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주)사이언스북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해외여행이 막힌 지 벌써 1년이 지나가고 있다. 방학이나 연휴에는 해외를 계획하는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은 자국 여행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인기 여행지는 단연 제주도라고 생각한다. 제주도는 원래부터 인기 있는 여행지였지만 코로나 이후는 인기가 급상승하였다. 그나마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서 갈 수 있는 여행지라서 그런 것일까?
"예전이면 해외로 나갔을 영국 여행자들이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의 혼란 탓에 자국 관광을 시작한 것이다. 관광지까지의 이동수단은 처음에는 마차였고 나중에는 기차였다. 관광지에서의 이동수단은 보행이었다"(159)
나는 홀로 배낭을 메고 여행을 다니는 편이다. 내일로 여행도 지겨울 정도로 갔으며,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강원도에서 충청도로, 앞으로, 거꾸로, 총 4번을 다녀왔다. 이러한 나의 성향은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아버지가 여행을 다니시면서 쓰신 글 일부분을 소개한다.
"여행은 나에게 호흡과 같다.
언젠가부터 인지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 이후에 또 숨 가쁜 일들이 예상될 때 혼자 어딘가로 떠나는 홀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내게 익숙한 공간과 장소가 아닌 새로운 곳은 항상 나를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하는 힘이 있다. 나도 모르던 이런 느낌은 내 밑바닥에 감추어져 있던 나의 색깔이리라. (중략)
나 혼자만의 여행에는 내 나름의 작은 원칙이 있다. 가능한 한 가장 느리게 다닌다는. 가는 곳까지 버스로 이동하고 도착해서도 가능한 한 걷거나 버스를 이용한다. 운전대에서 손을 떼는 순간 자유로움을 맛보게 된다. 느리게 움직일 때마다 빠르게 다닐 때 보지 못하는 풍경들이 눈에 가슴에 들어온다. 자동차보다 버스를 탈 때, 그보다 더 느린 자전거를 탈 때, 그마저도 내려놓고 걷게 될 때 다른 풍경과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들꽃 하나 나뭇잎 하나,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하나도 내 눈과 가슴으로 들어온다. 내 얼굴을 스치는 따스한 바람도 온전한 내 것으로 느껴진다. (생략)"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면서 비슷한 여행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최대한 느긋하게 가면서 빠르게 가면 휙휙 놓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눈에 담고, 귀로 들으며, 냄새를 맡아 그 순간을 감각적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이동수단이 느린 것 순으로 선택하는 또 다른 장점으로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운전을 직접 하면 교통법규를 준수하며, 남이 만들어 놓은 정해진 도로로 다닐 수밖에 없다. 자전거를 타게 되면 자동차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다. 온전하게 자유로움을 얻게 되는 이동 수단이 바로 보행이다. 나의 두 다리가 나를 이끄는 곳이 바로 내가 개척하는 길이 된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갈 수도 있지만, 도중에 샛길로 빠지거나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지나갈 수도 있다.
"산책한다는 것은 그저 두 다리를 번갈아 옮겨놓는 일이 아니라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일정 시간 동안 건강 증진이나 즐거움 외에는 별다른 생산적 목적 없이 쾌적한 환경 속에서 걷는 일이다"(168)
나는 금요일마다 서울을 여행한다. 서울은 복잡하고 바쁘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큰 오산이다. 구석구석에 한적하고 여기가 정말 서울특별시인지 착각하게 되는 보석 같은 곳들이 많다. 집 앞에 있는 버스를 타고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정거장에서 내려서 다른 버스로 갈아탄다. 그리고 30분 이내에 또 다른 아무 정거장에서 내려서 과제를 할만한 조용한 카페를 찾아서 가장 저렴한 음료를 하나 시키고 일주일 동안 주어졌던 학교 과제를 한다. 그 후 뚜렷한 목적지 없이 걸어가다가 혼자 밥 먹을 만한 곳을 찾아서 저녁을 먹고 귀가한다.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걷는 원칙 때문에 생판 낯선 곳에 도착하는 경우가 물론 많지만 가끔은 역방향으로 가서 동네로 제자리걸음 하는 날들도 이따금 있었다.
"보행과 보행을 논하는 보행 수필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길을 떠나서 이리저리 떠돌지만, 떠났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로 떠났던 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197)
비장한 마음으로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매주 다른 곳으로 걸어 다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오늘 과연 다른 날들과 구별되는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의문이 들면서도 계속해서 금요일마다 또다시 출발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는 의미를 찾게 될 거란 환상 때문일까? 이 책에서는 다양한 문학가, 수필가, 철학자들이 보행했던 각자의 이유와 명분을 소개하고 있다. 이 중에서 나에게 맞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는 독자가 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과감히 말해본다. 리베카 솔닛은 책의 서두에서부터 이미 충고한다. "내가 따라가는 길이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뜻이다"(19) 자신이 제시하는 길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 거라 말하는 자세가 책의 내용을 취사선택하라는 『월든』에서의 소로우와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걷는 이유와 나만의 길은 무엇일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보행의 의미를 가장 퇴색하게 만들 수 있는 러닝머신 위에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뜻을 찾기보다 나는 그저 걷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구나. 나만의 리듬의 맞춰서 한 걸음씩 다리를 뻗고 뒤꿈치부터 짚고 발가락까지 닿는 면적을 땅과 마주치게 하는 걷는 행위 자체가 즐겁구나. 물론 아직 내 보행의 경험치가 부족하므로 이것이 나의 진정한 보행의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히 즐겁다는 결론을 내리다 보니 괜히 거창하게 『걷기의 인문학』을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열심히 탐구한 솔닛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