다시는 쳇바퀴도는 일상에 흡수되는 삶이 아니라 언제든 더 넓은 것을 향해 나가는 것을 잊지 않기로 결정했던 그 다짐을 이것들을 볼 때마다 기억하고 싶었다.
화장실과 욕실이 깨끗한 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보는 것을 넘어, 향기도 집과 방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것이 '디퓨터'와 '캔들'이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디퓨저가 화장실을 갈 때마다 향기롭게 해 주고, 다이소에서 구매한 칫솔 및 칫솔 꽂이도 욕실의 분위기를 바꿔준다.
아직 채워야 할 디테일이 많지만, 일단은 여기까지로 정리한다.
의식주의 '주'가 강해진 2018년,
재즈 음악을 들으며, 푹신한 침대에서, 달콤한 커피 향을 맡으며,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로망이 아닌 실재가 될 수 있다.
때로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충전하는 공간, 때로는 좋아하는 친구들을 밖에서 만나지 않더라도 집에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 때로는 나만의 인테리어로 만족도를 높이는 공간, 때로는 기도하는 공간, 때로는 도서관으로 변하여 맘 편히 공부할 수 있는 공간, 그런 다용도 공간을 만드는 집은 이제는 잠만 자는 곳이 절대로 아니다.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